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양혜규는 이번 개인전 “응결凝縮: Condensation”을 통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적 공간들을 탐구한다. 작가에게는 별 의미 없는 주변(nebensächlich)으로 보일지 모르는 이 연약한 장소들이 무형의 움직임이 생겨날 수 있는 깨달음의 궁극적 배경이 된다. 전시의 제목인 “응결”은 손이나 눈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타인과 직접 소통하는 교환의 경로를
지칭한다. 작가의 설명대로 그곳에서는 기능적인 정보가 아닌 서로의 존재에 관한 정보가 교환된다.
병렬한다. 작가 자신이 거주했던 동네, 아현동은 지금은 철거를 앞두고 있기에 쇠락의 모습을 보인다. 비엔날레 전시가
개최되는 한국관이 위치한 지아르디니 공원의 비수기의 모습은 전시가 올려진 시간대와는 전혀 다른 정감을 자아낸다.
이 두 곳을 서성이는 영상은 동네 주민들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와 그 흔적을 노래하는 나레이션 위로 담담히 흐른다.
작가는 그 주변적인 공간에 가해진 거부와 울림을 공감하기 위해 실제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웃들과의 잡히지 않는 경험을 사유한다. 비록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로 헤어진다 하여도, 작가 양혜규는
예상치 못한 순간과 장소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러한 “응결적 소통”의 엄연함과 이 인식과 소통 체계의 공유 가능성을
제안한다. 효율이라는 소통의 형식적 정의를 거부하고 서로의 주체성을 북돋우면서 그는 타인을 맹목적이지만 통렬하게
수용할 수 있는, 다분히 영적이면서도 실존적인 자세를 키워가고자 한다.
<살림>(Sallim, 2009)이라는 제목의 신작은 베를린에 있는 작가의 집 부엌을 실제 크기로 재현한 조각이다.
작가에게 살림이란 비사회-경제적인 공간으로, 모든 삶의 활동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장소성을 함의한다. 마사 로슬러의
<부엌의 기호학>(1975)을 비롯하여 가치 폄하된 “여성의 노동”과 그 잠재력을 다룬 60, 70년대 많은 여성주의 작업선
상에서 양혜규의 <살림>은 “일 하지 않는 workless” 가정domestic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온 부엌 공간에 대한 가치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2 양혜규의 부엌은 그의 표현대로 “‘일’이라는 개념이 내포하는 현대사회의 강요된 효율성과 생산성이 부가해온 많은 강박들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며 따라서 남, 바깥 세상,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다른 방식의 접촉을
가능케 하여 주는 공간이다.
한국관 전시장 중앙에는 양혜규 작가의 야심찬 설치작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목소리와 바람>(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Voice and Wind, 2009)이 전시되는데 이는 자연광이 충만하게 밀려들어오는 가운데,
블라인드로 이루어진 층위가 미궁 같은 구조를 이루며 물리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장소의 경험들을 그림자와도 같이
공간에 반 투명하게 묘사한 설치작이다. 또한 작가가 선택한 재료, 즉 형언 혹은 분류가 어려운 색상과 패턴을 가진
기성품 블라인드는 미학적 기호嗜好의 한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가정적 환경에나 등장할만한 장식 미학의 도용을 통해
작가는 시대정신적, 공적 디자인의 개념을 공공연히 도전 혹은 반항함은 물론 사적인 영역의 비非미학을 강조한다.
“자아를 돌보고 돌아볼 수 있는 공간, 동시에 자아를 또 다른 형태로 타자와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작가는 이 영역을
정의한다. 이전의 작업에서 피력한 대로 작가는 전력을 오브제, 인물 그리고 서로 다른 사고思考 간의 비가시적인 연결로
가정하고, 이번 경우에도 전력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주 전시장 둘레에 설치된 여섯 대의 선풍기가 각기 다른 시간차를
두고 작동하여 바람을 일으키면서 천장에 매달려 공간을 경계 짓는 블라인드의 고정성을 분해하기도 하고, 바람과
블라인드 사이에서 부동성과 안정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관객의 움직임의 의미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곳곳에 숨은 향 분사기는 설치를 감각적으로 경험케 하는 순간을 제공하면서 공간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가 관객의
주체적 반응임을 알려준다. 시간과 공간의 다치기 쉬운(vulnerability) 성격의 은유로서의 반투명성과 즉흥성을 통해
작가는 타자와의 공감대와 공공에의 헌신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주은지
한국관 커미셔너 image #1 image #2 image #3 image #1 image #2 image #3 image #4 image #5 image #1 image #2 image #4 image #5 image #6 image #7 image #8 image #9
지칭한다. 작가의 설명대로 그곳에서는 기능적인 정보가 아닌 서로의 존재에 관한 정보가 교환된다.
