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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뉴 웨이브
시각적이지 않은 시각예술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예술가를 대체하는 존재인가, 조력자인가?
프리즈 서울로 해외 갤러리들이 서울에 입성한 지금,
시각예술을 소위 K-컬처의 다음 주자로 띄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미술 관람의 대중화는 어디까지 왔는가?
2023년 창작·유통·소비 영역에 떠오른 화두를
바탕으로 2024년의 시각예술계를 가늠해본다.
글_문소영(중앙일보 선데이국 문화전문기자)
논란과 이상적 협업 사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본격적 개입
1년 전 뉴요커 지가 “지금 가장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한편 논란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한 전시가 있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의 <레픽 아나돌(Refik Anadol): 감독 되지 않은(Unsupervised)> 전시였다. 미술관 로비에 2층 높이의 거대한 화면이 설치됐고, 그 안에는 색색의 물감을 짜놓은 듯한 진한 액체가 꿈틀거리고 튀어나올 듯이 파도치며 끊임없이 형태를 바꿨다. 뉴욕 현대 미술관이 소장한 미술 작품들을 학습한 AI가 그것을 바탕으로 ‘꿈을 꾸게 한’ 레픽 아나돌의 작품을 관람객들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미술사학자인 변경희 뉴욕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최소한의 매개변수를 적용해 AI가 꿈을 꾸는 인간의 두뇌처럼 ‘상상’ 같은 작용하도록 최대한 간섭을, 아니 감독을 배제한 것이다. 따라서 부제는 ‘기계의 환각(Machine Hallucination)’이다. 이 작품이 뉴욕 현대 미술관 로비에 전시됐다는 것은 AI를 이용한 시각적 표현물이 현대미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개념적 태도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Unsupervised ⒸArtist in New York City

지난해 국내에서도 AI와 협업한 작품들이 미술관에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와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노상호의 회화다. 그는 달리2(Dall-E2)와 미드저니(Midjourney) 등 생성형 AI에게 사진 이미지들을 주고 결합하거나 사진 바깥의 풍경을 상상해 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결과물을 바탕으로 편집하고 그 이미지를 에어브러시로 화폭에 그렸다. 작가는 AI 협업 취지에 대해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도) 나는 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리는가를 생각하다가 우리는 결국 중간적인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디지털화되지도 않고 완전히 아날로그이지도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완전히 메타버스화되지 않는 한 그렇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한 중간적인 우리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2022년에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듀오 문경원·전준호는 기후 위기를 다룬 다학제적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면서 몰입형 멀티미디어 작품 ‘불 피우기’를 선보였다. 비인간(non-human)인 돌멩이의 관점에서 지구 환경 변화와 인류 종말의 역사를 바라보는 내용인데 그 내러티브는 “인간인 작가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기 위해 AI를 사용해 구성했다”고 작가들이 밝혔다. 여기 사용된 AI는 챗GPT(ChatGPT)의 바탕이 된 GPT-3이었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AI가 협업의 대상을 넘어 아예 인간 예술가를 대체하게 되지는 않을까.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이에 대해 미디어 아티스트인 강이연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전문가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AI에 대해서 그 높은 예측 능력(predictability)을 감응 능력(sentience)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AI가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구성하거나 사람들의 넋두리에 위로가 될 만한 대답을 해주는 능력은 엄청난 데이터를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갖는 높은 예측 능력, 즉 사람들이 가장 호응할 만한 답을 예측해서 내놓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 인간 특유의 감응력과 감수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측 능력이 극도로 높아지면 그것이 인간의 핵심 능력인 창조력이 대체 뭐가 다를까’ 하는 고민도 있다”라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강 교수는 최근 작업에 AI를 직접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주로 8~10k의 초고화질에 초당 30프레임이 들어가는 영상을 제작하는데 아직 AI는 이 정도 고화질 무빙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여러 참고 이미지를 찾을 때 이제는 AI에게 물어보는 것이 편리하며,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 참고물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이렇게 AI는 이미 인간 예술가들과 공존 협업하는 시대가 됐다. 관련해서 카이스트 이탁연 교수는 다음과 같은 연구를 했다. 6명의 초보, 4명의 취미 일러스트레이터, 4명의 전문 작가를 초청해 달리2로 작품을 만들게 하면서 그들이 이미지 생성 AI를 동료나 조수로, 혹은 그저 도구로 인식하는지 살펴봤다. 이 교수는 “전문 작가들의 경우 AI를 참고자료 모아주는 검색엔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생각지 못했던 이미지 생성을 해도 오히려 그것을 좋아한다. 어차피 그것을 자료로 자신이 최종 작품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것이 AI와 인간 예술가가 공존하며 인간이 창조성을 지켜나가는 방식일 것이다.
