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라는 아이덴티티를 담은
가짜 구글 웹사이트
가짜 구글 웹사이트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베끼길 좋아했던 나는 동물 사전 속 곤충 삽화나 세계 전도의 국기를 따라 그리거나 아무 책이나 집어 필사하곤 했다. 이 같은 습관은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해 진짜 같은 가짜를 복제해 내는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내 작품을 소개하는 포트폴리오 웹사이트 제작을 계획했을 때 처음에는 여러 작가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대중적인 레이아웃, 웹사이트 빌더들이 제안하는 전형적이 레이아웃으로 제작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문득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성향을 대변하듯 내 웹사이트 또한 나의 아이덴티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포켓몬 마니아의 집에 피카츄 인형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듯, 내 웹사이트에는 나의 작업의 중심이 되는 ‘복제’라는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효과적인 포트폴리오이자 아카이브 기능을 갖추고 동시에 그것이 하나의 미디어 작품이기도 한 웹사이트를 만들게 됐다. 이미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온라인 매체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기에 이전 작품과 이어지는 재밌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다. (참고로 사이트 주소가 www.dhnam-007.com인 이유는 일곱 번째 온라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며, 인스타그램 주소가 @dhnam_001인 이유는 그것이 첫 번째 온라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여러 복제 대상을 고려하다 역시 세계인들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검색 엔진 구글(Google)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방문자가 웹사이트를 쉽게 탐색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콘텐츠(작업 사진)에 초점을 둘 수 있는 친숙하고 미니멀한 레이아웃 디자인, 모바일과 태블릿을 포함한 다양한 기기에 최적화된 점, 글로벌한 어필 등을 고려하자면 구글만큼 훌륭한 복제 대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복제 작업의 가치도 훌륭히 충족시켰다고 생각한다. Ctrl+c와 Ctrl+v 두 번의 클릭이면 완벽한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손으로 무언가를 복제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일상적이지 않음’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의 수많은 천재 직원과 수조 원의 자본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가 우리가 접하는 가장 일상적인 미디어가 돼버린 시대이다. 나는 1990년대 윈도우(Windows) 그림판처럼 허술한 프로그램으로 웹사이트 빌더의 기본적인 기능만을 이용해 복제한 내 가짜 구글이 오히려 내가 여기는 좋은 작품인 ‘일상적이지 않아 발길을 멈춰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연스레 기술의 발전을 향한 집착이 고조된 현시대를 향한 풍자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풍자와 더불어 진짜와 가짜 사이의 간극이 주는 코미디도 복제 작업의 큰 이점이다. 특히 기대하지 못한 전개, 진짜를 가장했던 가짜 요소가 폭로되는 예상치 못한 전개는 유머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공간을 복제한 내 작업들은 대체로 이러한 ‘힝 속았지!’ 요소를 포함한다. ‘#21 Rund Gallery’ 작업에서 나는 실제로 세탁소가 있을 만한 위치에 가짜 세탁소를 제작해 배치했다. 진짜 세탁소로 착각해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사람, 세탁소 근처에 세탁소를 차려 상도덕을 무시했다고 지적하는 사람 등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과 가짜임을 깨달은 후에 보여준 (대체로) 유쾌한 반응은 이러한 코미디적 요소를 잘 전달했다. 내 웹사이트도 이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웹사이트를 클릭했는데 구글로 이동해 당황했다’는 사연이 종종 들려와 의도한 재미가 잘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웹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한때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배워보려 했지만, 도저히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먹겠어 깔끔하게 포기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조사해 보니 여러 종류의 웹사이트 빌더들이 있었고 이 중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상품을 골라 사이트를 제작했다. 다행히 웹사이트 빌더로도 충분히 내가 목적한 가짜 구글을 만들 수 있었다. 웹사이트 검색창을 누르면 전시, CV(Curriculum Vitae), 연락처 등의 목차가 검색 기록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 중 ‘전시/작품(exhibition/artwork)’ 페이지를 가장 공들였는데 구글의 이미지 검색 기능을 복제했다. 상단 툴바를 통해 전시 형태(개인전, 단체전, 아트페어)와 연도별로 열람할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웹사이트가 내 작업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어 좋았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내주셨다. 사실 웹사이트 제작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구글의 기능을 복제해 보여주고 싶다.
30여년 발자취가 기록된
나의 베이스캠프
나의 베이스캠프
나는 회화 중심의 작업을 30여 년간 이어왔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보급형 PC를 접하면서 인터넷과 이미지 관련 소프트웨어와 친숙해졌다. 동료 작가들보다 일찍 웹 세계에 눈을 뜬(?) 나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늘어나던 2000년경 내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웹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웹사이트는 지금의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던 플랫폼이었다. 방문자와 소통하는 게시판, 작업 과정을 기록하는 에세이, 전시 소식 등으로 카테고리화 해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구축할 당시 데이터를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 소요됐지만, 글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 덕분에 작업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기록할 당시의 생생한 느낌과 소중함을 알기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려고 노력 중이다.)
