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위기 속 문화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로 지역의 생활 여건을 즉각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고유한 상상력의 힘으로 지역의 공기에 활력을 더하며 지역주민이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번 원고에서는 문화예술이 갖고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에 주목하여 지역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시선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본다.
글_고영직(문학평론가)
지역소멸은 서사의 소멸이다
지역소멸은 서사의 소멸이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간에 서사는 나를 나이게 하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자기 서사에 눈을 뜬 사람을 이길 재간은 어디에도 없다. 노년·신중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자기 서사에 눈을 뜬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 것은 그런 분들은 절대 ‘남들처럼’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새로운 ‘이야기’가 서사를 만든다. 기존의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우리의 이야기는 너무나 상투적이다. 너도 나도 지역의 위기를 말하고 서사의 위기를 언급하지만 집·땅·차·돈을
맹목적으로 욕망하므로 하필왈리(何必曰利)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필왈리는 『맹자』의 첫 장에 등장하는 말로 “하필이면 왜 이익이 되는 것만을 말하느냐”는 뜻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첫 대면했을 때 왕이 대뜸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힐난한 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하필왈리의 정서는 아직도 이 땅에 만연하다. 선거철이면 지역 개발과 발전 논리가 막강하게 작동한다. 오래전에 국회의원에 출마한 한 후보가 “길이 뚫린다! 물길이 열린다! 땅값이 오른다!”라는 슬로건을 대놓고 표방하여 당선되었다.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별 대표 ‘문화 공약’조차 없는 상태에서 치러졌다.
‘메가시티’ 이슈가 온 국토를 뒤덮었지만 1
인구 소멸과 빈집 증가로 인해 갈수록 ‘생기’를 잃어가는 지역소멸에 대한 대응책은 없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하는 사회적인 의제도 쟁점화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사가 없는 초라한 ‘경제 동물’ 신세가 된 것이 아닐까. 경제학자 홍기빈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에는 결국 ‘허무함, 지루함, 비루함’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2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을 ‘서울의 시선’이 아니라 ‘지역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일류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쭐해할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에 제대로 된 출판사 하나, 로컬 잡지 하나, 서점 하나 없는 현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전국적으로 서점이 하나도 없는 자치단체가 9곳이나 되고, 서점 소멸 예정 지역이 25곳으로 추산된다는 『2022 한국서점편람』 통계 결과를 보며 몹시 기함했다. 이런 소식은 지금도 계속된다. 최근 대전 대표 서점인 계룡문고가 문을 닫았다. 2019년 3월, 그곳에서 <동네 서점이 로컬의 미래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로컬의 미래는 이제 어찌 될까. 또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劇團)이 하나도 없는 지역을 추산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좌)<동네 서점이 로컬의 미래다> 강연 포스터 , (우)계룡문고 전경 ⓒ계룡문고
‘여건’보다 ‘여지’를 만들자
로컬(Local)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부에서도 지역소멸, 인구 소멸 같은 위협 요인을 극복하려는 힘이 ‘지역문화’에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서
정책을 수립했다는 ‘믿음’을 주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 2023년 3월 23일 당시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전략’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문화는 주민의 정주 만족도를 높이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 요소입니다.”라고 강조하며 ‘대한민국 문화도시’, ‘로컬100’ 같은 정책사업을 열거했다. 하지만 성과 중심의 관광형 사업으로 보이는 이러한 정책사업이 지역문화 생태계를 진짜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과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인구감소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2019)에서 강조한 ‘생기(生氣)’라는 말을 상기하자. 그는 인구 소멸과 지역소멸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듯이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생기(生氣)를 자양분 삼아 서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물건[死物]’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지역소멸 속도가 너무 빠르고 서울 등 수도권으로의 일극(一極) 체제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일수록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화와 예술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 문화와 예술은 지역에 ‘여건’을 만드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여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 오해 마시라. 예술의 역할이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강원도 춘천을 심층 탐사한 훌륭한 책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온다프레스, 2023)를 출간한 서진영은 주장한다. “현재 얼마나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곳인가를 가늠하기보다 얼마나 여지가 있는 곳인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달까.” 여건보다 여지! 서진영의 위 진술이야말로 한 도시 또는 어느 지역이 인구 감소 시대에 어떻게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중요한 힌트를 준다고 생각한다. 