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QUARE

지난호 보기

  • ∙VOL.10 [2024.05]
  • ∙VOL.09 [2024.03]
  • ∙VOL.08 [2024.01]
  • ∙VOL.07 [2023.11]
  • ∙VOL.06 [2023.09]
  • ∙VOL.05 [2023.07]
  • ∙VOL.04 [2023.05]
  • ∙VOL.03 [2023.03]
  • ∙VOL.02 [2023.01]
  • ∙VOL.01 [2022.11]

SQUARE

예술인의 성장 과정과
커리어패스(Career Path)

예술인은 나고 자란 환경으로부터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질료로 예술적 성취를 이뤄내며
자기 ‘커리어’를 쌓아간다. 예술인에게 삶의 경험은
그 자체로 커리어가 되기도 하고 직업적 ‘성취’는
그 자체로 예술인을 예술 자체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예술인의 커리어는 무엇이며
커리어패스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글_이양구(극작가)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이 원고를 청탁받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Briefe on einen Jungen Dichter, 1929)>를 삼십 년 만에 다시 읽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은 편지를 공개한 사람이 26년 전 릴케의 편지를 받았던, 이제는 더 이상 젊다고 말할 수 없는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Franz Xaver Kappus)였다는 점이었다. 1903년 자신의 시를 출판하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계속해서 시를 써야 할지 고민이라며 당대 최고의 시인에게 상담을 요청하던 카푸스는 26년 후 릴케의 문장을 엮은 책의 서문을 썼다. 1902년 늦가을 오스트리아 빈의 신시가에 있는 육군대학 학생이었던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의 습작 시를 릴케에게 보내며 비평을 요청한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과 함께. 카푸스는 습작 시를 다른 사람들이 쓴 시와 비교하거나 잡지사에 보내고 출판을 거절당할 때마다 느끼는 불안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계속해서 시를 써도 되는지 릴케에게 물었다. 릴케는 예술작품을 대하는 데 비평적 언사만큼 부당한 일은 없다면서도 카푸스의 시 <나의 영혼>에 ‘독자성은 없지만 개성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은밀한 소질이 내포돼 있다’는 평을 한다. <레오파르디에게>라는 ‘아름다운 시에는 위대하고 고독한 시인과의 어떤 친근감이 자라고 있다’는 말까지 적었으니 이 비평을 받은 젊은 시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마도 시인으로서 카푸스에게 의미 있는 커리어가 시작됐다면, 그것은 릴케와 대화(비평)가 시작된 그 시점이 아니었을까. 비평을 동반하는 대화는 상대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한다.
릴케와 카푸스 ⒸWikipedia

