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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에서 호흡하는
한국 예술의 미래를 꿈꾸다

1975년 문화예술진흥정책과 함께 문화예술계
국제교류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후 50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 예술을
세계 관객에게 선보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적을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왔다. 국제적 파트너십을
만들기까지 국제교류사업이 지나온 발자취를 짚어본다.
글_김나영(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장)
문화예술진흥정책
태동과 시작된 국제교류의 역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50주년 중 국제교류의 역사를 짚어보려 하니 세월의 무거움에 선뜻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50주년의 5분의 1 조금 넘는 시간을 함께했을 뿐이지만, 기존 국제교류사업의 흐름과 성과를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그야말로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1970년대, 국가적으로 문화의 가치에 주목해 문화예술진흥법(이하 문예진흥법)이 제정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이 설립된 역사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시행된 다양한 지원정책사업 중 국제교류 사업은 1975년에 추진됐다. 무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기 17년 전이다.1 지난 50년간 그 명칭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예술위는 밖으로는 각종 국제 문화예술 행사, 콘퍼런스를 비롯해 전시(비엔날레), 공연(페스티벌) 협업 등을, 안으로는 해외 문화예술인을 초청해 한국 예술계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국제교류 사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국가적인 세계화 기조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등 대규모 행사가 개최되며 국제 사업도 탄력을 받아 계기성 국제 문화 행사를 통해 한국 예술을 선보일 기회가 확대됐다. 또한 일찍이 한국 예술가들이 세계적인 플랫폼을 경험하게 하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문화예술 관련 국제기구의 한국 본부의 활동을 지원해 민간 교류의 기반을 다졌다. 이 사업은 현재 ‘한국예술국제교류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파트너들과 초청, 계약 등 네트워크와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협업, 작품 구축, 행사 개최 등을 포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술가의 역량강화를 위한
레지던스 참가 지원
예술위는 국제적 무대 경험 및 타 문화권과의 교류 기회가 예술가들에게 놀라운 창작의 순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레지던스 파견을 지원해 왔다. 1983년 ‘문인해외방문연구’와 1992년 뉴욕 ‘P.S. 1 컨템포러리아트센터 프로그램’은 1년간 한국 예술가를 해외에 파견했던 사업으로 2000년대 초반 국가 정책이 레지던스에 주목하며 지금의 ‘예술가 해외 레지던스 지원사업’으로 이어지는 기틀을 만들었다. 그간 예술위에서 운영한 국제교류 사업은 인바운드와 아웃 바운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예술인을 초청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 공간을 제공하고 기획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단기 체류를 지원하고, 후자는 레지던스 지원 또는 예술위가 파트너십을 맺은 해외 협력 기관으로 파견한다.
<0.1cm :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

<0.1cm :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촬영 박홍순

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 독일 베타니엔스튜디오(Kuenstlerhaus Bethanien),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IWP 프로그램 등 정규 프로그램을 갖춘 레지던스 외에도 예술가 개인이 하기 어려운 경험을 기관의 파트너십 프로그램으로 설계해 몽골 고비사막, 러시아 바이칼 호수, 남극과 북극 등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제공했다. 특히 지난 12년간 극지 레지던스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과 이야기를 모아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지난 6월 7일부터 7월 7일까지 극지 레지던스 성과보고전 <0.1cm :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을 개최했고, 7월 2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인천공항에서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이라는 테마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한때 파트너십의 양적 확대에 주력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새롭게 변화하는 예술 현장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아웃바운드 파트너십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미술과 건축의 전략적 플랫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비엔날레 재단(biennialfoundation)에 등록된 전 세계 공식 비엔날레는 282개로 집계된다.2 수많은 비엔날레 중 세계인이 가장 주목하는 행사는 단연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일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엔날레’라는 단어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전’이라는 뜻을 갖게 한 가장 중요한 행사인 동시에 비엔날레의 시초라고 해도 무방하다. 만국박람회 형식의 국가관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동시대 미술의 특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는 여전히 동시대 미술계 담론의 장으로서 가장 큰 규모와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1993년 백남준 작가가 독일관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한국도 국가관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베니스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돼 있었고, 특히 언론과 관람객 모두 접근하기 쉬운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은 건물의 신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을 맞아 신규 국가관이 설립될 가능성이 엿보이자 무려 23개국이 자국관을 신청했다. 당시 한국은 정부의 ‘우리 문화의 세계화, 문화가 국력의 원천’이라는 확고한 정책 의지와 미술계의 세계적 플랫폼에 대한 열망이 만나 백남준 작가를 필두로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의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을 건립할 수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Daniele Nalesso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Daniele Nalesso