해외 갤러리 서울 진출과
K-Arts 프로모션
유통 영역에서는 해외 주요 갤러리들의 진출이 눈에 띄었다. 2023년 9월 제22회 키아프 서울(Kiaf SEOUL) X 제2회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기간에 영국의 유명 화랑 화이트 큐브(White Cube)와 일본의 화이트스톤 갤러리(Whitestone Gallery)가 서울에 지점을 열었다. 2022년 한국 미술 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1조 원 넘는 매출을 기록한 후 2023년 조정기에 접어들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해외 주요 갤러리들이 연이어 서울에 새로 자리를 틀거나 공간을 확장했다. 2022년 서울 신라호텔 내에 지점을 냈던 베를린 기반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Peres Projects)는 2023년 4월 삼청동으로 지점을 확장 이전했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해외 갤러리들은 지점 개설을 결정하기 전에 길게는 10년 남짓 한국에서 팀이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한국 시장을 연구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화이트 큐브의 아시아 총괄인 웬디 츄(Wendy Xu)는 “2012년부터 홍콩 본사를 시작으로 가장 유망한 새로운 예술시장 중 하나인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전역에서 꾸준히 팀을 운영해 왔다”라고 밝혔다.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페레스 프로젝트 한국 갤러리에서 열린
마뉴엘 솔라노(Manuel Solano) 개인전 ⒸPeres Projects

페레스 프로젝트를 설립한 하비에르 페레스(Javier Peres) 대표 역시 2019년 아트부산 참가를 통해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한국에서 활동해 왔다며 “10년 가까이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서울은 미술 시장이 다양한 컬렉터들로 구성돼 탄탄하고 미술관 전시가 활발하고 흥미롭기 때문에 우리 갤러리의 아시아 시장을 위한 활동을 받쳐주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2021년 10월 한남동 포트힐 빌딩에 서울 지점을 오픈한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의 설립자 타데우스 로팍 또한 한국의 풍부한 미술사적 배경과 미술관 환경에 고무돼 갤러리를 열었다고 했다. 그는 “유럽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서울 갤러리를 오픈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해외 대형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를 발굴해서 띄울 의지가 있음은 지난해 2회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들 부스에 새로운 한국 작가들 작품이 많이 출현했다. 과거에는 박서보, 이우환 등 단색화 거장과 서도호, 이불 등 유명한 해외파 작가 몇몇에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2023년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여럿 소개됐다. 예컨대 타데우스 로팍의 부스에는 이불 작가의 회화와 함께 갤러리가 새롭게 영입한 30대 젊은 작가 정희민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디지털 이미지를 회화와 조각으로 변환하는 작가로 홍익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한 국내파이다. 또한 뉴욕 기반의 갤러리 리만 머핀(Lehmann Maupin) 부스에는 갤러리와 오래 함께 해온 서도호와 이불의 작품은 물론, 갤러리가 2023년 신규 영입한 성능경, 홍순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이들은 각각 70대와 60대의 나이로 꾸준히 활동해 오다가 최근 들어 ‘한국적 개념미술의 선구자’(성능경), ‘회화의 개념을 확장한 화가’(홍순명)로 조명받고 있다.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translated vase) Ⓒmassimodecarlo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translated vase) Ⓒmassimodecarlo

한편 이탈리아 갤러리 마시모 데 카를로(Massimo De Carlo)의 프리즈 서울 부스에는 이수경 작가의 조각이 대거 나왔다. 전통 도자기 파편을 모아 뭉게뭉게 증식하는 형태로 다시 구축한 작가의 대표적 스타일의 조각들이었다. 이미 유럽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지만, 세계 주요 아트 컬렉터로 손꼽히는 스위스 사업가 울리 지그(Uli Sigg)가 작가의 작품을 수십 점 사들인 영향도 있어 보인다고 프리즈 관계자는 말했다. 리움미술관의 김성원 부관장은 이렇게 평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작가들은 유학을 하거나 해외에서 작업을 해야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사례가 김수자, 서도호, 이불, 양혜규 등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어도 외국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작가들을 보러 온다. K-팝과 K-영화·드라마 등 K-컬처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프리즈 서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본다. 그러한 경향이 3년 전부터, 즉 지난해 제1회 프리즈 서울이 준비되던 시점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프리즈 서울과 대형 외국 갤러리의 한국 진출이 단지 서구 갤러리와 서구 미술가들의 한국 시장 장악으로 끝나리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지만 이렇게 낙관적인 시각과 희망적 조짐들도 존재한다. 더 지켜볼 일이다.