릴케와 카푸스 ⒸWikipedia

그런데 릴케는 서둘러 시를 출판(데뷔)해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젊은 카푸스에게 남에게 인정받는 시인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시인이 되라고 반복해 말한다. ‘내가 계속 써도 되는지’를 남에게 묻지 말고,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스스로 묻고,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내적 명령의 근거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자기 세계에 깊이 침잠하게 되면 자기 시가 좋은 시인지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출판사가 자기 시에 흥미를 갖도록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릴케에게 시인은 자기 생명이 솟아나는 밑바닥에 귀를 기울이는 실존적 존재이며, 결과로서 작품은 거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지 외부에서 오는 대가가 아니다. 그러나 카푸스가 계속해서 자기 혼자 시를 쓴다고 해서 사회에서도 시인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카푸스는 출판이라는 ‘제도’를 거쳐 작품을 발표할 때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 시인은 출판을 통해 사회적으로 출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후에라도 활동을 개시할 수 있다. 윤동주가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3부 작성해 두었던 자필 원고는 그의 사후 정병욱의 노력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84)가 돼 빛을 봤다. 정병욱이 없었다면 윤동주는 우리가 아는 그 시인으로는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데뷔 그 후,
예술가의 성장 과정
사회적인 의미에서 예술인이 된다는 것은 우선 예술인으로 데뷔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인으로서 첫 경력을 시작하는 데뷔 제도는 장르마다 다양하게 설계돼 있으며 진입 장벽의 높이는 서로 다르다. 문학을 예로 들면 매년 연말 공모를 거쳐 새해 첫날 일간지 지면에 발표되는 신춘문예를 통한 데뷔가 꽃처럼 여겨졌다. 한편 이름있는 계간지의 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할 경우 해당 잡지에서 차기작 발표를 지원해주는 덕에 계간지를 통해 한 번 더 데뷔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알고 있다. 반대로 문예지 데뷔를 거친 후에도 이렇다 할 발표 기회를 얻지 못했을 때는 신춘문예를 통해 다시 한번 데뷔할 때도 있다. 요즘은 어느 정도 공인된 데뷔 제도를 거치지 않더라도 자비를 통해 발표나 출판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예술계로 진입한다.
어느 경우라도 일단 데뷔를 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어야 예술인으로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데 사실 대다수의 데뷔 제도는 데뷔 이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일단 데뷔 후 활동을 개시한 젊은 예술인이 작품활동을 지속하려면 데뷔 이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자수성가나 가족의 지원으로부터 국가나 자본의 지원, 혹은 팬들의 응원에 이르기까지 응원과 지지 없이 예술인이 성장하기는 어렵다. 같은 신춘문예라도 희곡을 예로 들면 데뷔 이후가 어느 정도는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봄 작가, 겨울 무대 낭독 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봄 작가, 겨울 무대 낭독 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봄 작가, 겨울 무대 낭독 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봄 작가, 겨울 무대 낭독 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은 2008년부터 신춘문예로 데뷔한 극작가를 대상으로 차기작을 의뢰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 프로그램을 제도화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게 된 배경에는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극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연극계를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있었다. ‘봄 작가, 겨울 무대’를 통해 데뷔한 극작가가 극장이 매칭해주는 연출가나 극단과 만나 작업하는 즐거운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원고료가 얼마 되지도 않을) 차기작을 쓰게 되는 운명에 처하기를 바란 것이다. 또한 예술가를 예술가로 만드는 것은 공적인 제도만이 아니다. 사실 데뷔하기까지 과정, 혹은 데뷔 초 성장 과정에는 학력, 재력, 네트워크 등 각종 사회적 자본이나 상징적 자본이 영향을 미친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부모의 직업과 재력이 예비예술인의 경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 시절부터 데뷔하기까지 감수성, 예술 향유 경험, 교육 등에 영향을 주는 부모를 비롯해 각종 사회적 자본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고 어떤 예술가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 학교나 지역사회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선후배나 동료, 교사는 이러한 자본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명망 있는 예술가의 성장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을 찾지 못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경우 이름 있는 예술학교 진학은 그 자체로 예술인으로 성장해 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훌륭한 인프라와 교수진, 선후배, 관련 예술학과 동료들과의 교류는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낸다. 더구나 공연이나 영화처럼 고가의 장비나 전문인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초기 경력을 형성하는 데 학력 자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젊은 시인 카푸스가 릴케에게 자신의 습작 시가 담긴 편지를 보내기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릴케가 자신이 다니고 있던 대학교의 선배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카푸스가 대학 교정에서 릴케의 시를 읽고 있을 때 교목 호라체크 선생이 다가와 15년 전 같은 교정에 있었던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릴케는 카푸스가 보낸 편지에서 호라체크 교수의 이름을 보게 돼 기뻤다며 스승이 자신을 기억하는 것에 감사를 표하고, 깊은 존경심과 감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낸 첫 번째 답장은 호라체크 교수에게 보낸 답장이기도 했다. 만약 호라체크 교수가 아니었다면 카푸스는 릴케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을까. 릴케는 신뢰감을 바탕으로 답장할 수 있었을까. 대학과 호라체크 교수는 카푸스를 릴케와 이어준 훌륭한 사회적 자본이었다.