은유적으로 상상해 보건대, 할 수 있는 한껏 찬 공기를 머금는다. 그러다 마침내 온도 차가 충분히 커지면비디오 수상록 <쌍合과 반쪽半-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Doubles and Halves—Events with Nameless Neighbors, 2009)은 이번 전시의 기초가 되는 작업으로 우리에게서 간과된 장소와 시간대에서 촬영한 두 가지 영상을
물방울이 병 표면에 맺히기 시작한다. 병을 열어 물을 쏟아 내지 않고 타인과 전이를 주고 받고자 한다.
응결이라는 직접적인 상호작용 아래 구체적인 사항들을 교섭 혹은 타협 없이 우리는 서로를 동원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1
병렬한다. 작가 자신이 거주했던 동네, 아현동은 지금은 철거를 앞두고 있기에 쇠락의 모습을 보인다. 비엔날레 전시가
개최되는 한국관이 위치한 지아르디니 공원의 비수기의 모습은 전시가 올려진 시간대와는 전혀 다른 정감을 자아낸다.
이 두 곳을 서성이는 영상은 동네 주민들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와 그 흔적을 노래하는 나레이션 위로 담담히 흐른다.
작가는 그 주변적인 공간에 가해진 거부와 울림을 공감하기 위해 실제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웃들과의 잡히지 않는 경험을 사유한다. 비록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로 헤어진다 하여도, 작가 양혜규는
예상치 못한 순간과 장소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러한 “응결적 소통”의 엄연함과 이 인식과 소통 체계의 공유 가능성을
제안한다. 효율이라는 소통의 형식적 정의를 거부하고 서로의 주체성을 북돋우면서 그는 타인을 맹목적이지만 통렬하게
수용할 수 있는, 다분히 영적이면서도 실존적인 자세를 키워가고자 한다.
<살림>(Sallim, 2009)이라는 제목의 신작은 베를린에 있는 작가의 집 부엌을 실제 크기로 재현한 조각이다.
작가에게 살림이란 비사회-경제적인 공간으로, 모든 삶의 활동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장소성을 함의한다. 마사 로슬러의
<부엌의 기호학>(1975)을 비롯하여 가치 폄하된 “여성의 노동”과 그 잠재력을 다룬 60, 70년대 많은 여성주의 작업선
상에서 양혜규의 <살림>은 “일 하지 않는 workless” 가정domestic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온 부엌 공간에 대한 가치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2 양혜규의 부엌은 그의 표현대로 “‘일’이라는 개념이 내포하는 현대사회의 강요된 효율성과 생산성이 부가해온 많은 강박들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며 따라서 남, 바깥 세상,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다른 방식의 접촉을
가능케 하여 주는 공간이다.
한국관 전시장 중앙에는 양혜규 작가의 야심찬 설치작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목소리와 바람>(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Voice and Wind, 2009)이 전시되는데 이는 자연광이 충만하게 밀려들어오는 가운데,
블라인드로 이루어진 층위가 미궁 같은 구조를 이루며 물리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장소의 경험들을 그림자와도 같이
공간에 반 투명하게 묘사한 설치작이다. 또한 작가가 선택한 재료, 즉 형언 혹은 분류가 어려운 색상과 패턴을 가진
기성품 블라인드는 미학적 기호嗜好의 한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가정적 환경에나 등장할만한 장식 미학의 도용을 통해
작가는 시대정신적, 공적 디자인의 개념을 공공연히 도전 혹은 반항함은 물론 사적인 영역의 비非미학을 강조한다.
“자아를 돌보고 돌아볼 수 있는 공간, 동시에 자아를 또 다른 형태로 타자와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작가는 이 영역을
정의한다. 이전의 작업에서 피력한 대로 작가는 전력을 오브제, 인물 그리고 서로 다른 사고思考 간의 비가시적인 연결로
가정하고, 이번 경우에도 전력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주 전시장 둘레에 설치된 여섯 대의 선풍기가 각기 다른 시간차를
두고 작동하여 바람을 일으키면서 천장에 매달려 공간을 경계 짓는 블라인드의 고정성을 분해하기도 하고, 바람과
블라인드 사이에서 부동성과 안정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관객의 움직임의 의미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곳곳에 숨은 향 분사기는 설치를 감각적으로 경험케 하는 순간을 제공하면서 공간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가 관객의
주체적 반응임을 알려준다. 시간과 공간의 다치기 쉬운(vulnerability) 성격의 은유로서의 반투명성과 즉흥성을 통해
작가는 타자와의 공감대와 공공에의 헌신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주은지
한국관 커미셔너 image #1 image #2 image #3 image #1 image #2 image #3 image #4 image #5 image #1 image #2 image #4 image #5 image #6 image #7 image #8 image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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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비롯한 이후 모든 작가 글은 한국관 전시 도록 『응결 : 양혜규』에 실린 「대담 : 양혜규와 주은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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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 쟝-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