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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유럽의 사례로 바라본
예술과 기술 융합의 미래

창조 산업이 국가 경제의 원동력인 영국에서
공연예술은 전통이자 이익을 창출하는 핵심 산업이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금,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유일한 한국 공연 전문 회사인 아이러브스테이지의
김준영 대표에게 유럽의 예술과 기술에 관해 물었다.
글_ 편집실 | 인터뷰이_ 김준영(아이러브스테이지 대표)
확장성에 초점을 둔
유럽의 예술과 기술
Q. 영국 웨스트앤드에서 ‘아이러브스테이지’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현지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아이러브스테이지는 영국 웨스트엔드의 유일한 한국 공연 전문 기업으로 우리나라 공연의 영미 진출과 공연문화 콘텐츠 개발, 라이선스, 대본 창작, 투어링 투자 제작을 담당하고 있으며 실시간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티켓 플랫폼을 한국어로 제작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런던을 중심으로 프로듀서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공연의 해외 유통을 관리하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공연계 흐름과 소식을 국내 공연 전문 매거진을 통해 전해드리고 있어요. 지난 3월에는 연극 ‘I Lost My Virginity to Chopin’s Nocturne in B-Flat Minor’의 초연을 이끌었고, 오는 6월에는 ‘Steve and Tobias Versus Death’를 선보일 예정으로 영국 현지 작가, 연출가, 배우들을 모두 한국으로 초청해 국내 창작진들과 공동 투자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전 세계적으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공연예술은 기술과의 결합이 가장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분야인데요. 유럽의 공연예술 시장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예술과 기술이 처음 결합한 사례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미디어 아트 실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술 분야에서는 미디어 아트와 결합한 추상 작품이 많이 등장했고, 공연 분야에서도 미디어 아트와 퍼포먼스가 합쳐진 행위 예술 작품이 주를 이뤘습니다. 과거에는 미적 정보에 충실한 반면 대중성은 다소 결여된 작품이 많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이 생겨났고, 젊은 세대는 오프라인 보다 온라인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것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이에따라 특정 기술로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기술을 활용해 예술의 확장성을 높이는 방법, 즉 관객이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Q.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유럽 정부가 가장 초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유럽은 창작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장벽을 낮추고, 작품의 확장성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관객이 작품을 보고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죠. 그 예로 2015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에서 처음 선보인 자막 안경(smart glasses)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리어왕!!>의 프랑스어 공연에 대만 문화부 장관을 초대하려고 했지만, 대만 측에서 언어 때문에 망설였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극에 사용되는 언어를 다양한 국가 언어로 번역해 자막으로 지원하는 자막 안경을 개발했습니다.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세계 유수의 작품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접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영국 국립극장(Royal National Theatre)에서도 이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프랑스처럼 자막을 지원하지만, 그 목적은 언어 장벽이 아닌 청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죠. 여러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영국 역시 관객의 평균 나이가 매우 높습니다. 나이가 들면 필연적으로 청각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영국 국립극장은 향후 20년 이내에 청력 장애가 있는 사람이 1,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관객의 신체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자막 안경이 도입된 것이죠.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자막 안경의 경우, 자막이 자동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막을 띄워주는 오퍼레이터 개입이 필요했어요. 이와 달리 영국의 자막 안경은 배우의 목소리를 자동으로 인식해 실시간으로 번역되는 방식으로 작동됩니다. 객석 어디에 앉아있든 배우의 목소리만 들리면 자막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현재 자막안경은 영국 국립극장에서는 현재 완벽하게 상용화돼 있고, 필요에 따라 영국 내 다른 공연장에도 대여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 국립극장의 자막안경 ⒸRoyal National Theatre

Q. 예술과 기술과의 융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유럽 공연예술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인한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영국 예술계는 지난 1월 ‘AI가 위협인가, 기회인가’라는 주제로 논의를 벌였고, 공연계에서는 이를 ‘위기’라고 판단해 영국 정부에 성명서를 제출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1월 챗GPT(ChatGPT)가 상용화된 후, 실제로 해고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요. 공연계에서는 보조 작가의 역할을 챗GPT가 대체하고 있고, 배우들의 목소리 더빙, 공연 포스터 디자인도 AI가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에 대응할 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점인데요. 무대에 선 배우의 목소리나 사진을 사용해 AI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었을 때, 배우에 대한 저작권 보호가 마련돼 있지 않고 배우 역시 자신의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모른 채 계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따라 저작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어요.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더 스페이스(The Space) 재단의 노력
Q. 2012년, 영국 예술위원회는 BBC와 공동으로 더 스페이스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더 스페이스 재단의 설립 배경과 목적을 소개해주세요.
2010년 런던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예술 분야 지원 예산이 스포츠 분야로 집중되면서 영국 공연계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기 시작했어요. 2009년 세계 최초로 온라인 공연 구독 플랫폼인 ‘디지털 시어터(Digital Theatre)’가 만들어졌고, 영국 국립극장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NT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 NT Live)’를 시작했습니다. NT 라이브는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현재 1년 동안 영국 내 700개 상영관에서 1만 1천 회 이상, 해외에서 2천 5백 회 이상 상영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도 공연예술의 디지털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12년 BBC와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공동으로 더 스페이스 재단을 설립했어요. 여기서 ‘디지털화’란 단순히 예술에 기술을 접목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과 기술 융합 시대에 개별 예술가나 단체가 알아야 할 마케팅, 유통도 포함됩니다.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알리고 그 가치 전달하는 것이죠. 더 스페이스 재단은 여전히 영국 예술 디지털화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1년에 800여 개 단체를 지원하고 있어요. 2015년부터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이머시브(Immersive) 등 하이테크를 접목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더 스페이스 재단은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여기서 교육은 창작자에 대한 교육을 의미하는데요. 인력과 자본이 부족하고,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와 단체들을 지원하고 기술 격차를 줄이는 것이 더 스페이스 재단의 핵심 역할 중 하나입니다.

