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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후 불어온 새로운 바람
한국 문학의 세계화1

1892년 『춘향전』이 프랑스 파리에서 출판된 후
130년이 지났다. 그동안 공적 지원 체계가
꾸준히 이어졌던 한국 문학은 지난 10년 사이
크게 성장하며 해외 문학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번역가의 양성, 장르 문학의 지원 등
세계 속 한국 문학을 위한 과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글_장은수(문학평론가)
세계 문학 시장을 휩쓰는
한국 문학의 활약
최근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이 무척 활발하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 문학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한국 문학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약 200편 작품이 해외에서 출간됐다. 정유정, 김금숙, 김애란, 김영하, 김혜진, 장강명, 정유정, 한강 등 주요 작가의 작품 계약 소식도 꾸준히 이어졌고, 김초엽, 배명훈, 정보라 등 어느새 한국 문학의 주류로 올라선 SF 소설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문학 작품이 해외에서 주요 문학상을 받는 일도 늘고 있다. 이수지는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고,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이 일본 서점 대상을,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이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했다. 이영주의 『차가운 사탕들』을 번역한 김재균은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김금숙의 그래픽 노블 『풀』은 체코만화협회에서 주관하는 뮤리엘 만화상을 받았다.

『채식주의자』

『풀』

『밤의 여행자들』

『채식주의자』, 『풀』, 『밤의 여행자들』 Ⓒamazon

작년에만 있었던 일도 아니다. 2022년에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 영국추리작가협회(CWA)에서 주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이 상은 추리 소설에 주는 문학상 중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2020년에는 손원평의 『아몬드』가 일본 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김금숙의 『풀』이 미국 하비상 최우수 국제도서 부문을,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을, 김이듬의 『히스테리아』가 전미번역상을 받았다. 우리 문학 작품이 해외 주요 문학상 후보에 꾸준히 오르는 것도 좋은 징후다.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박상영, 정보라, 천명관의 소설과 이소호, 이혜미의 시집이 작품성 등을 높게 평가받아 지난해 해외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문학 작품을 향한 해외 독자들의 주목도를 끌어올리고 관심을 높임으로써 문학 한류의 밝은 앞날을 예감하게 한다. 관심이 높아지면 이해에 이르고, 이해가 쌓이면 심오함을 깨닫는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문화의 해외 진출은 수용자 집단의 관심과 이해, 평가와 수용의 단계를 밟으며 서서히 퍼져나간다. 한국 문학은 현재 평가와 수용의 중간 단계를 지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재미와 의미를 갖춘 작품이 꾸준히 쏟아지고, 질 높은 번역을 할 수 있는 번역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하면 ‘한국 문화의 반도체’로 단숨에 도약해서 세계 문학의 주류로 올라설 수 있을 듯이 보인다.
공적 지원으로 해외 진출의
날개를 단 한국 문학
2022년은 한국 문학 해외 진출 130주년이었다. 1892년 홍종우가 프랑스 파리에서 『춘향전』을 번역해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é)’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것이 그 시작이다. 1980년 이전까지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은 극히 미미했다. 『구운몽』, 『심청전』 등 일부 문학 작품이 번역됐으나 전반적으로 이국 취향을 반영하는 민담집이나 설화집 출간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1974년 한국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사업’이 전환점이 됐다.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을 돕는 공적 지원 체계가 갖춰지면서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생겼고, 작품 번역과 출판도 활발해졌다. 1980년 황순원의 『별』이 홍콩에서 영어로 출판되는 등 1980년대에는 한 해 평균 약 24편 정도가 해외에서 주로 대학 교재나 도서 기증 등의 형태로 출판됐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판해 서점에서 독자를 직접 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현대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 출판이 많아졌다. 정부 예산 지원이 효과를 보면서 출간 작품 수도 한 해 평균 35편으로 증가했다. 무엇보다 이문열, 이청준 등의 문학성 높은 소설 작품이 해외 언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서점 판매 등 상업적 출판도 프랑스, 독일 등에서 서서히 이뤄졌다.
한국문학번역원의 2022년 출간 현황

