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뮤지컬
캐나다 몬트리올
‘젊은 축제 기획자를 위한 아뜰리에(Atelier for Young Festival Managers. 이하 아뜰리에)’는 전세계 축제 기획자들이 7일 동안 함께 축제의 프로그래밍, 지속가능한 프로덕션, 축제의 사회적 가치 등 축제라는 예술 플랫폼 전반에 대해 토론하고 실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뜰리에 시리즈는 유럽 페스티벌 연합(EFA)이 2006년 시작한 이후 현재는 EFA 산하의 더 페스티벌 아카데미(이하 TFA)라는 비영리 조직이 운영하고 있다.
TFA는 현재 벨기에 브뤼셀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아뜰리에 프로그램 자체는 매회 하나의 호스트 축제를 정하여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매회 중점이 되는 예술 장르도, 메인 키워드도, 그리고 참가자들의 전체적인 태도도 달라진다. 2022년 12월 기준 지금까지 총 20회의 아뜰리에가 개최되었으며, 부다페스트, 치앙마이, 요하네스버그, 니코시아 등 다양한 도시의 페스티벌이 호스트를 맡아왔다. 한국에서는 2015년 광주 아뜰리에가 진행된 바 있다.
나는 2022년 6월에 진행된 아뜰리에 몬트리올에 참석했다. 이번 아뜰리에의 호스트 축제는 트랜스아메리크 페스티벌(Festival TransAmériques. 이하 FTA)이었다. FTA는 1985년 시작한 이래 북미 최대의 공연예술 이벤트 성장한 축제이며, 기본적으로 무용과 연극을 기반으로 한 쇼케이스, 특별기획공연, 영화 상영, 그리고 수십 회의 라운드테이블과 네트워킹 세션을 운영하고 있다. FTA는 약 14일 동안 몬트리올에 위치한 약 20개의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페스티벌이 끝난 이후에도 FTA가 (공동)제작하는 방대한 양의 공연예술 카탈로그는 퀘백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타겟으로 하는 투어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FTA는 단기간 펼쳐지는 이벤트 이상의, 몬트리올 공연예술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자 다양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아뜰리에 몬트리올은 이러한 FTA의 페스티벌 정체성과 방향성과 결을 같이하는 지속가능성, 인종차별, 지역차별, 젠더 정치, 예술경영 등의 주제들이 중심이 되었고, 몬트리올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맥락과 방대한 양의 문화 기반시설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네트워킹 & 라운드테이블
아뜰리에 몬트리올에는 17개국 출신의 약 30명의 축제 기획자가 참가했으며, 남아공, 홍콩, 브라질, 키프로스 출신의 멘토들이 전체적인 진행을 맡았다. 그 외 캐나다 원주민 공동체, 우크라니아, 아프가니스탄, 호주 등 출신의 강연자들이 매일 강연 및 라운드테이블의 패널로 참석했다. 이번 호스트 축제가 FTA인만큼 현대무용 분야에 종사하는 참가자의 비중이 가장 높았으나, 전체적으로 음악, 서커스, 그래픽노블 등 다양한 장르의 축제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번 아뜰리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네트워킹과 라운드테이블 세션이었다. 아뜰리에 참가자들은 멘토와의 일대일 세션, 대륙별 기획자 모임 등 TFA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 외에도 FTA가 진행하는 서아프리카 문화예술신의 현주소에 대한 토크, 남아메리카 언더그라운드 예술 기획자들의 토론 등 하루에 2-3회에 걸친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었다.
많은 주제들 중에서도 특히 최근 캐나다가 집중하고 있는 원주민 문화에 대한 재조명을 다루는 시간이 많았다. 아뜰리에는 퀘백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누이트 예술가, 캐나다 최초의 원주민 음악 축제를 설립한 기획자를 초청하여 캐나다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의 역사, 그리고 예술과 탈식민주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FTA의 모든 프로그램은 공연 전 “지금 우리가 있는 몬트리올은 본래 원주민의 땅 ‘죠쟈게’로부터 이어져온 땅입니다.”로 시작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은 예술 기획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윤리적인 딜레마에 대한 사고실험 세션이었다. 이것은 다양한 논쟁적인 질문을 ‘네’ ‘아니오’로 선택하는 일종의 게임이었으며, 각자 편을 나누어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흥미로운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질문 몇 가지를 아래에 적어본다.
