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QUARE

지난호 보기

  • ∙VOL.10 [2024.05]
  • ∙VOL.09 [2024.03]
  • ∙VOL.08 [2024.01]
  • ∙VOL.07 [2023.11]
  • ∙VOL.06 [2023.09]
  • ∙VOL.05 [2023.07]
  • ∙VOL.04 [2023.05]
  • ∙VOL.03 [2023.03]
  • ∙VOL.02 [2023.01]
  • ∙VOL.01 [2022.11]

SQUARE

오늘의 과정, 내일의 가능성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위한 다년 지원

제20대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중 57번째에는 공정한 맞춤형
예술 지원을 위해 ‘다년(3년 이상) 지원을 모든 장르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연도별 예산 집행에 따른 단발성, 단기성 지원 체계와
결과물 위주의 지원 형식에 비판의 목소리가 지속되자 이뤄진 변화였다.
올바른 다년 지원정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글_정유란(㈜문화아이콘 대표이사)
해외 주요국의 다년간 지원사업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의 ‘National Lottery Project Grants’는 문화예술 관련 개인 또는 단체를 최대 3년 동안, ‘The National Portfolio Organizations’(이하 NPO)는 다양한 지역에 있는 여러 규모의 예술단체, 박물관, 도서관으로 구성된 문화예술계 핵심 그룹을 다년간 지원하는 제도이다. NPO의 경우 기본 3년 지원 이후 지속 지원도 가능한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원 대상인 841개 단체 중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지속 지원을 받아온 단체가 653개(77.3%)로 재지원 단체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의 지원 비율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로 지역 다양성 또한 확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공립 공연장부터 민간 극장까지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광범위하게 지원받는다. 국·공립 극장이 민간단체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단체가 작품의 제작 재원을 마련하게 함으로써 공연계 전체 지원이 이뤄지도록 운영한다. 프랑스에는 약 800여 개의 전문 독립 극단이 있으며 이 중 약 400개 극단이 협약 극단이다. 협약 극단은 3년에 한 번씩 지역문화국으로부터 협약 극단 지위 심사를 받고 3년간 문화부가 요구하는 의무를 수행하면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적어도 2개 이상 새 작품 제작, 120회 이상 공연을 무대 상연하며, 협약 극단이 되기 전 최소 한 번 이상 프로젝트를 지원받아야 한다.
잉글랜드 예술위원회