한국문학번역원의 2022년 출간 현황 Ⓒ한국문학번역원

1992년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목적으로 민간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이 설립되고 1995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한국문학번역원이 출범하면서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은 급물살을 탔다. 이들은 ‘언어’라는 초기 접근 장벽이 강하게 작동하고 경제적 규모가 한정적인, 공적 투자의 성공 사례를 보여 주는 산증인과 같다. 한국문학번역원은 2022년 말까지 38개 언어권에서 약 2,200편 작품의 번역 출판 활동을 지원했고, 대산문화재단도 600편 이상의 한국 문학 번역 및 연구 활동을 뒷받침했다. 다양한 언어권의 번역자 양성, 작품 번역 및 해외 출판에 대한 이들의 지원 활동이 큰 효과를 발휘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 해외 번역 출판 작품이 한 해 평균 68편으로 증가하고, 번역어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중심에서 러시아어, 스페인어, 체코어, 이탈리아어, 베트남어 등으로 폭넓게 확장됐다. 1990년대 후반 세계저작권협약이 국내에서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 출판사와 해외 출판사 간의 문학 및 출판 저작권 거래가 활발해진 것도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부터 해외 출판사에서 한국 문학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상업 출판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에는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서 한류 열풍이 본격화하면서 한국 문학의 해외 출판도 폭발했다. 한국문학번역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말까지 외국에서 출판한 한국 문학 작품은 총 4,735편에 달한다. 2011년 대산문화재단 자료에는 이 숫자가 1,564편에 불과했다. 2010년대 내내 한 해 평균 275편이나 출간됐고, 출간 언어도 몽골어, 스웨덴어, 아랍어, 타이어, 튀르키예어, 포르투갈어 등 40여 개로 늘었다. 1990년대 한 해 평균 35편, 영어 등 5개 언어권 출판과 비교하면, 지난 30년 동안 한국 문학은 여덟 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특히 2016년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현대 소설 전반에 대한 높은 관심과 그에 따른 질적 평가가 급증했다. 2003년 오정희의 『새』가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받은 이후, 2015년까지 한국 문학의 해외 수상 또는 입후보 건수는 전체 16건뿐이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의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의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며 2020년 16편, 2021년 17편이 해외 문학상을 받거나 후보에 올랐다. ‘한강 이펙트’가 작동한 셈이다. 해외 주요 문학 출판사의 한국 문학 출판 및 관심도 증가 추세에 있다. 얼마 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실시하는 ‘해외 출판인 교류 사업’에 지원한 해외 출판사를 살필 기회가 있었다. 플라네타 그룹(스페인), S. 피셔(독일), FSG(미국), 그란타북스(영국), 그라세(프랑스), 잔(튀르키예), 아스케하우그(노르웨이) 등 이름 높은 문학 출판사가 다수 눈에 띄었다. 한국 문학의 번역 출판을 고려하는 출판사 수준이 이만큼 높아진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번역가 양성과
장르 문학 지원
그러나 명성과 발전에 비해 문학 한류는 아직 뿌리가 허약하고 지속성을 보장하기에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문학 한류의 현주소를 ‘도입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직 충분한 확산 및 적극적 수용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약 180~200편의 작품이 해마다 안정적으로 출간되고, 한국 문학의 해외 주요 문학상 수상 실적이 꾸준히 이어질 때 한국 문학은 성장기에 접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 지원 없이 출판사 자체 판단에 따른 상업 출판 규모가 더욱 증가해야 한다. 한국 문학의 선인세 규모가 증가하고, 판매량 5만 부 이상 또는 10여 개 이상 언어권에서 출간되는 작품이 해마다 생겨날 때 문학 한류는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제를 달성하려면 몇 가지 고민할 지점이 있다. 먼저 한국 문학의 공적 지원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작품성 높고 상업성 낮은 작품에 대한 공적인 지원은 현재처럼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가령 해외에서도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시집, 단편 소설집, 희곡집 같은 경우, 이러한 공적 지원 체계가 없다면 해외 진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번역 및 출판에 대한 지속적 지원은 물론이고 국내외 문인이 서로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국제적인 문학 축제, 국제 규모 문학상 등 교류의 장(場)을 활성화해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 문학 해외 진출 활성화 플랫폼 KLWAVE Ⓒ한국문학번역원

