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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연원(淵源)과
문화예술

인류세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과학적 개념이지만,
인간이 지구 행성의 변화에 주요 행위자로 거듭났음을
내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깊은 성찰과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실천적 개념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은 인류세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대안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선,
인류세의 연원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인류는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글_박범순(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
문화예술 : 시대 변화의 기록과 독해
자연에 대한 관념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세계사적으로 자연관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16세기와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일어났다. 이 시기는 기독교와 봉건제 중심의 중세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로 이행하는 때라는 뜻에서 근세(近世, early modern)라고 부르기도 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배경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사회변혁을 촉진했고 신·구교도 세력 간에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켰다. 최초의 국제전으로 일컬어지는 30년 전쟁 끝에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새로운 질서, 즉 종교의 자유, 국가 주권 개념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법적 질서의 도래를 알렸다. ‘대항해의 시대’ 또는 ‘지리상의 발견’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대에는 해상무역이 팽창했고, 이와 함께 상업자본주의가 크게 성장했다. 또한 이때는 과학혁명의 시기였다.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졌던 지구 중심의 우주관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등에 의해 깨졌고, 행성의 운행과 물체의 낙하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운동을 일관성 있게 설명할 법칙이 나왔다. 세계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커다란 기계라면, 신은 처음에 동력을 주는 태엽 감는 일만 한 뒤 인간사에는 개입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게 됐다. 마찬가지로 대지는 신비로운 생명력의 보고가 돼 인간 활동을 위한 값싼 자원의 저장소가 돼버렸다.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 ⒸWikimedia Commons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변혁기에 평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브라반트 공국(현재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걸쳐있는 지역)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유명한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1558)>에서 농민들의 일상과 세계관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이 풍경화의 주인공은 의심할 바 없이 화폭 중앙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농부다. 한 손에는 쟁기를, 다른 손에는 채찍을 쥐고 시선은 땅을 향한 채 밭 가는 일에 여념이 없다. 농부의 오른쪽 옆에는 양 떼를 돌보는 목동이 보인다. 목동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 무언가 볼 것이 생겼거나, 아니면 잠깐 휴식이나 명상을 취하고 있는 모습일 수 있다. 목동의 뒤편에는 바다가 있고 우측 아래에는 낚시질에 열중한 어부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면 밀랍으로 새털을 엮어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서 떨어졌다는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는 어디에 있나? 그의 얼굴은 찾을 수 없고 단지 어부가 쪼그려 앉아 있는 앞에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리만 보일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카로스의 추락에 농부, 목동, 어부가 시선을 전혀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브뤼헐은 왜 이카로스를 이런 방식으로 풍경화에 굳이 포함했을까? 여기서 바로 화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카로스가 육지가 아닌 바다에 추락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다와 선박은 예측하기 어렵고 위험천만한 신세계를 상징하며, 육지와 쟁기는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구세계를 가리킨다. 큰 돛을 단 배는 섬 사이를 가로질러 멀리 보이는 신도시를 향해 간다. 이곳은 유럽 상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안트베르펜(Antwerpen)이다. 전통과 육지에 속박된 세계에서 기회와 위험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출구 도시1이다.
16세기 중반, 시대 전환의 긴장감을 담고 있는 브뤼헐의 풍경화는 17세기 초 이른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전성기에 크게 유행했던 정물화와 대조된다. 아름다운 꽃들과 살아있는 듯한 곤충들, 바구니에 담긴 탐스러운 과일과 식탁 위를 기어가는 도마뱀, 값비싼 식기와 남겨진 음식들, 사냥터에서 잡아 온 것 같은 새와 짐승들, 이 모두 귀족 부럽지 않은 부와 권력을 소유하게 된 신흥 부르주아지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구교의 타락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담고 있다.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에는 탐욕과 유혹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현세의 풍요와 영화는 한시적이며 덧없다는 종교적 메시지도 들어 있다. 당시 정물화의 대가로 손꼽히던 빌럼 클라스 헤다(Willem Claesz Heda)의 <금박 잔이 있는 정물화(Still Life with Gilt Goblet, 1635)>에서도 그가 살던 하를렘(Haarlem) 도시 사람들의 물적 풍요와 종교적 절제의 병존을 잘 볼 수 있다.
금박잔이 있는 정물화 ⒸWikimedia Commons