‘축제 기획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하는 뜻에서 모든 러시아 예술인의 축제 참여를 제한해야 하는가?’
‘페스티벌 자금 출처의 윤리성은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대기업의 스폰서십은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수용해도 괜찮은가?’
‘TFA의 아뜰리에 시리즈는 LGBTQ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를 보이콧해야 하는가?’
과제 수행 및 툴킷 제작
위에 설명한 프로그램이 TFA와 FTA의 운영 스탭과 멘토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아뜰리에 참가자들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참가자들이 그룹을 이뤄서 멘토들을 상대로 가상의 페스티벌의 펀딩 프로포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멘토들은 지역정부, 민간기업의 마케팅 부서, 민간기업의 CSR 부서, 예술후원기관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아주 냉정하게 참가자들의 발표를 평가했다. 모든 발표가 끝난 후 멘토들은 성공적인 프로포절 발표를 위한 팁을 공유했고, 참가자들은 페스티벌 기획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활동하는 국가와 예술장르에서 펀딩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과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TFA가 아뜰리에 참가자들과 함께 제작하는 페스티벌 툴킷(toolkit series)도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참가자들은 페스티벌의 지속가능성, 페스티벌 종사자들의 복지와 정신 건강, 디지털 기술 등 여섯 가지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페스티벌 운영 매뉴얼을 함께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출신 국가 및 페스티벌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기도 했고, 이러한 과정 역시 타협하지 않고 툴킷의 일부로 수록되었다. 페스티벌 툴킷은 TFA 웹사이트에서 누구든지 열람하고 새로운 내용을 제안할 수 있다.
우리는 FTA가 제작한 무용 작품 세 편을 관람했다. 이때도 작품을 각각 그리스, 세네갈, 캐나다 출신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등 프로그램 다양성에 신경 쓰는 디테일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우리는 태양의 서커스 본부가 위치한 서커스 도시재생 지역 라 토후(La Tohu), 세계 최대의 전자음악 축제 중 하나인 뮤텍(MUTEK)등 몬트리올 기반의 다양한 예술 단체/공간을 방문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축제와 기관 대부분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 페스티벌 설립자가 은퇴한 후 후임 디렉터가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기존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페스티벌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과도기적 단계, 그리고 코로나19 이후라는 타이밍이 겹치면서 이번 FTA와 아뜰리에는 모두 페스티벌이라는 플랫폼 자체의 존재 가치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 외에도 우리는 태양의 서커스 본부가 위치한 서커스 도시재생 지역 라 토후(La Tohu), 세계 최대의 전자음악 축제 중 하나인 뮤텍(MUTEK)등 몬트리올 기반의 다양한 예술 단체/공간을 방문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축제와 기관 대부분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 페스티벌 설립자가 은퇴한 후 후임 디렉터가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기존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페스티벌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과도기적 단계, 그리고 코로나19 이후라는 타이밍이 겹치면서 이번 FTA와 아뜰리에는 모두 페스티벌이라는 플랫폼 자체의 존재 가치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캐나다 이누이트 기획자의 오프닝 토크
오프닝 라운드 테이블
개인발표
후속 줌미팅
모든 참가자들은 몬트리올의 Zero One 호텔에 숙박했으며, 식사는 모두 FTA에서 제공했다. 알러지, 채식주의 등 개인의 식습관을 고려한 식단이 제공되었고, 케이터링은 모두 몬트리올의 소규모 로컬 업체들이 담당했다.
사실상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타이트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도시를 돌아볼 수 있는 개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뜰리에 프로그램 자체가 워낙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본 프로그램 만으로도 몬트리올의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매일 저녁 몬트리올 중심에 위치한 FTA 본부에서 파티와 밍글링 세션이 있어서 자유롭게 그 날의 프로그램에 대해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때 정규 프로그램 때만큼이나 흥미로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몬트리올 출신인 참가자들이 많아서 현지 예술인의 관점에서 몬트리올 예술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 등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