잉글랜드 예술위원회
‘National Lottery Project Grants’ Ⓒcurveonline

국내의 다년간 지원 방식, 어디까지 왔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전문단체집중육성지원’ 사업은 다년간 지원 방식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사례다. 과거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은 예산 회계연도에 따른 단년 지원 방식과 개별 사업 및 프로그램 지원 위주로 운영했는데 2006년부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다년간 지원하는 방식을 시도함으로써 연간 5,000만 원에서 1억 원씩 3년간 지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2009년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 사업이 신설되면서 폐지됐다.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 사업은 공연예술단체를 공연장에 상주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공연장과 공연단체 간 상생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창작 환경에서 공연단체의 예술적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공연장의 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한다. 최초 한번 선정되면 2년까지 별도의 심의 없이 연속 지원하는데 2016년부터 ‘단년 지원(평가 후 연속 지원 가능)’으로 변경되는 등 혼란을 겪으며 ‘다년간 단체 지원’이라는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또한 국비와 시비를 5대 5 비율로 추진해 왔지만 2022년 기획재정부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지역 이양이 확정되면서 향후 사업 존속이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 밖에도 2014년 시행한 서울문화재단 ‘예술단체다년간지원’ 사업은 3년간 연간 8,000만 원~1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연극 2개, 무용 2개 등 총 4개 단체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했다. 2017년 중단됐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단체의 운영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연극 〈짬뽕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연극 〈짬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년부터 시행 중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년간 지원사업이다. 공연예술 창작 프로젝트에 최대 3년 동안 지원해 창작, 제작 역량 향상을 이끌고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다. 중장기 로드맵을 바탕으로 단기적인 작품 제작 부담에서 벗어나 예술단체의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극, 무용, 음악, 전통 분야 예술단체 가운데 설립 5년 이상, 최근 3년간 4건 이상의 실적을 보유한 중견 단체와 설립 5년 미만, 최근 4년간 2건 이상의 실적을 보유한 유망 단체로 분류해 연간 평균 1억 원 내외의 예산을 지원한다. 2019년 선정된 51개 단체 중에 총 49개 단체가 참여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지원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가 권익 보호를 위해 사업 수행 시 표준계약서 등 서면계약서를 활용하고 성범죄 예방, 상해보험, 예술인고용보험 의무 가입 등 공정 운영 및 보상을 위한 노력 이행을 필수로 정했다. 또한, 영유아 돌봄 비용 및 배리어 프리에 관련한 예산 항목을 적용하도록 했다.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사업의 목적으로 단체 운영 부분을 강조했는데 이는 단년 지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던 문제였다. 다년간 지원사업을 통해 단체 운영의 공정성이나 합리성을 개선한 것은 ‘정책적 성과’이다. 이처럼 민주적 운영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며 구성원의 만족감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있었고, 자율 운영 협약을 내규로 마련해 공유하는 단체 비율이 높아지는 등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근 다년간 지원 사업을 확대해왔다.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사업 예산은 전년도 55억에서 2022년 73억 원으로 증액됐다. 초연 제작 및 발표 위주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업을 개선해 창작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전제작활동지원’ 사업도 신설했다. ‘문학집필공간운영지원’의 경우 2022년부터 3년 연속 지원하는 다년유형 지원을 신설했고 2023년에는 시각 분야 ‘우수전시지원’, 공연 분야 ‘지속연주지원’, ‘공연예술전문인력지원’ 등이 신규 다년간 지원 사업으로 신설될 예정이다.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고역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고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잊지 말아야 할 일관성과 연속성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성과에 대한 사업 평가 환류를 통해 다음 해 지원 결정이 이뤄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운영 중인 성과보고 체계의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된 장기 지원정책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연도별 평가 방향을 구조화해 예술단체가 운영하는 사업의 방향성을 수립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전문가 컨설팅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 성과를 평가체계와 함께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큰 창작물에 다년간 지원해 창작자가 안정적인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더 높은 완성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유통과 소비의 순환 단계로 접어들 수 있도록 연속 지원과 후속 활동 등 여러 제도적 모색도 필요하다.
예술단체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창작 환경을 위한 ‘다년간 지원정책’ 목소리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년 단위 사업 추진으로는 장기적인 비전이나 계획을 수립하기에 한계가 분명하며, 예술단체는 지원받기 위해 신작을 만들어내는 단편적인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일회성 발표로 끝나지 않고 발전적인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 지원 방식을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년간 지원사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제도 자체가 중·장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정책 입안자가 과연 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수립 과정은 불안정한 형태이며, 매번 단발성으로 추진됐다. 관계 법령, 시행령, 지침 등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책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여러 시행착오와 실험을 통해 예술가가 오랫동안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원정책 수립 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나 선정 단체 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정책의 목적과 목표를 예술단체와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공유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년간 지원사업은 단순히 지원 여부를 떠나 “미래 비전을 갖고 오랜 기간 꾸준히 예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예술가에게 던지는 중요한 제도이다. 그러한 만큼 시스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개개인을 바라보기보다는 전반적인 예술활동 환경 개선의 관점으로 접근해야만 비로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참고자료
· 윤병호 외/한국경영정보평가㈜(2022).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 3차년도 평가 및 성과연구용역 결과보고서
· 양혜원(2018). 지역분권 관점에서의 주요국가 예술지원정책 분석 연구: 영국,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책연구
· 최윤우(2018). 예술단체 중장기 지원정책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창작과정 지원 필요성만큼, 장기지원 두려움 없어야. 웹진 예술경영 408호
정유란
정유란(㈜문화아이콘 대표이사)

대중문화예술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한 뒤, 2000년 ‘문화아이콘’이라는 팀을 꾸려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25년 차 공연 프로듀서다. 〈주크박스 플라잉 뮤지컬 구름빵〉으로 공연의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를 성공시켰고 연극 〈82년생 김지영〉, 〈도둑맞은 책〉,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위대한 캣츠비〉 등 다양한 작품을 기획, 제작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