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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경험이라는 자본으로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전공이 직업이 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이직에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류의 수명 연장으로 노동 기간이 늘어나고
커리어의 확장과 전환은 모두의 고민거리가 됐다.
특히 문화예술 종사자에게는 필연적인 운명과도 같다.
문화예술 마케터에서 축제 전문가로 직업 세계관을
펼쳐나가는 유경숙 소장에게 커리어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이_ 유경숙(세계축제연구소장)
Chapter 1. 커리어의 출발, 문화예술 마케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세계축제연구소 소장 겸 축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경숙입니다. 세계 일주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축제와 공연을 두루 접하고 74개국 약 380개의 해외 축제와 콘텐츠를 국내에 소개했어요. 유럽 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 지금까지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빠질 수 없는 문화 콘텐츠와 축제 콘텐츠를 기획, 자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커리어의 시작을 문화예술 마케터로 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1999년 가을, 한창 취업 준비를 하다가 첫 직장으로 난타 제작사 PMC프로덕션 마케팅팀에 들어갔어요. 난타가 큰 인기를 끌면서 난타 상설 공연장이 만들어졌는데 극단에서 기업으로 전환되며 기획팀, 마케팅팀 사원을 공개 채용했거든요. 당시만 해도 공연계에는 그런 채용이나 업무 분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는데 운 좋게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죠. PMC프로덕션에 입사한 계기도 특별한데 취업 준비를 하기 전 3개월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든버러 축제(Edinburgh Festival)가 열렸고, 그곳에서 난타 공연 ‘Cookin’을 처음 보게 됐어요. 환호 가득한 공연에 마음이 벅찼던 저는 한국에 돌아가면 이 회사 지원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뜻을 이뤘죠. 입사 후 동료들과 함께 난타 전용관 런칭 작업을 수행했고 국내외 홍보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 국내 공연들은 상설로 운영되는 전용 극장이 없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 모두 고생이 참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들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국내외 여행상품의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를 직접 부딪치며 배웠죠. 무엇이든 실험적으로 일단 실행하고 밤도 새며 일했지만, 일이 너무 재밌어서 힘든 것도 몰랐어요.
Q. 마케터로서 예술가(단체)와 협업하면서 느낀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예술인 중에는 자기가 추구하는 예술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펼치기 위해 콘텐츠의 유통과정, 언어장벽, 공간 활용, 심지어 미디어까지 골고루 궁금해하고 습득하려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예술에 집중하는 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과정까지 예술가의 관심이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만든 콘텐츠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존재감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거든요. 어렵더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관심 분야의 정보를 얻고 학습하는 환경이 잘 조성돼 있음에도 여전히 예술가는 예술활동이나 작품으로만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자기 작품이 세상에 나와 그것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의 관객들까지 만나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질문할 줄 알아야 해요. 다행히 요즘 젊은 예술가들 중에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다각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작품 역시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 다원예술이 꾸준히 증가하며 예술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죠. 자신의 예술 성과물이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관객이 찾아오는 소위 압도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적극적인 문화마케팅은 꼭 필요합니다. 열심히 만든 내 작품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가도록 끝까지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Q. 문화예술 마케터로서 홍보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소규모의 예술인·단체는 직접 홍보를 해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 많아요. 이 때문에 최근 공공기관에서 관련된 교육사업들이 늘고 있죠. 그런데 관련 커리큘럼이나 강사진을 보면 그저 공연계 내에서 경험자의 이야기를 강의로 꾸미는 경향이 있어 보여요. 물론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하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미래를 이끌어가야 하는 젊은 실무자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비전을 열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연 분야에 완전히 일치한 전문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오히려 홍보, 마케팅, 디지털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데이터 활용 노하우처럼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를 찾고 그중 공연이나 문화계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가를 찾는 게 내용도 내실 있고 반응도 좋았어요. 그런 홍보, 마케팅 최신 경향과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 공연 콘텐츠의 특성을 어떻게 녹여낼지는 실무자들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홍보든 마케팅이든 공연계 내에서만 풀려고 하지 말고 타 산업 분야에 접목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Chapter 2. 커리어의 확장, 축제 전문가
Q. 축제 전문가로 커리어를 전환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04년에 공연 내수 시장이 튼튼하게 발전한 일본으로 연수를 갔어요. 귀국 후 이직을 하려고 보니 공연 기획사에 들어가면 기존에 했던 일을 반복하겠더라고요. 마케터로서 배운 점도 많았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젊은 저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가 ‘빅데이터’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인터파크’ 같은 지금의 여러 티켓 중계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까지 ‘티켓링크’라는 회사가 공연, 전시, 영화, 스포츠를 다 관장하고 있었죠. IT에 기반한 이 기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절별, 시즌별로 어떤 공연이 누구에게 잘 팔리는지 확인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도 난타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어느 나라에서 유리할지, 해외 관객들이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정확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공연계의 전체 추이, 흐름을 정량적 수치로 뽑아내고 공연 산업의 윤곽을 잡아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시도가 보편화돼 연말이면 내년 공연 시장을 전망하는 기사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 공연계에서 그런 시도는 처음이었어요. 또한 티켓링크가 IT 기업이라 대부분 개발자, 엔지니어분들만 근무하고 있어 이 같은 정량적 통계수치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저밖에 없었죠.
티켓링크에서 매일 데이터를 보면서 가능성 있는 우리 작품이 해외로 진출하려면 해외정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직접 현지에 가서 국가별, 대륙별 특징과 차이점을 조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과감하게 사직서를 내고 출장 비슷한 장기 세계 일주를 계획했는데 그동안 업계에서 이런 목적을 가지고 해외로 나서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고, ‘공연 따라 세계 일주’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할 기회까지 얻었어요. 그런데 이 여행이 저에게 또 다른 두 번째 인생을 열어줬습니다. 해외 공연 시장을 골고루 조사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정작 세계를 돌아보니 정말로 큰 판은 축제라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공연뿐만 아니라 전시, 웹툰이나 게임 등 모든 문화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축제인 거예요. 특히 축제는 문화관광으로 연결되기에 새로운 사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고 축제를 먼저 이해해야 국내 공연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세부 전략도 짤 수 있겠더라고요. 해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공연을 더 다양하게 활용하려면 축제 분야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국내에서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가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었고, 운 좋게 문화예술 총감독단 상근자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해외에서 마주한 축제의 모습들 Ⓒ유경숙

