문화예술, 지역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산업화는 생산의 중심을 지역에서 도시로 이동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일자리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였습니다. 성장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산업의 논리는 생산성이 낮은 지역에 자원을 배분하기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수도권과 일부 지역에 자원을 집중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상당수의 지역이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빈부의 양극화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선 성장을 통해 지역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선부론1과 낙수효과는 허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각성은 지역에 공공기관을 분산하여 배치하거나 지역 개발을 위한 예산을 투입하여 지역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이미 임계점을 지난 것처럼 보이는 지역소멸의 운명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산의 투입과 정책의 개입만으로는 시장논리에 의해 이미 불가역적으로 진행된 도시와 지역의 선후를 변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예술이 대안으로 요청되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예술은 우리 시대를 규율하는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음으로써 중심이 아닌 주변부를 언제까지나 배회하는 존재입니다. 중심이 되는 순간 다시 이를 이탈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도시의 심부에 비해 문래동·성수동과 같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주변부를 가능성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도 바로 예술의 힘입니다. 성장의 논리에 가려진 지역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시의 객체가 아닌 고유성을 가진 주체로서 지역의 정체성을 부여할 힘이 문화예술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 지역소멸 위기에 맞서다
<에이스퀘어> 13호는 인구절벽으로 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역문화예술정책 및 지역 예술활동 현황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역 고유의 서사를 개발하여 지역주민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결속시키는 문화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들이 가시화된 국내외 사례를 소개하는 글들을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역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과 현황을 통계와 대담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파리올림픽과 연계하여 개최된 파리 문화 올림피아드의 소식과 각각의 고유성을 가지고 성황리에 운영 중인 지역문화축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SQUARE는 ‘문화예술과 지역소멸-지역소멸에 대응하는 문화예술의 힘’이라는 주제로 총 여섯 편의 글을 수록하였습니다. 고영직의 ‘지역의 ‘공기’를 바꾸는 문화예술의 힘’은 지역소멸 위기의 주요한 원인을 경제 논리에 기댄 개발과 발전이라는 상투형의 슬로건에 매몰되어, 개인과 각 지역 공동체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서사가 소멸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성과 중심의 사업을 통해 기반 시설의 여건을 조성하는 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지닌 문화·지식·테크놀로지·지혜를 취합하여 지역 고유의 서사를 생성하고 이를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 대한 환대를 통해 지역주민이 지역에 자긍심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김민경의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문화예술정책의 현재와 과제’는 지역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목표가 정주 인구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생활인구의 증가로 변화되고 있음을 주목하며 이주 및 정주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문화예술 접근성의 강화와 함께 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생활인구의 유입을 증가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 전문인력의 역량을 강화하는 지원이 선결되어야 하며 지역의 문화적 고유성과 활동의 다양성을 촉진함으로써 문화적 삶의 질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이선철의 ‘인구 소멸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문화예술 거점공간’은 기존의 지역문화예술 활성화 사업이 일부 유명 예술인이나 예술단체의 명성에 기댄 순회형 문화 행사나 지역 축제를 통한 관광객의 일시적인 증가에 국한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내 문화 거점을 형성하여 지역의 고유성 및 예술인과 주민들 사이의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예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거점공간에 대한 정부 및 지자체의 이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지원 체계를 수립하고 운영자들의 역량 강화 및 거점 공간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신재민의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문화예술-세계 도시와 충주’는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 활성화에 성공한 해외의 사례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쇠락한 도시에서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이후 문화예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로 문화적 자산이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준 탈린과 리버풀, 다양한 계층의 지역 주민들과 예술인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교육과 커뮤니티 아트, 다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력과 주민의 자긍심을 강화한 포틀랜드와 잘츠카머구트, 브래드포드의 예시를 통해 충주를 비롯한 문화도시 