영화관을 위협하는
2030의 미술관 열풍
한편 프리즈 서울과 협업한 한국의 대표 아트페어 키아프의 2023년 티켓 매출은 프리즈와의 공동 티켓 매출의 경우 전년과 비슷했으며 단독 티켓 매출은 2배로 늘었다. 미술시장 조정과 상관없이 미술 관람의 저변이 더욱 확대됐다는 의미다. 특히 젊은 관람객이 많다. 프리즈 서울 기간 방한한 해외 인사들도 한국의 미술관·화랑·아트페어는 유럽에 비해 관람객 평균 연령이 훨씬 젊다면서 한결같이 부러워했다. 그 추세를 반영하며 데이트 장소로도 미술관이 부상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미술관데이트’로 해시태그 된 포스트는 7만 4,000여 건에 달한다. ‘영화관데이트’로 해시태그 된 10만 1,000여 건보다 적지만, 미술과 영화의 대중성 차이를 고려하면 미술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종전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던 영화관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관객 수는 약 9,400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45%나 줄었다.
요즘 미술관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적인 이유다. 코로나19 기간 관객 수 급감을 메우기 위해 영화관들은 티켓값을 평균 1만 1,000원에서 1만 5,000원대로 올렸다. 하지만 그간 관객은 OTT(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영화관 나들이의 ‘가격 대비 만족’에 민감해지고 선택에 신중해졌다. 반면 미술관은 입장료가 저렴한 편이다. 블록버스터 특별기획전은 영화보다 비싼 경우도 있지만, 상설전은 무료거나 몇천 원 수준이다. 또한 상업 화랑은 대개 입장료가 없다. 특히 2021년 고(故) 이건희 회장 미술 컬렉션의 국가 기증 이후 국공립 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 관람객이 몰리고, 이들이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을 무료로 보았다’고 만족해하면서 많은 사람이 전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둘째, 인스타그램 등 SNS에 일상 사진을 올리는 것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문화 때문이다. 영화 상영 중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대부분 영화 포스터나 포토존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소위 폼 나는 사진을 찍기 어렵다. 반면 미술관과 화랑은 사진 촬영에 안성맞춤이다. 미술 작품과 전시 공간이 멋진 그림을 만드는 데 한몫 거든다. 한마디로 뭔가 있어 보인다. 전시장이 항상 그랬던 것 아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외 미술관 대부분이 ‘예쁜 배경용 사진’에 비판적이었다. 사진 촬영도 금지하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SNS가 확산하면서 젊은 관객이 밀려들고 미술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이제는 미술관들이 앞장서 인스타그램 사진 이벤트까지 열고 있다. 셋째,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영향도 크다. 작품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또 감상자도 속도를 조절하며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 영화관에서는 진행 속도가 느려도 1.5배속으로 돌리거나 건너뛸 수 없으며, 반대로 속도가 너무 빨라서 놓치는 부분이 있어도 다시 돌려서 볼 수 없다. 반면에 미술관에서는 한 작품을 5초 보고 지나갈 수도 있고 한나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미술 전시장이 ‘데이트 핫플’ 코스로 떠오른 것에 대해 미술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미술에 대한 2030의 폭발적 관심을 반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작품이 혹시라도 인스타 사진 배경으로만 그치는 게 아닌지, 나아가 예쁜 작품을 즐기는 대중의 취향에 맞추다가 실험적·전위적 작품이 움츠러드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미술관에서 전위적인 작품과 대중적인 작품의 적절한 균형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지금까지 2023년에 두드러졌던 시각예술계 창작 유통 향유 영역의 세 가지 트렌드, 생성형 AI의 창작 개입, 주요 외국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과 그들의 K-Arts 유통, 그리고 여가와 문화 향유의 중심 장소로 떠오른 미술관을 살펴봤다. 이들은 2024년에도 계속해서 주요 화두일 것이며 한국 시각예술계가 진화하는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소영
문소영(중앙일보 선데이국 문화전문기자)

중앙일보에서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중앙선데이에서 ‘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등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 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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