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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속에 답이 있다!
예술인 경력 개발 제도의 문제

예술인 활동 지원과 경력 개발 정책이
다양한 지역, 기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예술인의 예술활동 평균 소득은 연 456만 원.
기초생활도 어려울 될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현재 예술인 양성 및 경력 개발 정책에
가장 필요한 변화를 짚어본다.
글_조강주(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책 후원센터 책임연구원)
문화 정책의 최상위법 지위를 갖는 문화기본법 제10조(문화 인력의 양성 등)는 국가가 문화 인력의 양성을 위한 기반 조성과 시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문화란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영위하는 문화예술, 생활 양식, 삶의 방식, 가치 체계 등을 포함하는 정신적, 물질적, 지적 총체를 의미한다1. 문화기본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예술인 양성 체계에서 국가에 일정한 책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기본법인 고용정책기본법은 법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의 고용 정책 전반에 대한 기본 원칙과 시책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다. 동 법에 따라 국가는 직업능력 개발, 취업 기회, 고용 안정, 일자리 창출, 인력 수급 등의 시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에 이바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①고용∙직업 및 노동시장 정보 수집과 제공, ②인력수급 동향∙전망 조사∙공표, ③직업능력개발훈련 및 기술자격 검정, ④실업예방 및 고용안정∙고용평등 증진, ⑤산업∙직업 간 근로자 이동의 지원, ⑥취업촉진을 위한 직업소개∙지도∙훈련, ⑦취약계층의 고용촉진, ⑧민간시장의 고용유지 및 인력부족 예방, ⑨지역별 고용촉진 등이 해당한다.2
개별 법령에서도 예술인 양성에 대한 정부 시책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6조(전문인력 양성)에는 ‘문화공간의 전문적 운영에 필요한 기획관리 인력의 양성’을 명시하고 있다. 공연법 제13조(국가 등의 의무)에는 ‘무대예술 전문인 양성과 자질향상’ 시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고, 문학진흥법 제12조(전문인력의 양성 및 지원)에는 ‘문학 전문인력 양성과 지원’ 시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2023년 7월 제정돼 2024년 7월 시행 예정인 미술진흥법 제12조(전문인력의 양성), 국악진흥법 제11조(전문인력의 양성)에도 관련 시책이 있고, 2023년 9월 제정돼 2024년 9월 시행 예정인 전통문화산업진흥법 제7조에도 관련 법제가 규정돼 있다. 각 개별법은 법령 제정 목적에 따른 장르와 영역이 다를 뿐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경력 단계별 제도
세분화와 차별성
예술계 전문 인력 양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예술인의 경력 개발일 것이다. 정부가 개개인의 역량과 자질에 맞는 성장 경로를 직접 일일이 정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역할은 예술인 스스로 자신의 역량과 자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에 맞는 경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역할에 대한 실제 정부 기능은 어떤지 살펴보자. 자신의 역량과 자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정부와 지자체의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예술 지원사업은 작품의 제작, 발표, 발간, 실연뿐만 아니라 이전 단계인 연구, 리서치 및 조사 활동, 워크숍 등의 경비도 지원한다. 또한 비평, 행사(축제), 예술(창작)공간, 국제 교류나 진출, 아카데미(재교육), 인턴십 등 지원 범위도 다양하다. 물론 지원 금액이나 내용, 자격 등을 상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 있지만, 외연만큼은 예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포괄하고 있다. 예술인 개인의 예술적 영감을 구현하는 데 요구되는 직접 비용과 제반 여건들을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지원사업은 그 자체로 예술인의 예술활동 경험과 경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사업들 역시 예술인 개인의 경력을 단계별로 접근하고 있지는 못하다. 근래에는 많은 지원기관에서 청년∙중견∙원로 예술인 지원 트랙을 별도로 두거나 연령∙경력별 지원 트랙을 분리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트랙 간 지원금 상한선에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지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작금의 트랙 구분은 경력(연령) 간 경쟁을 분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이다. 향후 이러한 시도들이 예술인의 커리어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경력 단계별 차별화된 지원내용이 추가∙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예술인 경력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경로와 정보 제공 측면의 정부 기능이다. 이 주제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본 고에서는 예술계 직무와 고용 시장 정보를 중심으로 정부 기능을 살펴보겠다. 첫째, 예술계 직무의 세분화와 직무 능력의 개발∙검정 기능 측면이다.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 NCS)의 ‘08.문화∙예술∙디자인∙방송 분야’에는 중분류로서 문화·예술, 디자인, 문화콘텐츠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문화∙예술 중분류는 문화예술경영, 실용예술, 공연예술, 문화재관리 등 4개 소분류로 구성되는데 소분류명에서도 알 수 있듯 문학, 시각예술 등 일부 장르를 포괄하지 못한다. 그나마 공연예술 소분류에는 무대연출, 조명, 기계 등 11개 하위 세분류가 존재하고, 세분류별 능력 단위를 정의하고 있다.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제도 Ⓒ무대예술전문인 자격검정위원회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제도 Ⓒ무대예술전문인 자격검정위원회