금박잔이 있는 정물화 ⒸWikimedia Commons

정물화에서도 시대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수십 년의 간극이 있지만, 헤다의 정적인 정물화를 브뤼헐의 동적인 풍경화와 나란히 두고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식탁 위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육지가 아닌 바다를 통해 왔다. 인근 바다인 북해에서 수확했을 신선한 굴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옆에 놓인 식빵의 재료인 보리는 상당 부분 북쪽 발트해 연안 국가에서 수입된 것이다. 오른쪽 구석에 껍질이 반쯤 벗겨진 레몬은 가장 동적인 모습인데 남쪽 지중해 연안이나 좀 더 멀리 네덜란드령 브라질의 농장에서 재배된 것이다. 가운데 초록빛 고블릿에 담긴 백포도주는 프랑스산이거나 라인 지방산이고, 여기에 동인도 지역, 즉 인도네시아 섬들에서 수확된 정향이나 생강이 첨가되기도 한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고급스러운 식기들도 마찬가지다. 고블릿과 마찬가지로 식초를 담는 조그만 양념 병은 베네치아산 유리로 만든 것이다. 그 옆의 소금 통과 중앙에 쓰러져 있는 잔은 은으로 만든 것인데, 이 광물은 독일이나 스페인 또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채굴된 것이다. 소금 통에 수북이 쌓여있는 소금과 굴 위의 원통형 종이에 들어있는 사치품인 후추는 인도에서 온 것이다. 헤다가 그린 식탁은 세계를 보는 창 또는 ‘세계 지도’ 그 자체였다.2
비가시화된 것 : 테라포밍
이처럼 예술가는 시대 변화의 기록자이자 해석가이다. 그들 작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제외된다. 위의 사례에서는 농촌과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유럽 저지대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변화의 배경 또는 그 결과, 예컨대 네덜란드인들의 80년 독립전쟁(1568-1648), 동인도회사 설립(1602), 해상무역 패권 장악 등이 가시화되지만, 다른 대륙의 자연 파괴와 주민 말살 등은 비가시화된다. 파괴와 말살의 도덕적 감정은 시장거래의 자본주의적 공정성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자연은 비활성화된 상품으로 식탁에 오를 뿐이다. “전쟁 없는 무역도, 무역 없는 전쟁도 없다”란 구절에서 당시 해상무역의 폭력성을 엿볼 수 있다. 이 말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 얀 피터르스존 쿤(Jan Pieterszoon Coen, 1587~1629)은 동인도회사의 총독으로 재임 중 1619년 자와섬(자바섬)의 자야위카르타(현재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왕국을 무너뜨리고 식민지 지배의 거점을 건설했다. 동인도 지역의 해상무역에서 경쟁하고 있던 영국에 독점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일이다. 도시 전체를 물류창고로 바꾸고 요새화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와 나라의 이름도 ‘바타비아(Batavia)’로 바꿨다. 바타비아는 네덜란드인들의 조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정복된 곳의 오랜 전통과 역사와 풍경을 지우는 ‘테라포밍(terraforming)’, 즉 지명 바꾸기를 통한 성격 전유하기의 결과였다. 이후 300년 넘게 이곳은 식민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바타비아로 불리게 됐다.3
작가 미상, <반다 제도 육두구>, 1619 ⒸWikimedia Commons