한국관은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미술과 건축을 알렸다. 특히 유럽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해 왔다. 1995년 전수천, 1997년 강익중, 1999 이불 작가가 특별언급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가 황금사자상을, 2015년 본 전시 초대 작가였던 임흥순이 은사자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를 운영하다 보면 한국관의 독특한 형태, 비좁은 공간으로 인한 한계성에 대한 지적에 종종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의견에 오랫동안 한국관을 운영하며 전시를 지켜봐 온 현지 총괄 매니저와 이탈리아인 안내요원들의 이야기로 답을 대신한다. “한국관은 전형적이지 않기에 더 매력적이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작지만 압축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시가 펼쳐져 타 국가관에서도 꼭 봐야 하는 전시로 여겨지고 있다.”
국가 포커싱을 통한
전략적이고 안정적인 협력 체계
‘국제 예술 공동기금 사업’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사업으로 2016년 영국과의 문화예술 분야의 집중 교류를 위해 양국의 예술 지원기구인 예술위와 영국예술위원회가 공동기금을 마련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단순한 영역 확장 개념이 아닌 깊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자 양국 예술가와 단체가 참여하는 리서치-협업사업은 물론, 기관교류 차원의 협력, 사업과 정보교류에 대해 포괄적인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서도호 작가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런던 이스트엔드 웜우드가의 육교 위에 한국 전통가옥을 설치한 <브릿징 홈, 런던(Bridging Home, London)>을 선보였고, 양국의 시각예술 8개 기관의 연합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릿징 홈, 런던>

<브릿징 홈, 런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는 최초의 매칭 펀드 공동기금으로 단순 교류 및 파견 사업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을 통해 체계적인 교류 가능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교류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독일(괴테 인스티튜트), 덴마크(덴마크 궁정청), 싱가포르(싱가포르 국립 예술위원회), 네덜란드(네덜란드 더치컬처 국제문화협력센터)에 이어 현재의 캐나다(캐나다예술위원회)와 협업하고 있다. 더욱 효과적인 사업 운영을 위해 싱가포르 사업부터 사전에 상호 예술계의 관심 주제를 파악해 주제형 공모를 시행했다. 또한 사업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총괄 기획자를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언급한 사업 외에도 기관 차원에서 국제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 연합인 IFACCA(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rts Councils and Culture Agencies)에서 국내 유일의 정회원 기관으로 활동하며 해외 주요 문화예술 기관과의 협력사업을 개발하고, 교류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2021년부터 2년간 이사 기관 및 아시아 지역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성과와 현황을 알리고, 세계 문화예술 정책 거버넌스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파트너십,
예술위의 미래가 되길
국제교류는 국제 정세의 변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미디어와 기술 발달, 코로나19 팬데믹 등 거시 환경에 따라 그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국의 봉쇄 조치로 국제교류의 기본요건이라 여겨졌던 이동성과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교류라는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또 전쟁이나 외교 문제로 민간의 파트너십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도 지켜봤다. 정책적으로 국제교류를 바라보는 관점도 지속 변화해 왔는데 국내에서는 2017년 국제문화 교류 정책을 위한 법적 근거인 국제문화교류진흥법이 제정되고, 이듬해에는 국제문화교류 진흥 종합계획 수립을 통해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3 외교 수단으로서의 문화, 한국 예술을 세계에 선보이고 선진 예술을 배워오는 것에서 시작했던 국제교류는 보다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에서 쌍방향, 수평적, 협업형 교류로 발전했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문화예술의 해외 유통과 시장개척 관점이 투입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기술적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안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는 더 빨리, 자주 연결될 수 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연대와 협력을 지향하고, 초국가적 이슈에 예술의 창의성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K 브랜딩으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가 제고된 기회요인도 있다.
지난 50년간 국제교류사업은 예술가에게는 다양한 영감과 세계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했고, 관객에게는 국제적인 공감대를 가진 작품을 공유해 예술 감상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으며, 예술계 전반에는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파트너십이 공고하게 구축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예술위는 장기적으로 그간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었던 국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시도하고, 연대와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새로운 관점의 인바운드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당장 사업화되거나 체감할 수 없더라도 또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고군분투하며 긴 호흡으로 신뢰에 기반한 파트너십을 차근차근 형성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문화매력국가’ 비전의 일부이자 앞으로의 50년을 만들 역사의 한 장이 될 거라고 믿는다.
  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40년사』 참고
  2. 세계비엔날레재단(http://www.biennialfoundation.org) 웹사이트 집계 기록으로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도큐멘타 등 주기적으로 열리는 대규모 국제전을 포괄함
  3. 국제문화교류 진흥 종합계획(2018~2022) 및 시행계획, 문화체육관광부
김나영
김나영(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장)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보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일어나길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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