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영국
에든버러 모멘텀 (momentum international delegate programme)
에딘버러에서는 4월부터 12월까지 주요 축제 11가 올라간다. 특히 8월이 축제 시즌의 절정으로 총 6개의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Edinburgh Fringe, Edinburgh Art Festival, The 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 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 Edinburgh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동시에 올라간다.
에딘버러 모멘텀 프로그램은 8월에 시작된다. 축제가 한창일 때 다양한 국가의 델리게이트들이 참석한다. 각국의 델리게이트들은 문화예술정책을 만드는 사람, 극장의 프로듀서, 독립 프로듀서, 예술가들로 개인 작품 창작을 넘어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관, 기관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스코틀랜드와의 협업 또는 협력으로, 각국의 공연예술 종사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것이 주목적은 아니다. 일정 또한, 나라별로 잡혀있다.)
프로그램은 델리게이트들에 맞춰서 미팅, 브리핑, 세미나 등으로 이루어진다. 회의는 그룹미팅과 1:1 미팅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1:1 회의가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국제 파트너쉽을 구축해 나가는데 있어 델리게이트가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는 기관이나 개인을 만날 수 있다.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면, 저녁 시간에는 관심사에 맞는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8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6개의 1:1 미팅, 3개의 그룹미팅, 6개의 공식 행사, 10개의 공연을 보았다. 여유가 없어 컵라면이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나 이외에도 델리게이트가 3명이 더 있었는데, 각자의 일정이 달랐지만,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팅은 주로 1:1 미팅이었지만, 그룹미팅이라 할지라도, 2명-3명 정도만이 함께 했다. 모든 미팅이 소수 개별 맞춤형이었다. 에딘버러 모멘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Creative Scotland)는 나에게 도움이 될 미팅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줌으로 사전 미팅을 진행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후에는 나에 대해서 소개하는 5분짜리 영상을 요청했다. 나는 극단 돌파구에 대해서, 그리고 드라마터그인 내가 이들과 작업하는 방식에 대해서, 돌파구가 스코틀랜드와 하고자하는 작업의 종류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 영상을 만들어서 보냈다. (이 과정 조율은 주한영국문화원에서 진행해 주었다.)
민간단체의 드라마터그로 참석한 내가 국제 미팅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야 친분이 있는 예술가들끼리, 관심사가 비슷한 예술가들끼리, ‘우리 앞으로 어떤 주제의 작업을 함께 해볼까요?’라는 제안을 해볼 수 있지만,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제안은 실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멘텀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장기 협업, 미래가 불투명한 목표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자유롭게 건네 볼 수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 영국문화원과 진행한 사전 미팅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이런 대화들을 진지하게 나눠볼 수 있는 사람들을 미팅 동안 만나볼 수 있었다. 정책을 만드시는 델리게이트분들은 세미나를 많이 들으시는 것 같았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여러 날에 걸쳐서 집중적인 강연을 듣고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시곤 했다. 또 다른 날에는 이웃 도시 글래스고로 현장 답사를 다녀오시기도 했다. 모멘텀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정확히 전달하고 참여한다면, 꼭 협업이 아니더라도 공연예술 생태계에 대해서 시야를 넓혀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저녁에는 주로 공연을 보았다. 나는 인터내셔널 축제의 큰 프로그램들보다 프린지 중심으로 작은 공연들을 많이 보았다. 축제는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에서 일하는 경력이 풍부한 직원이 추천해 준 것을 주로 보았다. 어떤 축제를 볼지 직접 검색하고 정하는데 시간을 쓸 여력이 많지 않아 추천작을 우선했다. 대부분 나의 관심사와 만나는 지점이 있는 공연이었다.
마지막 날, 내 손에 주어진 명확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장기적인 협업을 추진해볼 수 있겠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마음에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에딘버러의 올드타운은 15세기에 만들어졌고, 뉴타운은 17세기에 만들어졌다. 에딘버러는 유서 깊은 건물들이 극장으로 쓰이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큰 도시이다. 내가 묶었던 숙소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조성된 거리에 있었다. 건물 자체도 그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청된다. 에딘버러는 조안 롤링이 해리포터를 쓴 도시이다. 이곳의 풍경 속에 있다 보면 그 소설이 이 도시에서 나왔다는 것이 금방 납득이 간다. 이런 곳에서 공연을 보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미래의 작업을 꿈꾸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했다.
이곳의 풍경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휴가로 이곳을 찾은 노인들이 많았던 점이다. 축제의 라인업에는 퀴어 공연이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관련 공연의 객석에는 노인들이 상당수였다. 인생의 말년을 퀴어 공연을 보면서 보내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멋져 보였다. 또 가족 단위의 관객들을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축제가 단순한 여흥만이 아닌, 삶의 한 장면으로 그들의 인생을 장식해 나가고 있는 모습에서 부러움, 평화로움, 따뜻함 등 많은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