해외에서 마주한 축제의 모습들 Ⓒ유경숙

해외에서 마주한 축제의 모습들 Ⓒ유경숙

해외에서 마주한 축제의 모습들 Ⓒ유경숙

Q. 현재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해주세요.
2008년에 세계축제연구소를 설립해 축제와 관련된 강의와 저서 집필, 방송 활동을 하고 있고 지방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크고 작은 축제의 기획, 자문과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는 여성문화단체연합 협동조합을 통해 문화계 각 분야 전문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사업을 수행하고 있어요. 문화예술계 여성 전문가들의 일거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만든 회사인데 30여 명의 공연예술 프로듀서, 기획자, 예술인들과 활동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전국관광명소 DB구축사업’, ‘한국관광공사 청년기획자 아카데미 사업’, ‘경기도 문화예술지원사업 평가사업’,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강릉단오제의 콘텐츠 발전방안 연구사업’ 등 제가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사업을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어요.
Q.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는데 분야를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직무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 경우 시장 분석에 자신 있었는데 해외 공연시장 동향과 축제를 공부하고 현지를 직접 다녔던 경험이 경력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런 폭넓은 경험이 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줬죠. 아마 그때 도전하지 않고 계속 직장생활만 했다면 지금 같은 결과는 없었을 거예요. 머무르기에는 제 젊은 에너지가 아까웠고 고민은 짧게, 실천은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그 처우가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분야처럼 전문성을 꾸준히 쌓고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직업도 흔치 않다고 생각해요. 전문성을 쌓는 시기에는 어렵지만, 그 시기를 극복하면 남들보다 폭넓은 시각과 가능성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면서 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계속 나아가길 바랍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려요. 저도 독립한 후 안정적으로 접어들기까지 10년 이상 걸렸어요.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전문성이 생기고 그것이 나의 브랜드로 만들 수 있어요. 또한 좋은 지원제도를 많이 활용하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저 역시 공연 마케터에서 축제 전문가로 제2의 직업을 찾게 된 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의 도움이 컸어요. 지원 없이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었을 거예요. 늦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축제 전문가로서의 활동 Ⓒ유경숙

축제 전문가로서의 활동 Ⓒ유경숙

Q. 끝으로 커리어 전환 ·확장에 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요즘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자주 쓰이는데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한다는 의미예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의 업무 역량과 장단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부족한 점과 좋은 점을 아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주변에서 보는 나를 알아야 해요. 내가 아는 나 말고, ‘주변에서 알고 있는 나’ 말이죠. 나는 마케팅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의외로 다른 분야를 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 안팎의 자신에 대한 진단을 정확히 해보고 관심 분야를 정해 저처럼 한 발짝씩 다가가고 도전해보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이거구나!’ 싶은 분야가 보여요. 첫 직장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할 때 서점에 자주 갔어요. 일 잘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인정받게 됐는지 궁금했거든요. 몇 년 동안 자기계발서를 200여 권가량 살펴봤는데 공통점이 있었어요. 고민만 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면서 자기를 실험한 점이죠. 저도 부족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며 하나씩 따라 했던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주변에 저처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은 사장’들과 친해지면 도움이 돼요. 현재의 업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업에 조금씩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거든요. 큰 규모의 사업은 큰 사업체가 수행하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를 경험할 기회가 개인에게 오기 어려워요. 프리랜서가 많은 문화계의 특성상 작은 사업을 다수 운영하는 분들과 만나고 기회를 만드는 게 커리어를 전환하고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유경숙

Ⓒ유경숙

Ⓒ유경숙

Ⓒ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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