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영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연계된 해외예술가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영국, 그러니까 지리적으로는 네덜란드와 작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정확히는 잉글랜드의 동남부 해안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노리치라는 도시의 노리치작가센터를 소개한다. 정식명칭은 National Centre for Writing으로 지역에서는 NCW라고 불린다. 노리치작가센터는 독립된 기관으로서 매년 한국을 포함한 해외의(다수의 유러피언을 포함한) 작가들을 초청하여 작품활동을 지원하는 곳으로 노리치가 속한 노포크 지역의 사실상 유일한 레지던스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근 이스트앙글리아 대학교의 작가펠로우십이 있긴 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원을 하는 곳이 노리치작가센터다. 작가센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문학의 도시로 지정된 노리치에 속해 있는 만큼 세상의 모든 이야기, 그리고 다국적의 모든 작가에게 열려 있는 곳이고 그들의 작품과 창작의 방향에 대해서 찬성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센터는 노리치시 의회와 잉글랜드문화예술위원회, 노포크 카운티 의회와 이스트앙글리아 대학의 후원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재단들과의 긴밀함 속에서 각종 예술기금을 통해 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 속한 직원들은 10~13명 정도로 유동적으로 근무하며 홍보를 포함한 미디어 파트와 노리치 지역과 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문학관련 페스티벌에 관여하고 레지던스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을 통해 홍보하는 한편, 문학과 관련된 연계프로그램이 시시때때로 이루어진다. 또한 지역작가들과 출판관계자들의 모임을 드래곤 홀 소셜(Dragon hall social)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개최하며 작가 뿐아니라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과의 네트워킹을 주선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레지던스 작가들에게도 당연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워킹 인 노리치 라는 코너를 통해 노리치에서의 생활과 단기적 삶, 레지던스를 통해 작가가 느끼는 시선에 대한 문학적 짧은 산문 발표를 독려함으로서 작가 또한 레지던스 기관과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것을 돕고, 작가로서의 책임감도 느끼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순수창작 작가뿐 아니라 번역작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져서 앞으로 한국에서도 문학번역작가를 파견하는 것도 염두에 볼 만 하다.
지역서점, 출판사- the book hive
드래곤홀 소셜
보통 한국에서 파견된 작가의 체류기간은 한달 남짓이다. 나 또한 노리치에 4주를 머무르며 주로 지역작가들과 만남을 통해 작품을 소개하고 작가의 삶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듣는 자리가 많았다. 또한 지역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관계자,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이들과 만남에서는 영국의 출판시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서로 공감하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작업 뿐 아니라 노리치작가센터에서 주선해 주는 여러 관계자들의 미팅을 통해 작품 이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누는 것 또한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또 한국에서 작업하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적도의 여자>에 대한 집필을 늦추지 않았다. 아직 출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세상의 빛을 보게 하도록 노력 중이다.
그리고 노리치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진에세이 작업도 진행했다. 그것의 초고는 한국과 노리치작가센터 양쪽에 모두 인연이 있는 마토라는 네덜란드 번역가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고, 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먼저 쇼케이스 형식으로 업로드되었다. 그리고 레지던스프로그램이 거의 끝날 무렵, 사진과 글을 센터의 드래곤 홀에서 전시 성격으로 발표한 바 있다. 사실 쇼케이스는 레지던스 작업공간인 작가의 오두막집 내부에서 Home Exhibition 형식으로 개최하려고 하였으나 센터측과의 조율 끝에 센터의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인 드래곤홀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그 작업은 한국으로 귀국한 현재도 도시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금씩 진행 중이어서 좀 더 작업량이 쌓이면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로 사진에세이 출간과 함께 작은 사진전시를 기획 중이다.
또한 레지던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도 쓰면서 처음 방문한 도시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날 것의 느낌으로 작업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지역의 명문, 이스트앙글리아 대학에 방문하여 그곳에서 펠로우십을 진행하고 있는 인도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작가로서 서로 다른 국가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이스트앙글리아의 문학작가 펠로우십에 대한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작가간의 네트워크나 업계의 네트워크는 누군가 나서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기에 최대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가능한 다양한 장소에서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들과 나눈 많은 대화 속에서 나 또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업적 기대도 함께 했다.
한달에 한번 개최하는 드래곤 소셜에서는 화가와 편집자를 만나 한국미술과 한국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센터의 요청으로 짧게 나마 그들 앞에서 레지던스에 대한 소감과 노리치에 대한 첫인상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자 행운이었다. 나는 제한된 체류기간으로 인해 한번밖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은 모두에게 열려 있기에 지역의 장르작가, 아티스트, 출판관계자 등등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또 그 시간을 통해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번역된 나의 작품도 소개하고 홍보할 수 있었고, 몇 권의 책에 친필사인을 해 주는 영광도 덤으로 얻었다.
기본적으로 나의 작업은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과 문화, 국적과 국경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기에 센터측에서 추천해준 인근의 소도시를 기차로 방문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고 그것을 작업적인 방향으로 풀어내기 위해 내적으로 고민한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느끼기에 창작활동이라는 것은 사실 작가에게는 광범위한 것이어서 가시적인 창작을 하는 것만이 창작활동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위한 무의미한 활동 또한 창작의 준비과정과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는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것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노리치작가센터의 후원 아래 미약하나마 언젠가 그 힘을 발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노리치 작가센터 작가 오두막 내부
노리치작가센터 사무동.
