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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예술과 직업, 미묘한 간극에서
예술인으로 살기

직업을 ‘지속적인 소득 활동’이라고 정의할 때
예술인의 낮은 소득은 직업성 여부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활동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시도는 종종 우리 사회를 바꾸기도 합니다.
에이스퀘어 9호에서는 예술가의 커리어와
예술활동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글_김대현(에이스퀘어 편집위원장)
규정할 수 없는 예술인의 개념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는 ‘소설을 쓰는 일은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언뜻 소설의 전문성을 부정하고 소설이라는 양식과 소설가에 대해 폄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루키는 오히려 소설에 대한 상찬이라 부릅니다. 기존의 것과 어긋나는 어느 누구의 사유와 양식도 포용할 수 있는 폭넓음과 다양성이 소설을 다른 언어의 연쇄들과 구분해주는 근본적인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소설과 소설가를 예술과 예술인으로 치환해도 무방합니다. 우리 시대의 예술 또한 화석화된 사유와 양식에 대한 저항을 최우선의 기율로 삼기 때문입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산출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진입이 아니라 지속입니다. 하루키 또한 앞서 언급에서 ‘소설을 쓰는 것’과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또는 ‘소설가로서 먹고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부연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것’, 또는 ‘어떤 종류의 자격’ 같은 것이 요청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의 말처럼 아직 가시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그것은 재능의 영역일 수도 있고, 제도와 양식 내에서 행해진 훈련의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직 규명하지 못한, 아니 영원히 규명할 수 없는 유동적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불확정성은 우리가 예술을 예술로, 예술인을 예술인으로 인식하게 하는 모종의 ‘공통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스퀘어 9호는 어느 하나의 양상으로 포섭되기 어려운 우리 시대 예술인의 범주와 인식, 예술인들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직업군의 양태와 특징에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함께, 예비 예술인들이 예술가로 진입하고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로서 예술대학과 예술인의 커리어패스,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예술인 경력개발 제도에 대해 검토합니다. 또한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이외에 현장예술인들이 생각하는 예술인의 커리어 관리와 전환을 대담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며, 디지털 시대에 조응해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예술인들의 새로운 시도도 소개합니다.
예술인의 커리어와 직업적 발전
SQUARE는 ‘예술인의 커리어, 직업적 발전’이라는 주제로 여섯 편의 글을 게재합니다. 한준의 ‘진화와 확장을 거듭한 예술가의 본질에 대해’는 ‘예술가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수요자의 요청과 미적 규범에 종속된 장인의 지위에서 창작자의 규범을 우선으로 하는 자유 예술가로의 분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비범한 재능과 기행으로 표상되는 예술가에 대한 공중의 낭만주의적 환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접근합니다. 또한 해당 사안에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전문직과 달리 그 경계를 획정하기 어려운 예술의 개방성으로 인해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어려운 예술인 지위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합니다.
이슬기의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과 정책적 시사점’은 최근까지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주요 쟁점이었던 예술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의론을 소개하고 노동과 창작활동을 구분하는 것의 현실적 어려움, 그럼에도 일반 노동과 달리 비정형의 가치 창출 및 평가 과정을 가진 예술의 특수성을 설명합니다. 이와 함께 예술인들이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군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낮은 연령’, ‘저소득’, ‘비정규직’, ‘초단기 근로’ 등의 형태로 대변되는 예술 직군의 특징을 적시하고 향후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을 설계할 때 일반 고용노동 정책과 연계해 상기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이양구의 ‘예술인의 성장 과정과 커리어패스(Career Path)’는 오스트리아의 작가 릴케(Rainer Maria Rilke)와 젊은 시인 카푸스(Franz Xaver Kappus) 사이의 예화를 소개하고 스스로의 인정만으로 구성되는 자기 정체성의 표지로서의 예술가와 외부의 승인을 요하는 제도적 범주로서의 예술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어 전자의 예술가를 사회적 의미의 예술가로 형성하는 것은 이른바 등단∙출판 등과 같은 제도적 절차와 함께 학력, 인맥, 환경 등 그를 둘러싼 유무형의 사회적 자본이 요청되며 이후 그의 산출물에 대한 다양한 경로의 피드백과 동료 예술가를 비롯한 사회적 승인이 우리 시대 예술가의 커리어패스라고 진단합니다.