활동 기간이 이어지면서 프로필, 전시 이력, 갤러리(연도별, 장르별로 작품 배치), 리뷰∙평론∙기사 등 게시판에 채워질 이야기도 늘어갔다. 전시를 앞둔 바쁜 시점에도 틈나는 대로 내용을 추가해 나갔는데 이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갤러리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전 나는 내 컴퓨터 바탕화면 여기저기 폴더에 복사돼 숨어 있던 작품 이미지와 전시 기록을 하나로 모으고 체계적으로 분류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종의 웹에 띄운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7년간 해온 작품의 상당수를 재촬영해야 했다.
나를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은 지금, 웹사이트에 작업물을 기록하는 것은 시대에 다소 뒤떨어지고 고전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작가와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웹사이트는 다른 채널에 없는 절대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을 눈여겨봤을 때 그 작품과 작가, 나아가 작가의 작품 세계까지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정기적으로 도메인과 서버의 사용 비용이 드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며, 원치 않는 손님의 방문도 있을 수 있다. 수년 전 광고성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게재돼 골치가 아팠던 나는 현재 웹사이트 내 게시판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지 않다. 운영 당시에도 반응이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작품이 인상적이다’라는 어딘가 형식적인 글 혹은 후배 작가들의 고민 글 정도 올라왔다.
작품활동을 기록한 웹 갤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사이트는 작품 활동 내내 많은 도움이 됐다. 작가, 비평가, 전시기획자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오프라인 만남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를 교환할 때가 많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나는 이러한 교류가 쉽지 않았고 내 작업을 노출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때 웹사이트에 게재된 내 작품은 그동안의 여정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나를 알게 된 사람들과 편하게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교환했다.
웹사이트에 내 발자취를 차곡차곡 쌓아온 지 어느새 27년이 됐다. 가끔 작업이 힘들 때, 마음처럼 일이 이뤄지지 않을 때 나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내 작업물을 보는데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기도 한다. 앞으로도 나의 여정을 소중한 이 베이스캠프에 기록하려고 한다.
이면이 존재하는
시각예술의 매력처럼
시각예술의 매력처럼
나는 아날로그 사진의 프로세스에 동시대의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무빙 이미지의 속성을 더해 사진이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디지털 프로그램을 활용해 카메라가 개입되지 않는 필름을 제작하거나 유동성 액체를 필름 대신 사용해 정지해 있는 사진에 무빙 이미지의 속성을 중첩시키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2021년에 만든 나의 웹사이트는 작품 목록과 과거에 참여했던 전시 목록, 평론, CV 정보를 담고 있다. 작가로 활동한 지 3년 차쯤 됐을 때 주변에서 포트폴리오 웹사이트가 있냐는 문의를 종종 받았는데 나 역시 온라인에서 내 작업을 정돈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기에 제작을 의뢰했다. 외주 디자이너에게는 가급적 모든 작업이 정리된 위계 안에 한눈에 보이도록, 연도와 시리즈명으로 작품 목록이 필터링됐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또한 사이즈와 비율이 모두 다른 작품 이미지들이 한 페이지 안에 조화롭게 구성돼야 한다는 점, PC와 모바일 환경에서 균질한 퀄리티로 보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웹사이트 메인에서는 이미지 위에 마우스를 호버하면 제목이 노출되고, 작품 상세 페이지로 이동하면 이미지, 캡션, 전시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완성도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각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느라 고려하지 못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아 있기도 하다. 먼저 웹사이트는 한번 구축하면 끝이 아니라 매년 유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사용 중인 솔루션이 충분한 기능과 합리적인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는지 검토하지 못했다. 또한 제작 당시에는 웹사이트에 업로드되는 콘텐츠들이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관리자 페이지를 적절하게 설계하지 못했다. 따라서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다소 비효율적이다.
작가의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노출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 정보를 찾는 여정에서 도달하게 되는 곳이다. 포트폴리오 웹사이트가 있으면 오프라인 전시장을 방문하기 어렵거나 도록을 직접 전달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의 작업을 효과적으로 소개할 수 있다. 작가의 관점에서 편집된 정보를 웹사이트 형식으로 만나는 접점인 것이다. 이미지 이면에 보이지 않는 구조가 존재하는 시각예술처럼 웹사이트에도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접면 이면에 구조와 설계가 존재한다. 예술가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은 온라인 접점을 통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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