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QUARE

지난호 보기

  • ∙VOL.13 [2024.11]
  • ∙VOL.12 [2024.09]
  • ∙VOL.11 [2024.07]
  • ∙VOL.10 [2024.05]
  • ∙VOL.09 [2024.03]
  • ∙VOL.08 [2024.01]
  • ∙VOL.07 [2023.11]
  • ∙VOL.06 [2023.09]
  • ∙VOL.05 [2023.07]
  • ∙VOL.04 [2023.05]
  • ∙VOL.03 [2023.03]
  • ∙VOL.02 [2023.01]
  • ∙VOL.01 [2022.11]

SQUARE

한류의 넥스트 패러다임을 위한
문화예술 정책의 과제

한류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우리는
그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아닌 기초예술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혁신적인 정책은 요원한 실정이다.
대중문화의 문화적 역량을 예술 한류에서
이어갈 정책적 방안을 모색해본다.1
글_정종은(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세계 문화산업 또는
대중문화의 정상에 오른 한류
영어권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최근 애교(aegyo), 먹방(mukbang), 대박(daebak), 오빠(oppa), K-Drama, 스킨십(skinship), 한류(hallyu) 등 한국어 단어 26개를 공식적인 영어 단어로 추가했다.2 1976년 김치(kimchi)가 등재된 후 2021년 먹방이, 2016년 K-Pop에 이어 5년 만에 K-Drama도 옥스퍼드 사전에 공식 외래어로 이름을 올렸다. 영국의 정론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스킨십’과 ‘파이팅(fighting)’와 같이 콩글리시로 알려진 단어들이 사전에 공식적인 단어로 등재됐다는 사실을 새로운 현상으로 보도했다. 한국인들이 어떤 문맥에서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는지 영국의 학자들이 고심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한류라는 뜻의 단어 ‘Korean Wave’가 이미 등재돼 있었음에도 ‘hallyu’라는 본토 한국어를 새로 등재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한국인의 뉘앙스와 맥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2021년 11월 3일 기사의 제목은 ‘BTS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은 어떻게 문화 강국이 됐나?’였다.3 ‘자동차와 휴대폰으로 알려졌던 한국이 이제는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하룻밤 새에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내용이다. 한때 선진국들의 문화적 자산을 수입하고 모방하기에 바빴던 한국이 이제는 블랙핑크,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에서 알 수 있듯 전 세계에 자신들의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2021년 9월 옥스퍼드 사전에 한국어 단어 26개가 무더기로 등재된 사실 역시 놀라움을 담아 전하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 측에서 선언했던 “우리는 모두 한류라는 파도의 정점에 올라타 있다”는 인식이 세계 곳곳에서 격한 동의를 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IMDb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낙관이 그간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많은 학자와 언론인이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이나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 등을 이유로 한류가 언제라도 쉽게 사그라질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2000년대 초반, 2010년대 초반, 그리고 2020년대 초반의 논문에서도 이러한 우려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귀담아들을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필자는 앞으로 적어도 한 세대는 한류의 도도한 확산과 심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 25년에 걸쳐 발휘되고 축적된 한류의 성공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중문화 한류:
성공 요인과 지속 가능성
많은 전문가가 한류의 ‘설계되지 않은’ 또는 ‘갑작스럽게 부상한’ 성공에 대해 주목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사로잡은 콘텐츠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능하기까지는 일종의 민관 협력 프로젝트로서 ‘신개발주의’ 문화정책이 뿌리를 내리면서 디지털 융합 시대에 걸맞은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구축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 주효했다.4
이미지 삽입 예정