나는 그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의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기도 하고 긴 시간 체류하기도 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에서의 체류는 일주일짜리 단기 여행과는 달라서 많은 변수에 대처해야 한다. 그 변수를 다 생각하더라도 항상 어딘가에서 다른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때문에 생활적인 부분에서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한달이라는 레지던스 기간동안 작업적인 진도나 역량을 더 발휘하기 좋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우선 노리치는 앞서 말했듯 굉장히 작은 도시다. 작가센터에서 걸어서 시티센터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는 대부분 2층버스고 현금을 거의 받지 않는다. 작은 도시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사회 전반에 태그리스 카드나 캐쉬리스가 활성화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태그리스 카드를 확인하는 것도 교통을 이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영국하면 펍 문화를 빼놓을 수 없는데 펍도 현금과 카드를 동시에 받는 곳도 있고 오직 카드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문 앞에 캐쉬리스로 적혀 있는 곳은 카드 결제만 취급하는 곳이다.
작가센터 내의 숙식과 관련되어서는 1,2층으로 된 오두막을 전체 다 작가 혼자 쓸 수 있어서 여유로웠다. 일단 앞문과 뒷문이 있는데 보통은 바깥 거리로 바로 이어지는 뒷문을 사용하는 열쇠를 받게 된다. 앞문을 사용하게 되면 센터의 작은 중정 같은 곳을 지나게 되는데 그곳은 주말에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으므로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오두막 내부는 1층에 넓은 화장실과 주방, 식탁이 있다. 주방 세트도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빌트인 드럼세탁기도 있어서 언제든 세탁이 가능하고 화장실의 수압과 뜨거운 물은 굉장히 잘 나오는 편이다. 1층 안쪽 거실에서는 보통 집필실로 쓸 수 있는 방이 있고,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에 큰방과 작은방이 있으니 편한대로 골라서 쓸 수 있다. 코로나 이후로는 매달 1명씩의 작가만 체류하고 있으니 오히려 생활적으로는 편할 수도 있다.
교통은 앞서 잠깐 말했듯이 주로 버스와 택시가 있고, 지하철은 없다. 작가센터 뒤로 웬섬강을 건너면 노리치기차역이 있다.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고, 그곳에서 런던, 맨체스터 등 내륙이나 셰링엄, 그레이트야머스 같은 해안도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창구에서 예약할 수도 있고, 티켓기계에서 카드로 바로 일등석 또는 일반석 기차표를 구매할 수도 있다. 일등석이라 해도 그리 비싸지 않고 커피와 스낵을 공짜로 주는 장점이 있다. 택시는 보통 어플로 예약을 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 도시내에서 거의 탈 일이 없다. 간혹 센터직원과 함께 이동할 때는 직원들이 알아서 예약해 주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점에도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예약해 주어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날씨와 관련해서는 내가 체류했던 11월 초순부터 12월 초순까지는 굉장히 건조했다. 바람은 그렇게 차갑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세차게 부는 날도 있었고 보통 새벽과 아침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가끔 저녁에도 비가 내릴 때도 있어서 약속이 잡힌 날이면 우산을 들고 다녀야 했다. 오두막 내부에는 라디에이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1층보다 2층 침실이 훨씬 추웠다. 노리치는 지도상으로 해안지대와 그리 멀지 않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바람이 많이 불고 전형적인 영국의 흐렸다가 개었다가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작가센터 뒤쪽으로 가면 노리치 지역 프로축구팀이 홈구장으로 쓰는 축구장이 있는데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노리치를 상징하는 카나리아 새의 노란색 물결을 볼 수 있다. 나 또한 도시를 뒤덮는 노란 물결과 경기장과 그 주변을 흔드는 엄청난 함성을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한번쯤은 그 열기를 몸소 느끼는 것도 지역 문화를 체험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축구장 주변으로 큰 마트가 두 개 있고, 우리나라의 다이소 같은 느낌의 파운드랜드도 있다. 1파운드에서 3파운드 초반의 물건이 많고 간단한 먹거리와 인스턴트 식품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도시를 다니다 보면 대략 5개 정도의 파운드랜드가 있는데 나는 그곳을 적극활용해서 생필품도 구매하고 식료품도 구매했다.
내가 만난 노리치의 사람들은 대부분 상냥했다. 노리치시장에서는 사람냄새, 음식냄새가 풍기고 그곳의 몇몇은 유럽 다른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이방인의 동병상련도 느낄 수 있다. 노리치 지역의 억양 또한 영국 북부지방과는 다르게 악센트가 심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이방인에게 따뜻하고 도시 전체적으로 모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17세기에 융성했던 오래된 도시여서 그런지 어딜 가나 고딕풍의 교회와 성당이 있어서 고풍스럽고 저녁에도 안전한 느낌을 받았다. 17~18세기에는 런던 다음으로 가는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하는데 그런 역사 덕분인지 사람들의 분위기와 매너 또한 그만한 역사를 유지하고 짊어질 만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