인카운터 ⒸComplicité

Q. 기술과의 결합이 활발한 만큼, 말씀하신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등 여러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스페이스 재단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대표적인 활동은 창작 과정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인카운터(The Encounter)>를 들 수 있는데요. 영국 극단 ‘콤플리시테(Complicité)’의 예술감독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는 로렌 매킨타이어(Loren Mcintyre)의 소설 <Amazon Breaming>을 연극으로 기획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아마존에서 길을 잃고 낯선 부족 문화를 접하면서 의식의 한계를 탐험하는 내용으로 이때 사이먼 맥버니는 청각을 통해 아마존 정글을 표현하려 했지만, 이 아이디어를 구현해낼 기술과 유통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더 스페이스 재단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극단이 원하는 부분을 파악한 재단은 2012년 BBC가 개발한 바이노럴 사운드(Binaural Sound) 기술과 객석 600석에서 사용할 헤드폰을 지원했죠. 바이노럴 사운드는 기존 스피커 청취를 기준으로 한 스테레오 녹음 방식이 아닌 사람의 머리와 귀의 모습을 한 더미 마이크(Dummy Microphone)를 통해 녹음해 3차원 공간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에요. 기술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었지만, 더 스페이스 재단의 도움으로 작품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었죠. 2015년 8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에서 성공적으로 초연한 이 공연은 2016-2017 런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er)에서 전석 매진되고 전 세계 주요 도시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이밖에도 기술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창작자들을 위한 매뉴얼, ‘Resource Library’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마케팅 방법이나 홈페이지 제작 방법, 영상 촬영 노하우 등 관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알맞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 정보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해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창작자 누구나 기술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고 예술가들의 기술 격차 줄이는 것이죠.
치유와 연대,
문화예술의 가치를 위한 노력들
Q. 더 스페이스 재단이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 앞장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더 스페이스 재단의 노력은 유럽이 예술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닿아 있습니다. 유럽에서 예술은 전통적으로 국민 치유의 역할을 수행했어요. 그중에서도 영국은 위기의 순간을 예술로 극복해왔습니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역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상처받은 국민들의 정신을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고, 영국의 예술 산업은 67만 개 직업을 창출하며, 53조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공연예술을 선도하는 영국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최대한 활발히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이 높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브렉시트로 인한 어려운 국내 상황을 타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방편으로 공연예술을 지원하려는 것이죠.
이에따라 앞서 이야기 한 AI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우려가 제기됨과 동시에 영국에서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억 2천만 파운드, 한화로 약 1,870억 원을 들여 3월부터 11월까지 6개월에 걸쳐 예술과 기술이 융합한 새로운 방식의 페스티벌을 열었어요. <UNBOXED, Creativity in the UK: About us>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페스티벌 동안 전국 107개 도시에서 참여형 이벤트가 펼쳐졌고, 25분 간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소리와 빛을 통해 보여주는 퍼포밍 아트를 야외에서 상연했어요. 거리에 디지털 스크린을 설치해 지역 학교 학생들이 시를 낭독하면 이에 대한 이미지를 전송해 보여주고, 지역 주민의 초상화를 디지털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 보여준 것이죠.

2022 Unboxed ⒸUNBOXED: Creativity in the UK

2022 Unboxed ⒸUNBOXED: Creativity in the UK

2022 Unboxed ⒸUNBOXED: Creativity in the UK

2022 Unboxed ⒸUNBOXED: Creativity in the UK

Q.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문화예술 산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유럽의 공연예술 시장은 기술과 결합한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기술의 혁신과 참신함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아무리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더라도 이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 최종 목표인 관객의 확장성을 어떻게 향상할 수 있을지에 집중해요.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문화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고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자리 문제, 저작권 문제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우리 역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작권법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그 피해가 창작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예술가들 역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주셔야 해요. 직접적인 당사자인 예술가들이 먼저 인지해야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과의 융합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김준영(아이러브스테이지 대표)

김준영(아이러브스테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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