한류의 성공요인 Ⓒ정종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대중문화 한류의 눈부신 성장과 확산 뒤에는 개발주의 시대의 낡은 관습인 검열 및 고립 정책과 과감히 작별하고 팔길이 원칙을 기반으로 전략적 진흥에 앞장선 정부가 있었다. 더 중요하게는 새로운 환경에 조응하면서 자신의 열정과 상상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온 개인 및 집단 창작자, 제작자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디지털 인프라에 걸맞은 기획과 마케팅 등 앞선 비즈니스 모델이 이들로부터 나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다루는 신선하고 세련된 콘텐츠들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면서 시장을 이끌어온 우리 국민들의 팬덤 역할도 빠트릴 수 없다. 한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수용자들에게는 매우 ‘세련되게’ 느껴지고, 선진국 수용자들에게도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K-콘텐츠의 경쟁력은 이렇게 형성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류의 경쟁력은 지속될 것인가? 필자는 그렇다고 믿는다. 첫째, 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하는 <한류백서> 등 여러 지면에도 필자가 주장한 바 있지만, 지난 20여 년에 걸쳐 이뤄진 한류의 성공 모델은 쉽게 침식되거나 여타 국가들이 빠르게 모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류가 전 세계 인구의 약 60%가 거주하는 아시아의 대표 선수로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단순히 문화 분야만이 아니라 산업화(경제)와 민주화(분야)를 거쳐 문화화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의 역사, 역량이 축적되면서 국가 전체의 문화적 잠재력과 창조성이 응축되고 발현된 것이 주요했다. 민주적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전략적 산업화 정책이 결합해 재능 있는 인재들의 작품을 온 국가와 국민이 즐기고 지원하는 흐름이 이제는 세계 콘텐츠 산업의 정상에까지 다가섰는데, 이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어떤 국가들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로 드러나고 있다.
둘째,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디지털 방역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디지털 융합 시대에 우리 국민의 디지털 리터러시5는 커다란 장점으로 기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부상한 언택트(Untact) 문화는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것이 아니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사회적 멈춤과 디지털 대전환 담론은 이미 오랜 시간 우리가 준비해온 것이었다. 모바일 혁명과 눈, 유튜브,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 경제의 흐름 속에서 디지털 팬덤과 함께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과 운용은 우리나라의 특장점이 됐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범용 기술로 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챗GPT(ChatGPT) 등 첨단화된 저작도구를 매개로 콘텐츠의 기획, 창작, 제작, 유통, 소비 등 모든 가치사슬 단계를 뒤흔들 것으로 예측되는바, 이는 한류에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Z세대의 부상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글로벌 팬덤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전망의 한 근거가 된다. 한류가 중화권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2017년을 전후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세대가 바로 Z세대(Generation Z, Zoomers)이다. 이들은 1997~2012년에 출생한 연령층으로 2023년 현재 11~26세이다. X세대(1965~80)의 자녀들인 이들은 고도의 기술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따라서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화에 일체화된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6 또한 Z세대는 정치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인종-민족 차별에 강하게 반대하고, 소수자 평등을 강력히 지지하는 이들의 성향이 북미와 서구로의 한류 진입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신들의 10대 라이프 스타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한류 경험을 공유한 Z세대가 3~40대가 됐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세대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류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예술 한류도 대중문화 한류의
성공 방정식을 반복할 수 있을까?
질문은 다음으로 귀결된다. 대중문화 한류의 성공 요인과 미래 전망이 예술 한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K-Arts는 기존 K-콘텐츠의 성공 방정식을 되풀이할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류의 4단계 또는 신한류 단계라고 구분하는 2017년 전후에는 K-팝의 대표 주자인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예술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도 매우 증가하기 시작했다. 조성진, 임지영, 선우예권과 같은 세계적인 콩쿠르의 우승자들이 전 세계 음악 평론계와 애호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신경숙, 한강, 이정명, 정유정, 편혜영, 정이현 등 많은 작가가 해외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세계 문학계에 주목받았다. 미술 역시 한국적인 매력을 통해 세계 미술시장에서 존재감을 축적해가고 있다.