작가 미상, <반다 제도 육두구>, 1619 ⒸWikimedia Commons

네덜란드가 이처럼 동인도 지역의 섬들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향신료 중에서도 정향(clove)과 육두구(nutmeg)는 말루쿠 제도의 특정 섬들에서만 자라는 나무의 열매였다. 정향은 테르나테섬에서, 육두구는 말루쿠 제도의 일부인 반다 제도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말루쿠 제도가 지구의 활성을 보여주는 단층선에 있어 화산 활동으로 특이한 생물종이 자라게 된 것이다. 정향과 육두구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축복인 동시에 저주의 선물이 됐다. 1621년 쿤은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반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론토르섬에 있는 정착촌 마을 셀라몬을 공격했다. 동인도회사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을 원주민이 습격하려고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정확한 근거는 없었다. 이 작은 마을을 공격하기에 함대의 규모는 너무나도 컸다. 네덜란드 선박 18척을 포함한 50여 척의 배와 2,000여 명의 병력은 10주 만에 반다 제도의 마을과 요새화된 장소를 완전히 파괴하고 불태웠으며 약 1,200명을 생포했다. 왕의 통치를 받지 않던 마을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던 수십 명의 원로들은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참수당했다. 마을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나갔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섬의 고지대로 도망가 저항하기도 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데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자부심 많고 진취적인 무역 공동체였던 반다족의 세계는 간단히 사라졌다. 쿤은 신의 은총에 감사했다. 제노사이드(genocide)가 일어난 그 자리에는 육두구 나무가 더 심어졌고, 외지에서 끌려온 노예와 장사꾼들로 채워진 새로운 세계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반다 제도에서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룬섬은 이 과정을 면했지만, 1667년 네덜란드 식민지로 복속됐다. 네덜란드가 반다 제도를 포함한 말루쿠 제도에서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려고 협상을 통해 영국에 넘긴 것은 뉴암스테르담, 오늘날의 뉴욕이었다.
자연의 죽음
반다인의 비극적인 운명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역사에서 익숙한 이야기이다. 16~17세기에 남미와 북미에 살던 수많은 종족은 유럽의 식민주의자들과 싸우고 도망가고 살육당하고 병에 걸려 죽어갔다. 인구는 70~90%가 줄어 그들이 경작하던 영역은 다시 수풀이 차지했고, 그 영향으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급격히 줄어 지구의 평균온도가 잠시 떨어지는 ‘소빙하기(Little Ice Age)’를 맞기도 했다(소빙하기의 원인은 이외에도 태양 흑점 운동 변화, 화산 활동에서 나오는 연기와 재, 대서양 조류의 변화 등 여러 가설이 있다). 그들이 살던 마을, 사냥하던 강과 산과 들은 테라포밍을 당해 다른 이름이 붙여졌고, 신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정복자, 개척자, 종교인, 사업가 등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끌려와 거대농장 플랜테이션에서 일해야 했던 노예들도 그 땅에 살게 됐다. 최근 일군의 역사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이 제기하듯 버지니아에 최초의 노예선이 들어온 1619년을 기점으로 미국사를 새롭게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세계사적 변화가 미친 영향을 반영하자는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 있다.4
16~17세기에 일어났던 변화를 단순히 제국주의·식민주의·자본주의의 팽창에 들어있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프레임에서만 보면 그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변화가 유럽에서 부상하던 새로운 형이상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두구와 같은 물질은 한낱 ‘질료(matter)’에 불과하고 인디언들이 차지하고 있던 광활한 대지는 비활성의 자원 저장고이니, 여기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얻어내는 작업은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신의 계명에 충실히 따르는 일이라는 관점이 퍼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대법관을 지냈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반다 제도에서 학살이 자행되고 있을 즈음 출판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정복과 종족 말살을 합리화했다. “일부 국가에서 민법에 의해 불법화되고 금지된 특정인이 존재하듯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에 의해,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불법화되거나 금지된 국가들도 있게 마련이다. ·… (따라서) 시민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가 … 그들을 이 지구상에서 제거하는 것은 합법적일뿐더러 신의 뜻에도 부합하는 일이다.”5 캐럴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자연의 죽음』(1980)에서 법 이론으로 무장한 베이컨의 세계관 이면에 있는 폭력성으로 연결된 그의 자연관과 여성관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베이컨이) 자신의 과학적 목적과 방법론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 대부분은 법정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을 기계적 발명품에 의해 고문당해야 하는 여성으로 간주하는지라, 마녀 고문에 쓰인 기계 장치와 마녀재판의 심문을 강력하게 시사한다.”6 자연과 소통하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진 마녀를 고문하는 일이 정당한 것처럼, 자연을 파괴하면서 천연자원을 추출해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관점이 이미 과학혁명의 시기에 나왔다는 것이다.
인류세의 문화예술
2015년 3월, 인류세 특집으로 발간된 『네이처(nature)』 저널의 표지 그림은 이 개념의 주요 메시지와 함께 거기에 숨어있는 편견도 보여주고 있다. 청색의 해양, 녹색의 식물, 흰색의 구름 등은 자연을 상징하고, 회색빛 건물과 붉은색의 버섯구름과 연기는 산업 및 군사 활동을 나타내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류세는 지구에 큰 흔적을 남기고 있는 동시에 인간의 몸에도 새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간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이 그림의 일러스트레이터는 교묘하게 얼굴의 눈 부위를 가리고 흐릿하게 처리해 누구인지 잘 모르게 했지만, 뛰어난 복근을 가진 백인 남성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자신이 초래한 일의 결과를 인지하지 못하는 주체를 정확히 나타냈지만, 인류세의 인류에 대한 세밀한 감각을 보이지는 못했다. 인류세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받았는가?
『네이처』 Volume 519 Issue 7542 Ⓒnature