직무 능력 개발∙검정 기능은 더욱 미비한 실정이다. 동 기능은 예술계 직무를 전문화하고, 자격검정 기능을 통해 공인∙인증함으로 고용주에게는 채용 시장의 인력 선별 신뢰성을 강화하고, 피고용인에게는 경쟁자와의 비교 우위 및 업계 진입장벽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계 직무 능력 개발과 검정 기능을 확대해야 할 이유다. 자격제도는 크게 국가자격, 민간자격, 외국자격으로 구분하는데 공신력 있는 국가자격은 국가기술자격과 국가전문자격으로 나뉜다. 현재 예술계 관련 국가기술자격 제도는 전무하다. 인접한 영화계에는 국가기술자격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시행하는 영사기능사 및 산업기사가 존재하며, 디자인업계에는 시각디자인기사 및 산업기사, 웹디자인기능사, 제품디자인기술 및 산업기사 등 다양한 국가기술자격이 존재하는 것과 대조된다. 그나마 국가전문자격으로 예술계와 유관한 무대예술전문인(국립극장 시행), 박물관∙미술관 학예사(한국산업인력공단 시행), 도서관 사서(한국도서관협회 시행), 문화예술교육사(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시행)가 존재하는 정도이다. 무대예술전문인을 제외한 다른 자격제도는 예술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예술계 고용 시장의 정보 수집과 인력 수급 동향 정보가 부족하다. 모든 시장에는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고, 예술계 고용 시장도 그러하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직종에는 다양한 장려 제도와 인센티브를 통해 유능한 인력이 유입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대로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직종은 상대적으로 고용의 질이 나빠질 가능성이 커 전직이나 유관 업종으로의 이직을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이처럼 고용 시장의 수급 정보는 정부가 일자리 지원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방향타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현재 생성되고 있는 행정 통계로는 예술계 생태계를 진단하기 어려운 면이 많은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행정통계포털은 국내 노동 시장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정보를 제공한다. 직종별로는 한국고용직업분류에 따른 소분류, 산업별로는 한국표준산업분류 대분류까지 월별 구인, 구직, 취업 통계를 제공한다. 국내 노동 시장의 업종별 현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러나 직종별 소분류(예술 관련 7개)나 산업별 대분류(예술 관련 1개)로는 예술계 고용 시장 수급 동향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타 업종과의 비교는 가능할지라도 예술 생태계 현황을 면밀히 살피기에 부족하다.
국가통계분류체계에서 예술 생태계 파악에 제약이 있는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활동을 통한 생산물의 분류 기준이 되는 한국 재화 및 서비스 분류(Korean Central Product Classification : KCPC)에서 ‘예술’을 검색하면 가장 최하위 단위인 세세분류로 분류되는 항목은 7개가 전부다. 오락∙문학∙예술 창작품 이용권 관련 인허가서비스(73320), 기타 예술교육 서비스(92619), 무대예술 공연 및 제작 서비스(96220), 기타 무대예술 및 기타 라이브 오락 공연 서비스(96290), 공연예술가 서비스(96310), 작가∙작곡가∙조각가 및 기타 비공연 예술가 서비스(96320), 작가∙작곡가∙조각가 및 기타 비공연 예술가 작품 원본(96330) 등에 해당한다. 사실상 예술계가 생산하는 재화 및 서비스는 공연과 비공연 2가지 분류만 존재하는 셈이다. 국가통계분류체계는 거시적 관점의 통계 작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예술 생태계 진단에 필요한 정보와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예술계에 전문화된 직무, 직종, 재화 및 서비스 등에 관한 통계를 별도로 작성·집계하는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수요 총량에 맞는 공급
구체화와 적절성