맨부커 국제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과 데보라 스미스 ⒸThe Booker Prizes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반가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2010년 이래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류 3.0’이라는 표제어와 함께 그토록 오매불망했던 기초예술 분야의 한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해 우리나라 예술 한류는 대중문화 한류의 성공 방정식, 즉 창조성을 북돋는 혁신적 정책(공공)과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비즈니스 모델(민간)의 시너지를 통해 국내외의 수용자들에게 세련되고 신선한 콘텐츠로 평가받았던 그 성공 모델을 다시 한번 실현하고 있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필자는 아직은 이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선뜻 내놓기가 어렵다. 많은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고 실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예술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할 만한 정책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2010년대 이후 예술인 복지정책이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게임 체인저 역할이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예술계의 대표적인 혁신 정책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중문화 한류 초기에 문화콘텐츠학과가 새롭게 출현하면서 인력 양성에 기여했던 것처럼 후속 세대 육성에 관한 획기적인 변화 역시 아직 더디게 느껴진다. 모더니즘에 기반한 도제식 교육을 넘어서 21세기 창의성 교육이 예술대학에 적용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학로에 콘텐츠코리아랩(CKL)7이 설립되면서 문화 분야에도 스타트업 지원정책이 처음 시작된 이래,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문화 스타트업들에게도 제일 중요한 주제가 됐다. 그러나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들은 여전히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에도 어색함을 느끼고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예술 산업이나 예술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정책을 열심히 펼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빠른 피드백을 기대하기가 녹록지 않다.
마지막으로 K-Arts는 국내외의 수용자들에게 세련되고 신선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덤의 지지를 받으면서 인식 공감과 인식 전환을 이끌고 있는가? <쉬리>, <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그리고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작품들, 최근에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이 대중의 인식 변화에 있어 큰 획을 그은 K-콘텐츠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기초예술의 성과들이 해당 장르의 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을 넘어서서 대중에게도 소구할 만큼 굵직하고 지속적인 심미적∙인지적 인풋(input)을 제공하고 있는지는 좀 더 진지하게 따져볼 문제이다.
K-Arts 교류 및 확산 정책의
현황과 한계
‘한류 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일까? 지난 정부에서 콘텐츠정책국에 ‘한류지원협력과’가 생겨나기 이전에는 한류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 또는 한류에 일정 부분 기여했던 것으로 드러난 정책을 묶어서 한류 정책이라고 불렀다. 이제는 한류를 담당하는 부서가 생기면서 직접적인 지시 의미(denotation)가 생겼지만 말이다. 따라서 지난 25년을 거쳐오면서 ‘한류 3.0’이란 구호에도 불구하고, 국내 예술의 해외 소개나 진출, 확산 등을 위한 집중적인 정책은 펼쳐진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본격적인 한류 정책과는 약간 결이 다른 국제 문화 교류 정책이 유의미한 역할을 감당해왔다. 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은 예술 분야의 국제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한국예술 국제교류 지원사업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을 예로 살펴보자. 각 사업의 규모도 크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유형도 다양하다. 첫째, 예술가 해외 레지던스 지원사업(예산 7억 원)은 해외 창작 거점 예술가 파견사업(지정형)과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가 지원사업(비지정형)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해외 주요 레지던스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개인 예술가 차원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근본적인 목표는 우리 예술가의 창작 역량 강화 및 한국 예술의 국제 교류 네트워크 기반 확대이다. 둘째, 한국예술 국제교류 지원사업(예산 19억 5000만 원)은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분야 예술가 개인 및 단체의 국내 초청, 국외 초청, 공동 협업 제작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 중 우수한 사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등 민간 차원에서 효과성이 높은 국제 문화예술 교류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예술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외에도 국제 예술공동기금 사업(예산 5억 1700만 원)이나 해외 문화기관 협력 사업(예산 2억 6900만 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운영 사업(예산 10억 6300만 원) 등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 중이며 매년 업그레이드된 정책 설계가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제 교류 사업들은 K-Arts 한류를 추동할 수 있을 만한 임계 질량을 확보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소위 고급 예술은 대중 예술과 달리 많은 사람에게 소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19세기적 이분법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상의 모범적인 정책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위원회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의 사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충분히 의미도 있고 나름의 성과도 도출해왔지만, 사실은 오래된 것이고 익숙한 것이다. 팔길이 원칙과 문화산업의 국가 기간 산업화라는 두 모토가 결합하면서 대중문화 한류를 추동했던 혁신적인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도 확인했듯이 예술 분야의 해외 진출은 주로 주요 국가, 주요 기관들을 중심으로 문화 교류 또는 간접적 진출을 돕는 정책으로 구성돼왔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 사업은 예산의 제약이나 법적 근거 및 절차에 따라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한계를 노정한다. 국내 예술의 해외 진출에 소명의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대상 국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에이전트들을 통한 ‘매개적 진출’의 확대가 시급한 이유다. 더 나아가서는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의 단체들과 협업 창작(co-creation)을 하고자 하는 예술인∙단체를 위한 ‘직접적 진출’을 지원하고 촉진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가 확대돼야 한다. 이 세 가지 진출 형태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체계적이고 유기적이며 일관성을 담보한 K-Arts 해외 진출 정책의 비전과 프레임워크가 요청된다.