그러나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번역 또는 출판에 관한 직접 지원보다 한국 문학 동향에 관한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언어권별로 해외 연구자들을 지원해 한국 문학 관련 자체 담론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국내외 한국 문학 연구와 소개 작업을 돕는 지원 체계가 구축돼 한국 문학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성이 만들어지면 번역과 출판에 나서려는 출판사는 저절로 늘어난다. 이런 뜻에서 지난해부터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운영하는 한국 문학 해외 진출 활성화 플랫폼 KLWAVE이나 대산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해외 연구 활동 지원 등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저작권 수출이 활발한 주요 언어권의 경우, 한국 문학 지원 체계를 정보 제공과 담론 형성 쪽으로 변경하고 번역 및 출판에 대한 직접 지원은 소득이 늘어나면서 중산층 문화 소비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아랍, 아프리카 등의 언어권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언어권별 전문 번역자의 꾸준한 양성, 소수 언어권에 대한 지속적 지원은 꾸준히 유지해야 마땅하다. 한 나라 문학이 외국에서 좋은 문학적 평가를 얻는 데는 작품 자체의 질도 중요하나, 좋은 번역자의 존재가 매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질 좋은 작품이 형편없는 번역 탓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은 너무나 흔하지 않은가.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외국인을 번역자로 양성하고, 이들이 국내외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얻어 한국 문학 번역에 관심을 놓지 않도록 돕는 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시장의 관점에서만 보면, 국내에서 장편 장르 문학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고, 이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정책이 문학 한류 형성에 도움이 된다. 한국문학번역원의 ‘2022 해외 문학출판시장 분석 및 진출전략 수립 연구’에 따르면, 17개 국가 2만 5,163편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세계 문학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는 미스터리 및 스릴러(15.8%), SF 및 판타지(15.6%), 로맨스(14%), 역사(13.2%) 등 장르 문학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힐링, 가정, 이웃, 우정, 성장 등을 다루는 일반 소설(17.3%) 분야와 더불어 문학 시장 전체를 이끄는 중이다. 우리 문학에서 높이 평가하는 환경 및 재난(4.2%), 제국주의나 전쟁 비판(3.9%), 자본주의 비판과 민주주의 옹호(1.7%), 성평등(0.6%) 등 무거운 주제의 인기도는 높지 않았다. 인터넷 보편화 이후 활자 문화가 위축되고 영상 매체가 우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문학 시장은 오락성이 강한 장르 소설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됐다.
특히 하나의 이야기를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에서 동시에 활용하는 트랜스미디어2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 바탕을 두고 창작과 향유가 일어나는 웹소설이나 그래픽 노블, 소셜미디어에서 확산 중인 포토 포엠 같은 문학 형태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에 따라 여러 미디어를 넘나들기 쉬운 장르 소설의 매력도가 증가했다.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같은 힐링 판타지 소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SF 소설, 손원평의 『아몬드』 같은 청소년 소설,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같은 로맨스 소설 등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이유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이나 김언수의 『설계자들』 같은 미스터리 장르 소설에 관한 관심도 뜨겁다. 장르 소설 활성화를 위한 정교한 지원 체계와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 문학은 이제 막 알을 깨고 세계를 향해 날갯짓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공적 지원 체계를 섬세히 가다듬고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1. 이 글은 필자가 기존에 발표한 ‘한국문학, 세계를 향해 이제 한걸음’, ‘문학 한류의 현황과 과제’ 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썼음을 밝힌다.
  2. 초월, 횡단 등의 뜻을 지닌 영단어 트랜스(trans)와 미디어(media)를 합친 말로,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미디어들을 넘나들면서 확장되고 융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트랜스미디어”,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11337&cid=43667&categoryId=43667참고)
장은수
장은수(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이자 문학평론가. 민음사 대표이사,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 『같이 읽고 함께 살다』 등이 있으며, 『기억 전달자』, 『고릴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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