서진영과 춘천문화재단 그리고 강원도 고성군에 소재한 출판사인 온다프레스는 이 책으로 2024년 10월 대전에서 한국지역출판연대가 주관하는 제8회 한국지역출판대상(‘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지역소멸 시대에 여건보다 여지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여지를 만드는 것은 지역의 ‘공기’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지역은 한없이 우울하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공기와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공기는 ‘생기’를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특히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지역과 도시가 더 빨리 사라진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지난해 속초시·고성군·양양군, 이 세 곳의 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한 ‘속·고·양 고 이스트 포럼 인 고성(Go-East Forum In 고성)’에서 기조 발제를 한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지금의 귀촌(歸村) 정책은 귀촌(貴村)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고, 일본 가미야마3사례처럼 총력(總力)이 아니라 촌력(村力)을 기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지역 스스로 재미있게 추진해야 하며, 적재적소가 아니라 ‘적소적재’를 고민하려는 인력 양성 사업 또한 즐겁게 시행해야 한다. 지역을 존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젊은 사람(여성)을 환대하려는 정책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 사람의 인력(人力)이 지역에서 ‘자석같은 향기’(故 이태석 신부)를 내뿜는 ‘인력(引力)’의 힘으로 작동하며, 사라지는 도시가 아니라 ‘살아지는’ 도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어쩌면 그런 도시는 소위 ‘노잼시티’가 아니라 ‘설렘시티’일 것이고,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나우토피아’(nowtopia)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고영직,『사라지는 도시, ‘살아지는’ 도시』중에서)
(좌)『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온다프레스, (우)‘속·고·양 고 이스트 포럼 인 고성’포스터 ⓒ속초문화관광재단
‘속·고·양 고 이스트 포럼 인 고성’ 현장사진 ⓒ속초문화관광재단
‘1인칭’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다양한 지역‘들’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있다. 춘천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도시가 살롱’과 ‘모두의 살롱’은 춘천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며, “기댈 수 있는 사람, 기대할 수 있는 내일”이라는 도시의 비전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또 부산 영도구에서 추진하는 ‘똑똑똑 예술가’ 사업은 동네의 예술인과 사회적 고립감이 높은 주민을 연결해 예술을 배달하고 지역주민을 초대해 조촐한 자립 축하 파티의 장을 마련한다. 엊그제 전남 해남군에서 만난 ‘일상판타지’라는 단체는 지역주민과 ‘우리들의 해방장’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소소한 물건을 사고팔며 지역에 사람을 남기는 활동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장터에서 오가는 것이 물건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해 마시라. 응당 도시와 지역의 여건을 만드는 일은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여건을 만드는 일은 어떤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추구’하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과 도시의 주인은 시장(市⾧)도 아니고, 시장(市場)은 더욱 아니며, ‘시민’이라는 공론장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문화적 도시에 살고 싶은가를 시민들이 논의하고 합의해 가야 한다. ‘시민력(市民力)’이라는 가치가 지역 현장에서 다시 강조되며 문화 분권과 문화 자치가 소환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과 도시가 조금 다른 지역과 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예를 들어 생태 교통으로 하나가 되는 도시 전략을 추진해야 하고, 주거·교육·공원 같은 인프라가 충분히 확충되며, 자유롭고 열린 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시민이 지닌 문화·지식·테크놀로지 그리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용남이 쓴 『기적의 도시 메데진』(서해문집, 2023)에는 시(詩)가 도시를 되살리고, 기후 위기 시대에 ‘건강 도시’를 추구하며 마약의 수도에서 전 세계 도시의 롤모델이 된 콜롬비아의 메데진 이야기가 나오는데 퍽 흥미진진했다. 메데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신하는 도시가 되었다.
지역의 ‘공기’는 바뀌는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역과 도시에 대해 “안 돼요”, “없어요”, “못 해요”라며 ‘노(no)답’ 3종 세트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많은 지역과 도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재미’와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재미있는 일이 된 케이스를 우리는 일본 가미야마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지역의 주인은 ‘나’라는 1인칭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문화예술 판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을 바꾸고 지역의 공기와 분위기도 바꿔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동네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춘천에서 열린 ‘2024 문화도시 박람회’에서 고윤정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이 최근의 로컬 붐 현상에 대해 “브랜드(brand)만 있고, 브랜딩(branding)은 없다.”라고 한 말은 매우 적절한 비판이었다. 결국 브랜딩은 시민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지역의 공기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1인칭의 마을‘들’이 모여야 한다.
사람은 이야기로 구성된다고 믿는 인문주의자이며, 수년 전부터 ‘동네지식인’을 자처하고 있다. (생애)전환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 『생애.전환.학교』를 기획하고 집필했으며, 요즘 ‘코너리즘’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1992년부터 문학/문화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천상병 평론』, 『인문적 인간』,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행복한 인문학』 등의 책을 썼다. 여전히 호기심이 많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