본격적인 예술 한류를 위한
정책 방향을 찾아서
국제 문화 교류 정책의 다각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예술 한류라는 오래된 숙제를 해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다층적인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본격적인 예술 한류의 시작은 물론, 예술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첫째, C&D(Connect & Development)는 필수다. 기초예술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대중문화 한류와의 섞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문화산업 또는 대중 예술의 성공 방정식을 면밀하게 살피고 필요한 정책과 단계를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YBAs(young British Artists)의 본산인 사치 갤러리8(Saatchi Gallery)가 기안84와 송민호를 작가로 초청하는 시대이다. 둘째, 국내 및 해외 팬덤의 K-Arts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핵심이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류의 시작이 국내 시장에서 우리 콘텐츠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이뤄졌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국내 팬덤이 있어야 아시아 팬덤이 있고 북미와 서유럽 시장을 두드릴 체력이 생기는 것이다. 셋째, 인공지능 저작 도구와 디지털 유통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트센터와 박물관, 으리으리한 공연장과 멋들어진 북 페어 등 기존의 오프라인 신전에만 머물러서는 혁신적인 시도를 꾀하기 어렵다. 매개적 진출을 이끌 에이전트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들과 함께 국제적 디지털 예술 세계의 허브와 노드를 누빌 과감한 후속 세대, 그들의 엉뚱한 프로젝트를 계속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22년 기준 1억 7,800만 명에 달하는 한류 팬들과 적극적인 협업이 필요하다. 대부분 K-팝이나 K-드라마를 통해 한류 동호회에 가입한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가지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문화예술 행사나 세미나, CoP(Community of Practice) 등이 끊임없이 진행돼야 한다. 하향식(top-down)의 요청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기획하는, 팬덤 거버넌스에 입각한 작지만 주효한 활동들이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펼쳐지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제는 예술 분야에서도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진정한 선구자(first mover)로서의 면모와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그 자체로 국가의 역사적 현재적∙미래적 역량과 열정을 보여주는 가장 선도적인 사회 영역일 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 외교와 복지 등 모든 영역에서 관점의 전환과 전략의 고도화를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촉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역량이 대중문화에만 국한될 이유가 있을까? 대중문화 한류를 넘어서 예술 한류가 세계인들에게 통찰과 설렘을 넘치도록 제공하는 그날, 이제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1. 이 글은 필자의 저서 『한류 맥 짚기: 신개발주의를 알아야 한류가 보인다』 (2022, 진인진)의 내용 일부를 수정, 보완 및 재구조화한 것임을 밝힌다.
  2. <The Guardian>, K-beauty, hallyu and mukbang: dozens of Korean words added to Oxford English Dictionary, 2021.10.05,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oct/05/k-beauty-hallyu-and-mukbang-ozens-of-korean-words-added-to-oxford-english-dictionary 참고
  3. <New York Times>, From BTS to ‘Squid Game’: How South Korea Became a Cultural Juggernaut, 2021.11.3, https://www.nytimes.com/2021/11/03/world/asia/squid-game-korea-bts.html
  4. 신개발주의 문화정책과 그 성과에 대해서는 『한류 맥 짚기: 신개발주의를 알아야 한류가 보인다』 (2022, 진인진) 3~4장 참고
  5. 컴퓨터∙인터넷과 관련된 기술과 콘텐츠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디지털(digital)’과 글을 올바르게 읽고 쓰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리터러시(literacy)’를 결합한 용어로,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에 대한 정보 이해 및 표현 능력’을 뜻한다. (“디지털 리터러시”,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85419&cid=40942&categoryId=31614참고)
  6. 정종은, 홍성태, 최보연, 박승환 외(2021).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문화행사 기본계획 참고
  7. 상상력이 창작으로, 창작이 창업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4년 설립한 공간으로 콘텐츠 창작과 창업의 모든 단계에서 풍부한 시설과 공간,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8. 1985년 세계적 미술품 수집가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개관한 현대미술 갤러리. 찰스 사치는 뛰어난 안목으로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를 비롯해 제니 사빌(Jenny Saville), 사라 루카스(Sarah Lucas) 등 이른바 ‘YBAs(Young British Artists:영국의 청년 작가들)’를 발굴했다. 1997년 YBAs의 작품 등 사치의 컬렉션으로 영국왕립미술원에서 열린 ‘센세이션’ 전은 작품들의 충격적 내용으로 인하여 전시회 이름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영국 현대미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를 불러왔다. (“사치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20225&cid=40942&categoryId=34684참고)
정종은
정종은(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학부에서 미학과 종교학을, 석사 과정에서 미학과 미디어경영학을, 박사 과정에서는 문화산업 정책을 전공했다. ㈜메타기획컨설팅의 부소장을 역임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운영위원, 장애인 정책 조정위원, 문화도시 컨설턴트 등을 역임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