임근준의 ‘오늘의 미술학교는 어떤 인재를 배출하는가?’는 미술대학에 산재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먼저 시대에 조응하지 못하는 미술대학의 커리큘럼 구성과 이에 대한 정보의 부재로 학생의 선택이 수동적으로 제한되고 있으며, 입시 과정에서 복잡한 전형과 기본기보다는 ‘창의력’이라는 모호성을 중시함으로써 학생층이 이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중상류층에 편중됐다고 지적합니다. 이와 함께 제너럴리스트를 요구하는 ‘과정-지향적’ 교육과 기능적 숙련도를 요청하는 ‘내용-지향적’ 교육 사이의 딜레마와 미술대학 졸업생의 진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강주의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예술인 경력 개발 제도의 문제’는 문화기본법, 고용정책기본법, 문화예술진흥법 등 다양한 법률에 근거해 예술인 양성 및 예술인 경력 개발에 있어 국가가 부담해야 할 책무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지원정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계 직무와 고용 시장의 동향 사이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점에 주목하고 예술인 경력 개발 비전이라는 목적 아래 각 지원 기관의 기능 연계와 조정이 필요하며 예술 생태계에 대한 적확한 통계 자료를 생성해 생태계 내부의 수요공급에 부합하는 예술인 경력 개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지현의 ‘사회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예술가 x 기업가 정신’은 예술인의 겸직과 겸업의 비중이 높은 현상을 우려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의 시선에 의문을 품고 낮은 보수와 불안정성을 배제한다면 겸직과 겸업 그 자체는 예술인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를 예술인과 창업자의 속성과 결부한 이른바 ‘예술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춰 예술인들이 자신의 진로 결정에 수동적으로 머무르지 말고 적극적인 자기 혁신을 통해 예술적 가치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AROUND에서는 ‘예술가의 커리어 도약을 위한 제도와 정책의 방향’을 주제로 민소윤 대금연주자, 장성욱 소설가, 지경민 안무가, 추수 미술가와 함께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일반적인 직업과 달리 예술가의 커리어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장르별 차이는 어떠한지, 그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응답과 그러한 비정형성과 불규칙성으로 인해 예술인들이 커리어를 증명하거나 발전시키기 어려운 지점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예술 정책기관에서 구분하는 경력 단계별 지원정책의 장단점을 현장에서 체감하는 예술인들의 진솔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SCENE은 ‘경험이라는 자본으로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축제 기획자 겸 세계축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는 유경숙 소장의 인터뷰를 수록했습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전공과 직업이 불일치하는 상황, 설령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직이 잦은 현실에서 커리어의 확장이나 전환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입니다. 그것이 비정형성을 숙명으로 인지하는 예술인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유경숙 소장은 세계 일주를 통해 해외 축제와 콘텐츠를 소개한 경험에 기반해 예술인들의 활동이 창작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향유자에게 도달하는 과정까지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과정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전문성을 확보해 역량을 키울 수 있을 때 커리어의 확장과 긍정적인 의미에서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FLOW는 ‘대중과 작가를 잇는 영감의 고리,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라는 주제로 작품과 행적을 각자의 개성을 담은 웹사이트에 기록하는 예술가들의 활동을 조명했습니다. 전 세계인에게 친숙한 검색 엔진 구글의 레이아웃을 복제한 홈페이지 제작을 통해 가상과 실제, 진짜와 가짜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게 하는 남다현 시각예술가의 웹사이트와 27년에 걸친 작업 결과에 대한 아카이빙의 공간이자 한 작가의 시작과 지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인 방정아 시각예술가의 웹사이트, 작가의 작품활동에 대한 외부의 정리가 아닌 작가가 직접 큐레이터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오연진 시각예술가의 웹사이트 소개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편 많은 분들께서 기대하시는 은 아쉽게도 내부 사정으로 게재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호에 보다 새로운 주제와 더욱 정밀한 분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기초예술 분야 예술인의 연 평균 소득이 456만 원으로 산출된 것처럼 직업이 생활의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소득 활동’이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가끔 예술과 직업이라는 두 개념어의 친연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득의 다소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적 요청에 부응해 전문성을 가지고 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범주화된 표상으로 예술인의 직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개념의 친연성 여부와 무관하게 이를 제도적으로 융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술과 직업 사이의 미묘한 긴장 상태가 아직 남아 있는 지금 양자의 적합한 관계 설정에 대한 질문과 응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대현
김대현(에이스퀘어 편집위원장)

2011년 ‘플랫폼’ 문화비평상, 2012 ‘실천문학’ 문학평론 신인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청색종이’ 편집주간, ‘뉴래디컬리뷰’ 편집위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의 징표-이름의 존재론과 성의 정치학』, 『불온한 제국』, 『이소선의 기억과 기록(편저)』, 『전태일의 친구들(편저)』, 『법정에서 만난 역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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