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반
그리스
유럽공연예술축제연합 신진 축제기획자를 위한 아뜰리에(EFA)-엘레우시스(그리스)은 2006년 독일의 괴를리츠(Gorlitz)에서 유럽공연예술축제연합(European Festival Association, 이하 EFA) 주관으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2013년 동 연합이 설립한 페스티벌아카데미(The Festival Academy)에서 이후 프로그램 운영을 주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35인 내외의 신진 축제기획자들이 동시대에 맞이한 도전과제와 예술의 역할에 대해 7일간 집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참여자가 새로운 관점을 얻고, 본인의 축제를 국제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세계적 축제 기획자 및 전문가 멘토, 참여자 간 네트워킹을 통해 세대 간, 나라 간 대화와 지식을 공유하고자 매년 여러 다른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다. 올해는 2023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그리스의 도시 ‘엘레프시나’에서 문화수도 타이틀을 기반으로
페스티발 아카데미 비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인종, 성별, 사회적 배경,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차별과 혐오 대신 평등과 다양성이 있는, 사회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사회적 플랫폼으로서 축제의 역할을 바라보고 있다. 매회차 여러 다른 지향의 퍼실리테이터와 전세계 다양한 국가 참가자들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관련 주제를 선정하고 ‘축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나누는 서로 다른 경험들을 통해 국제적 연대와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카데미의 주된 방향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리스, 우크라이나, 영국, 필리핀, 아제르바이잔, 세네갈, 이탈리아, 한국, 케냐, 레바논, 캐나다,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인도, 덴마크, 이스라엘, DRC, 불가리아, 이집트 등 총33의 참가자가 선정되었지만 비자문제로 국경을 넘지 못한 지원자, 개인적 사정 등으로 총 참여자 29명과 12명의 멘토단, 2명의 퍼실리테이터 그 외에도 기관스탭과 현지관계자까지 총 50여명의 사람들이 일주일간의 아뜰리에를 함께했다.
· 축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묻다 : Agree? Disagree?
아뜰리에는 ‘축제’기반의 기획자, 예술가들로 모여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어떤’ 축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중요한 프로그램의 핵심은 사회적 플랫폼으로서 축제의 역할에 대한 논의였다. ‘양극화, 분쟁, 실존적 위협 시대 속에서의 축제’, ‘불평등의 맥락에서 전세계, 지역, 로컬의 공정한 문화와 예술적 협업의 가능성’ 등 다소 무겁고 깊이 있는 주제들을 통해서 축제가 해결할 수는 없지만 외면하거나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변화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감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올해 아뜰리에에는 전쟁으로 인해 무대가 사라지고, 축제가 멈춘 우크라이나의 축제기획자,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축제가 멈춘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쉽지 않은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멘토로 참여한 우크라이나의 무용수이자 축제 기획자인 ‘Anton Ovchinnikov’은 ‘전쟁이 벌어지는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축제를 말할 수 있는가? 폭탄이 터지는 가운데에서 예술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고민과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토론의 형식은 던져질 질문에 대한 ‘동의’, ‘부동의’, ‘중립’ 총 3가지의 각자 다른 자기 의견을 가지고 시작한다. 질문의 조각들이 확장되고 참여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토론한다. 치열한 토론 끝에 ‘동의’에서 ‘부동의’로 옮겨지기도 하고 ‘중립’에 있던 많은 이들의 결정이 명확해지기도 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이야기가 맞고 누구의 이야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다른 생각을 통해서 각자가 바라는 ‘축제’의 지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각자가 가진 입장에서 형성된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토론의 질문은 다양했다. 기후위기, 국가간의 분쟁, 실존적 위협의 시대에서 축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쌓여갔다. 사회적 현실안에서 각자의 사고방식, 신념, 가치관, 타인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얼마나 서로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들이 스스로에게 위협으로 느껴지는지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화적 보이콧(cultural Boyocotts)에 대한 의견에서는 환경, 젠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후원을 예술가는 예술축제는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치열한 토론이 오가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회적 경험이 내 삶과 지역, 축제에 미치는 영향을 전 세계의 참여자들은 가시적으로 확인하며,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적 경험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패널토론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축제’의 기술적인 측면의 이야기를 멘토들의 발제를 통해서 주제토론이 시작되었다. ‘관객과 커뮤니티의 구축’, ‘기금 모금과 활용’, ‘축제의 뉴 미디어 활용’, ‘지속가능한 축제의 가능성’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에 대해 멘토이외에도 현장경험을 기반으로 참가자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축제를 공유하는 시간도 언제나 오픈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소규모 워킹 그롭, 주제별 런치타임, 분야간 라운드 테이블 등 다양한 소규모 활동을 통해서 주제에 대한 고민을 확장하기도 하고 관심있는 분야의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였다.
분야별 라운드테이블은 여러 기술적 측면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분야별 섹션이었는데, ‘생태예술’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있던 나는 영국의 ‘Hay Festival’의 디렉터중 한명인 ‘Cristina Fuentes La Roche’와 브라질의 도시정책 전문가 ‘Carla Fonseca Reis’를 중심으로 꾸려진 ‘Ecological festival’섹션에 참여했다. 이 섹션에서는 다양한 축제의 환경적 시도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축제에서 ‘플라스틱’ 반입을 금지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기반시설을 갖추는 것에서 출발해서 아티스트를 초대할 때 숙소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아티스트나 스탭들이 먹는 식사를 위해서는 ‘지역음식’, 채식주의 배려, 비건지향을 존중하고 쓰레기가 많이 버려지는 ‘부페’를 이용하지 않는 등 보다 구체적인 축제안의 실천의 지점들이 논의되었다. 관객에게만 친환경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참여하는 예술가들도 모두 동참할 수 있는 전방위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시도들이 있는 축제들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 우리는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 네트워크?