사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권재현의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문화예술-극단 ‘큰들’과 산청마당극마을’은 경상남도 산청 지역에서 극단원들이 예술창작과 함께 생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마당극 전문극단 큰들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서사가 중심이 되는 창작활동과 함께 시민 배우 양성을 통해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 및 후원 회원의 자연스러운 증가를 유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주민들과 신뢰에 기반한 화학적 결합을 목표로 관계인구를 단계적으로 확장해가는 큰들의 가치는 생존의 위기에 처한 지역과 예술인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는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전충훈의 ‘지역 문화유산의 현대적인 재해석-양림골목비엔날레’는 근대 문화유산과 현재의 문화가 공존하는 광주 양림동의 장소성을 기반으로 문화예술과 지역주민의 삶이 결합된 양림골목비엔날레 행사를 통해 지역문화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지역이 단순히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공연하는 공간으로 제공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예술의 창의성을 결합하여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역의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고유한 지역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PRISM은 개별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하여 점점 중요도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문화예술 전문인력 육성 현황 및 개선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하경의 ‘청년 예술가는 어디로 갔을까?-지역문화예술 전문인력 육성 현황’은 전문인력 양성의 기초가 되는 공연예술학과의 증감 추세 및 공공부문 신진 예술 인력 지원사업의 현황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지역 예술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지역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의 자문 의견을 수렴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술교육의 불균형 및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예술인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과 예산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지역 지원사업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호 AROUND에서는 ‘지역문화예술현장의 목소리를 듣다-지역활성화 사업 참여 예술인 대담’이라는 제목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교류협력팀 양지나 대리의 사회로 ‘2024 소멸위기 대응 문화적 지역활성화’ 사업에 참여한 곽은선 고성문화재단 축제공연팀장, 조국원·박찬웅·유명상 문화기획자를 초대하여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국가의 문화적 역량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 및 각자 수행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과 그 효과에 대한 소개와 함께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역 예술현장의 생생한 의견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SCENE은 지난 여름, 파리올림픽과 함께 개최된 파리 문화 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세계와 교류하는 ‘코리아시즌’을 담당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교류기획팀 임수빈 팀장과 박태우 대리의 인터뷰를 게재하였습니다. 프랑스의 댄스 크루와 협연하여 현지의 호평을 이끌어낸 브레이킹 공연과 함께 전통 놀이부터 이스포츠(e-sports)까지 한국의 놀이 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백남준을 위시한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의 전시까지, 공연·전시·공예·콘텐츠·관광·체육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결합된 ‘코리아시즌’의 구체적인 내용과 예비·신진 예술인을 위한 인적 프로그램 및 앞으로의 사업 내용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일독을 바랍니다.
FLOW에서는 ‘지역문화 활성화의 새로운 씨앗: 로컬-예술을 연결하는 문화예술축제’를 주제로 각 지역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특성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문화예술축제를 조명하였습니다. 기존의 주류 북페어가 다양성보다는 판매 가능성을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것과 달리 지역의 북페어는 지역의 특성과 결부하여 다양성을 추구하는 북페어를 지향해야 한다는 김광철 군산책문화발전소 대표의 글, 아트페어를 통해 지역에서 예술과 연결되는 경험을 부여함으로써 지역의 관계인구를 늘리고 참여 작가들에게는 다양한 노하우를 교육함으로써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이지현 ‘널 위한 문화예술’ 공동대표의 글, 일상의 공간에서 이탈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배리어프리 등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써 정서적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영화제가 될 수 있다는 김슬기 정동진독립영화제 사무국장의 글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축제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Thomas Malthus)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에 인구의 제어가 필요하다고 예측하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 성장은 맬서스의 비관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오늘날 맬서스의 비관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마주하고 있는 인구절벽 현상처럼 경제의 성장만으로는 종으로서의 인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은 앞선 논의들처럼 경제의 논리가 아닌 그 바깥에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예측입니다.
좋아요0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
문화 현장의 이슈와
건강한 정책 담론을 나누고 싶다면
웹진 A SQUARE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