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며
2023년 10월 11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합니다. 반세기라는 시간의 단위에 내포된 울림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예술위는 그동안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진흥기금) 운영을 통해 동시대 한국의 문화예술장에 무수히 많은 족적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위는 기초 예술의 토양을 구축하고 신진 예술인들을 비롯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새로운 양식을 발굴하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국제 교류를 통해 세계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한국의 문화예술과 예술인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이 정권의 부침과 연계해 예술의 영역을 축소하고, 심지어 파괴하는 부정적 요소로 다가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위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금까지의 과정을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성찰해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장에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나아가 다양성과 창의성을 통해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미래의 모습을 설계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A SQUARE 제6호에서는 예술위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사의 전환점이 된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해당 사안을 톺아보는 것과 함께 창작과 향유 지원, 국제교류, 인력개발 등 예술위가 수행한 주요 사업이 문화예술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예술위를 향한 국민과 현장예술인의 인식과 의견을 바탕으로 향후 예술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통해 살펴본 미래를 위한 과제
SQUARE에서는 ‘예술위의 발자취’를 주제로 일곱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양경학의 ‘50년의 명과 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0대 장면’은 현 예술위의 모태가 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의 출범과 이를 지탱하는 문예진흥기금 설치부터 위원회 체제로 전환,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을 작성해 검열 및 지원 배제 등을 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지난 예술위 역사의 명과 암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합니다. 본지의 편제에 비해 방대한 내용이지만 예술위의 의의와 역할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권합니다.
박신의의 ‘창작 지원, 정책 목표와 현실의 간극을 바라보며’는 예술위가 수행하는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핵심 가치를 탁월한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 지원에 방점을 두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의 흐름을 고찰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관객 참여와 예술적 창의보다 보조금에 의지하는 이른바 ‘좀비 예술가들의 양산’이라는 부정적 현상을 적시합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선 예술가가 내적 동기에 기반해 탁월한 예술 작품을 생산하고, 예술위가 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때 창작 지원의 당위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양효석의 ‘모두가 누리는 보편적 문화복지, 향유 지원사업의 성과와 과제’는 예술위가 수행한 대표적인 향유 지원사업을 이야기합니다. 수요자 선택형 문화복지 사업인 ‘통합문화이용권’, 문화접근성이 취약한 소외지역으로 예술인들이 직접 찾아가는 ‘신나는 예술여행’, 입장료를 일부 보조함으로써 공연 관객 개발에 영향을 준 ‘사랑티켓’ 사업의 역사와 성과를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문화예술의 접근성을 높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미래의 향유 지원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예술위 거버넌스 구조를 다룬 배관표의 ‘합의제 민간위원회로의 전환, 미래 거버넌스를 위한 제언’은 독임제 기구인 문예진흥원에서 합의제 기구인 예술위로의 전환을 내부 거버넌스의 변화로 진단합니다. 다만 위원회 전환만으로 독립성과 공정성, 대표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에 미흡하며, 이를 보충할 수 예술위의 역할과 교집합을 이루는 기관들과의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거버넌스 및 문예진흥기금의 확충과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협의체 마련 등 이른바 외부 거버넌스의 개편을 지적합니다.
김나영의 ‘세계 속에서 호흡하는 한국 예술의 미래를 꿈꾸다’는 문화예술 진흥정책의 태동기부터 함께 한 국제교류의 역사와 의의, 성과를 짚어 봅니다. 타 문화권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가들의 역량 강화를 의도한 레지던스 사업과 세계 속 한국 문화예술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운영, 단순 문화교류를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 예술 공동기금 사업 등을 소개하며, 해당 사업이 당장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긴 호흡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세계의 나라들과 신뢰에 기반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이제승의 ‘문화예술의 내일을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은 예술위 사업 중 문화예술 후속 세대를 위한 예술 인재 양성사업을 주목합니다. 초기의 단순한 정액 지원 형식에서 인접 학문과 분야에 대한 학습, 창작 영감을 조성하는 필드트립, 멘토링 등 비재정 지원의 강화, 고도화된 단계별 지원 체제 구축으로 발전한 청년예술가 지원 정책 등 고도화된 단계별 지원 체계 구축, 공연 기획 및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 지원 등 기술 지원 및 기획 분야의 인력양성 사업의 역사와 현황을 기술하며 문화예술 인재 양성 정책이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성규의 ‘예술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기부와 후원의 명분’은 문화예술 지원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민간 후원사업에 대한 예술위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문화예술 후원의 현황을 기술하고 민간 예술후원을 활성화할 방안으로 최근 점점 확산하고 있는 지역문화재단의 매개활동 및 모금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매개인력 교육 확대와 모금인력의 전문성 강화를 언급합니다. 이를 통해 예술의 가치를 사회에 확산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의 가치를 승인하고 후원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합니다.
PRISM에서는 50년간 활동해 온 예술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권용민은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50주년 대국민 인식조사 분석’을 통해 문화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문화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장르별 관심도 및 평균 소비량을 분석합니다. 나아가 예술위 인지도와 업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정도를 살펴봄으로써 대중과 밀접한 대중문화가 아닌 이른바 기초예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인식 척도를 어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이 선보이는 AROUND에서는 대담을 통해 주제에 관한 여러 사람의 시선을 알아봅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난 50년, 앞으로의 50년’을 주제로 예술위 정병국 위원장, 김성범 예술위 정책혁신부 차장, 김수희 연출가, 신보슬 큐레이터, 채경진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최지인 시인과 함께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예술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돼 있으니 영상에 담지 못한 내용은 본문을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SCENE은 ‘예술의 가치를 위한 동행 : 예술위와 함께한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예술위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김보람 앰비규어댄스컴퍼니 예술감독, 김아영 현대미술가, 박서련 소설가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중장기 창작 지원사업, 아르코 영 아트 프론티어, 베니스 비엔날레, 청소년 문학광장 글틴, 예술창작 아카데미 등 예술위에서 진행한 사업에 참여한 경험과 이로 인해 받은 영향, 예술위 사업에서 미진한 점과 바라는 점 등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한 가지 양해를 부탁드리는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50주년 특집 관계로 예술 현장의 최근 흐름을 소개하는 <FLOW>가 이번 호에 수록되지 못한 점입니다. 다음 호에 더욱 새롭고 특별한 주제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술위는 이제 다음 50년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기초예술 지원의 토양을 구축했던 지난 50년과 마찬가지로 다음 50년은 지속 가능한 예술 창작 환경 조성을 비롯하여 모든 국민의 보편적 문화접근권 보장, 한국 기초예술의 세계화 등 많은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와 생성형 AI의 대두와 같이 우리 시대 예술이 마주하는 거대한 도전에 대한 응전의 방식 또한 숙고돼야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과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술위의 자체적인 노력은 물론 정권의 이동과 상관없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예술인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협력을 통해 문화예술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가 가능할 때 다음 50년의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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