그렇다면 예술계 실정에 부합하는 세분화된 직무와 그 종사자 수에 관한 통계, 예술활동으로 수반되는 직무별 구인 구직, 취업 통계, 그리고 예술활동으로 생산되는 재화 및 서비스의 수를 지역별, 장르별로 알 수 있다면 어떤 지원정책이 가능할까? 가장 먼저 현 예술 생태계에서 구인난이 심한 직종과 구직난이 심한 직종을 전망할 수 있어 경력 개발 사업의 총량을 현실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구인난이 심한 직무는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관련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등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정책 설계가 가능하다. 구직난이 심한 직무는 유관 직종으로의 전직을 위한 교육∙훈련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지역별∙장르별 구인 구직의 미스매칭을 알 수 있어 차별화된 지원제도 설계도 가능하다. 가령 무대기술 구직난이 심한 지역에는 타 지역에서 무대기술 인력이 해당 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당 인력의 정주 여건이나 여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구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특정 장르의 재화 및 서비스가 과잉 또는 과소 생산되는 지역을 알 수 있어 지원사업 조정을 통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질 수 있다.
현행 정부의 예술인 경력 개발 제도는 직∙간접 일자리 지원과 아카데미(재교육) 지원 등 기능이 복수의 기관이 난립하는 형국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학번역원 등 예술 지원기관마다 크고 작은 사업이 산재해 있다. 모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들이다. 기능이 분산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국가 차원에서 예술인 경력 개발의 비전, 전략 아래 각 기관의 기능들을 연계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꼭 필요해 보인다. 특히 필자는 예술 생태계의 수급에 부합하는 경력 개발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예술계 수요 총량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인력을 양산해 공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예술인 개인의 예술활동 연 수입 Ⓒ2021 예술인 실태조사

예술인 개인의 예술활동 연 수입 Ⓒ2021 예술인 실태조사

3년 주기로 발표하는 지난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인 개인의 예술활동 연 수입은 평균 694만 원으로 집계됐다. 건축 등을 제외한 문학, 미술, 음악, 국악, 무용, 연극 등 이른바 기초예술계의 연 수입은 평균 456만 원이었다. 동 기간 예술인 가구 총 연 수입의 12.1% 수준밖에 안 되는 규모다. 예술활동 수입만으로는 기초생활수급자 생계 급여 기준을 하회할 정도로 열악하다. 필자는 이러한 예술활동 수입이 영세한 예술시장 규모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수급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공급에만 치중하는 예술 지원체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정부의 예술 지원정책은 정책 대상의 생태계에 대한 미시적인 통계 자료를 생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술인 경력 개발 제도는 그다음에서야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1. 문화기본법 제3조(정의)
  2. 고용정책기본법 제6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
조강주
조강주(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책 후원센터 책임연구원)

가톨릭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문화정책 전반과 지방자치 분야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예술인의 생계안정과 일자리 지원 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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