아뜰리에에 참여한 29명의 참가자는 각각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축제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음악축제(IYO Africa Festival cafe music smile), 그리스의 국제다큐페스티발과 케냐의 다큐축제(Docubox), 우크라이나의 국제 애니메이션 미디어 아트 페스티발(LINOLEUM Contemporary Animaation and Media Art festival), 우크라이나의 생태음악축제(Vibronicafestival), 아일랜드의 연극페스티발(Jermyn Street Theatre), 아르제바이잔의 단막극 페스티발(Short Performance Festival), 한국의 퀴어영화제(Korea Queer Film Festival)와 나이지리아의 퀴어축제(QueerCity Media&Pride Lagos) 등 나라도 장르도 다른 여러 축제의 이야기가 한데 모였다. 축제의 감독이나 기획자 이외에도 축제 제작을 꿈꾸는 예술가, 축제를 맵핑하는 연구자(Trovafestival)와 문화연구자,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지점에서 축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모였다.
아시아 섹션을 위해 필리핀, 한국, 인도, 말레이시아의 참여자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아시아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던졌다. 분명히 다른 아시아만의 공감과 땅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감각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함께 했던 퍼실리테이터였던 ‘Rashmi Dhanwani’는 이미 다양한 네트워크의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는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술공유, 정서의 공유, 예술의 공유를 통한 예술의 확장’등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었다. 해답은 없었지만 ‘연결’에 대한 필요와 가능성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고 다음의 확장을 기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연결은 자신의 의지이다. 같은 분야의 축제 기획자들이 다음에 함께 할 초대장을 내밀기도 하고 자신의 축제 다른 축제의 연결에 대한 지점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혹은 국제기금을 통해 함께 뭔가 공동작업에 대한 제안도 오고갔다. 아뜰리에가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고 각 나라에 방문할 때마다 제 2의 만남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1월 14일은 역대 참여자와 멘토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창회(Atelier reunion)’가 온라인 플랫폼 상에서 열리기도 했다. 모두가 지속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서로의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다시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연결의 이유를 묻는 ‘왜?’가 남았지만 그 질문의 해답을 구하기보다는 연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의 생성을 보게 된다. 그 해답은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서 찾아지게 되지 않을까.
레지던스가 있었던 그리스의 엘레프시나(Elefsina)는 2003년 유럽문화수도(ECOC:The European Capitals of Culture)에 선정된 3곳 중에 한 곳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그리스의 아주 작은 산업 도시이다. 30,000명이라는 작은 인구의 도시이지만 고대의 흔적, 산업화된 과거 역사, 독특한 텍스트와 노래 등을 훌륭하게 보존하고 선보이며 엘레프시나의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2016년부터 문화예술전문인력과 정책 전문가들이 지역주민들과 다양한 커뮤니티 작업과 예술교육을 진행하는 동시에 보존, 계승할 역사적 가치를 연구, 발전 시켜온 결과물이기도 했다. MYSTERY 엘레프시나 는 사회, 환경, 노동이라는 세가지 뚜렷하고 상호 연결된 중심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아뜰리에 과정에서 오랜시간 구축해온 문화수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엘레프시나는 그리스의 전통악기인 ‘부주키’연주자를 비롯하여 유명한 음악인이 있어 그만큼 시민들의 음악향유의 수준이 높았다. 주말이면 야외테라스가 있는 곳에서 부주키 연주공연이 펼쳐지고 젊은 세대부터 노인세대까지 함께 같은 음악을 즐긴다. 마침 지나가던 길에 멈춘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 70대 노부부 그룹은 엘레프시나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분들이었는데 매주 음악을 들으러 카페 거리를 찾는다고 했다. 낯선 동양인 젊은이들에게 술과 안주 그리고 그리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다정함 덕분에 그리스의 현지 문화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아뜰리에 동안에는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MYSTERY 엘레프시나 문화수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지역 여성합창단(Chóres of Elefsina), World music day, 해변콘서트, 6명의 젊은 춤꾼들이 엘레프시나의 마을과 빌딩, 공터와 페허사이의 공간들을 연구하고 이야기하며 만든 이동형 무용공연인 ‘U(R)TOPIAS Academy of Choreography Dance MyS+eries’. Site-specific theatrical performance로 만들어진 음악극
공연이외에도 엘레프시나의 매력은 지중해 바닷가를 끼고 있어서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로컬와인과 그리스식 샐러드는 그리스 식문화의 매력에 빠지게 했고 지중해식 해산물요리외에도 다양한 바닷가 요리가 엘레프시나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그 밖에도 문화수도 사업동안 성장한 10대~20대 청년들과의 교류 프로그램과 마을 산책, 아테네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6000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고대의 흔적들이 남아 엘레프시나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산업단지가 복합예술공간으로 변하고 마을 곳곳이 공연장이자 전시장이 되었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마을 단위 예술프로그램과 교육프로그램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었다. 아테네나 큰 도시로 나갔던 청년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찾고 정착을 해 나가는 등 문화수도가 되기 위한 이 지역의 노력은 도시 전체를 ‘문화’로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