커리어패스를 안내하는
내비게이터들
먼저 데뷔에 성공한 예술인이 지속해서 ‘경력’을 쌓아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피드백이다. 여기서 피드백은 반드시 작품에 대한 미학적 평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구상부터 제작 과정, 발표, 평가, 차기작 구상에 이르기까지 해당 업계나 공공기관, 민간 자본, 시민 사회, 향유자들까지 아우르는 전반적인 피드백을 의미한다. 명시적 묵시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 피드백은 향유자의 SNS를 통해 공유되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의 리뷰 등으로 공개되거나 각종 심사나 시상 제도에 반영되기도 한다. 누가 어떤 평가를 했는지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문학이라면 주요 계간지에서 원고 의뢰나 출판 제안을 받는 일로 이어지며, 공연이나 시각 분야라면 주요 민간 혹은 국공립 단체에서 작업 의뢰를 받는 일로 이어질 것이다. 피드백은 예술인의 다음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음은 사회적 인정이다. 데뷔 경로와 초기 성장 과정이 어떻든 일단 작품활동을 시작한 예술인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한다면, 각종 인정 체계에서 승인받기 위한 과정을 겪는 것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국가나 공공 영역은 각종 훈장이나 국공립 예술단체가 부여하는 인정을 통해 예술가의 경력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점차 독립된 심사위원회와 거액의 상금, 해외 진출 지원을 겸비한 민간 자본의 보상 체계가 더 권위를 갖게 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고, 최근에는 예술의 사회 참여가 확대하면서 권위 있는 비영리법인이나 민간 단체가 예술적 인정을 부여하는 주체로 부상하기도 한다. 예술인 동료들 간의 상호 인정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인정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각종 경연대회 수상이 예술인의 경력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특히 해외에서의 유학이나 인정, 수상 등은 그 자체로 예술가의 화려한 경력이 된다.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예술인이 해외의 유명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거나 수상을 하면서 국내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자비를 들여서 해외에서 작품 발표를 한 후, 그것을 경력 삼아 국내에서 발표를 추진하는 예도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인정을 획득한 예술인은 심사위원이나 평가위원이 돼 다른 예술인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예술대학의 교강사가 되거나 국공립 예술단체의 예술감독, 문화재단 대표, 장관 등 고위 공직자의 지위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경력을 쌓는다. 대한민국예술원의 경우처럼 별도의 근거 법률까지 만들어서 사실상 신분을 종신까지 보장받는 제도도 있다. 한마디로 크고 작은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경력’을 더 쌓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경력이 많다고 더 훌륭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다.
각자의 길이 만들어지는
예술인의 커리어
릴케는 카푸스에게 보낸 1908년의 마지막 편지에서 예술도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예술에 대해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교묘하게 예술에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예술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반(半)예술적 작업에 떨어질 위험에서 벗어나 황량한 현실 어딘가에서 고독하고 용감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릴케의 바람은 단지 카푸스 하나만을 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국가나 민간 자본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예술이 필요한 곳에 함께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때로 거칠고 특별해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예술가나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럴듯하게 기록돼 포트폴리오로 시청각화되지 못해 거기에 합당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과 대화 속에서 반복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곤 한다. 그들의 삶은 작품과 분리되기보다는 그들의 활동과 삶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고 예술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마치 아직 출간되기 전 릴케의 편지와 같을 수도 있고, 카푸스가 누락시킨 릴케에게 쓴 편지와도 같을 수 있다. 카푸스는 릴케의 답장만을 작품으로 공개했지만, 카푸스의 편지 없이 릴케의 답장은 없었을 것이다. 릴케의 답장은 그 자체로도 예술작품이지만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흔적(index)이기도 하다.
릴케와 카푸스는 서로를 자기 영혼의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카푸스에게 그것보다 더 큰 인정과 의미가 부여된 예술활동이 또 있었을까. 예술인에게 가장 좋은 피드백은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깊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하는 대화가 아닐까. 플라톤의 논의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대화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편지가 끊어지고 생활에 쫓겨 산 지20년이 넘은 카푸스가 자신의 시 대신 릴케의 편지 열 통을 묶어서 세상에 내놓은 답장에서 사람들에게 ‘우선 입을 다물고 릴케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고 말했던 것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경청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까닭은 아니었을까. 갈기갈기 찢긴 나라에서 예술인의 커리어패스를 설계하고 지원하는 제도와 정책을 설계하는 일이 예술인들의 우열을 나누기보다는 개인적, 공적, 집단적 대화의 매개로서 예술(가)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자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찬란한 고독을 위한 릴케의 문장』, 옮긴이 송영택, 문예출판사. 2018
이양구
이양구(극작가)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별방>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 원회 AYAF 1기로도 선정됐다. 희곡 <당선자 없음>(2022)으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 제31 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