『네이처』 Volume 519 Issue 7542 Ⓒnature

인류세는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종’의 멸종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까. 인류세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와 현재에 있다. 단순히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종말을 이미 겪은 인간 종족과 그 후손,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긴 채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 찢기고 상처받은 자연이 지극히 자연적인 방법으로 인류문명을 파괴하는 방식들, 이런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1940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노트에서 ‘역사의 천사’가 나타나 파시즘으로 인한 파국적인 상황에서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해주길 간절히 희망했다. 역사의 천사는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는 믿음을 붙든 것이다.
인류세에서 문화예술이 힘이 있는 이유는 역사의 천사를 옭아매고 있는 것들, 그의 날개를 붙잡고 있는 것들, 고통과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상상하고 표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 비가시화된 사건들, 비인간의 행위성을 나타낼 수 있을 때, 인류세의 상황을 만든 주체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세에 대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는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는 저서 『육두구의 저주: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2022)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만약 당신의 세상을 끝장낼 힘을 가졌으며, 기어이 그렇게 할 생각임을 분명히 밝힌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심정이겠는가?” 누가 이 심정을 표현해줄 수 있을까?
  1. 이 풍경화를 통해 역사적 변화를 읽어내는 시도에 관해서는 Owen Hannaway (1997), “Reading the Pictures: The Context of Georgius Agricola’s Woodcuts,” Nuncius 12(1): 29-66을 참조. 이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대해서는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 . and the surrounding controversy,” Google Arts & Culture 참고
  2. 헤다의 정물화에 대한 해석은 Jason Farago, “A Messy Table, a Map of the World,” New York Times (May 8, 2022) 참고
  3. 아미타브 고시, 『육두구의 저주: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에코리브르, 2023) 참고
  4. “The 1619 Project,” New York Times (Aug. 14, 2019).
  5. 고시, 위의 책, p.40 재인용.
  6. 고시, 위의 책, p.354 재인용.
  7. 고시, 위의 책, p.15 재인용.
박범순
박범순(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과학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류세연구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생명과학과 사회, 동아시아 인류세, 한국 환경사 등이며, 특히 여러 학문 분야 사이에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등장할 때 그것들이 사회에서 수용되는 과정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인류세 개념을 활용해 인문학, 과학, 예술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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