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오디오 비주얼 설치, 다채널 영상, 스테레오, 5.1채널 서라운드, 가변설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A Performing by Flash, Afterimage, Velocity and Noise)>은 정은영이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온 <여성국극 프로젝트(2008~)>의 연장선상에서 여성국극 장르의 내부 서사에 대한 존중과 그것이 존재했던 당대적 시공간의 분석을 넘어, 현대의 퀴어 공연 예술가들의 실천으로 상호전승하고 확장하는 ‘불가능한’ 계보학을 상상한다.
             <여성국극 프로젝트>는 해방 이후 근대국가의 욕망 속에서 태동하고 쇠퇴한 ‘여성국극’이라는 특수한 장르의 공연을 분석하면서, ‘성별 관념’과 ‘전통/역사의식’에 드리운 억압에 가까운 통념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자 한 일종의 민족지 연구로서의 예술 프로젝트이다. 여성국극의 가장 특수한 양식적 독자성은 여성이 남성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남역 연기의 기술은 각 배우들의 ‘남성-배역’에 대한 개인적인 분석과 이해에 따라 그 표현을 달리하게 되며, 한편 ‘어떤 남성’이 수행되는가를 섬세하게 감각하는 것은 여성국극 관극의 핵심이다. 여성국극 남역배우들이 재현하는 ‘남성’은 언뜻 사회적 통념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전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남성성’으로도 포획되지 않는 독자적인 성별이기도 하다. 이들의 무대는 성별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정관념, 즉, 신체와 정신, 그리고 성적지향이나 행위 표현들이 매우 안정적이며 정상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관념을 흔들어 도발한다.
             여성국극 2세대 남역 배우이자 판소리 흥보가 부문의 무형문화재이기도 한 이등우(이옥천)는 생존하는 가장 탁월한 여성국극 남역 배우이다. 이등우는 1960년대 여성국극계에 진입해 극단을 운영하기도 하는 등 여성국극 배우로서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여성국극의 쇠락과 함께 전통 음악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국악계에서도 그의 소리는 여성 창자로는 흔치않게 남성적인 기개와 성량을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매우 과장된 발림(제스처)과 연극적인 연행 양식으로 독자적인 미학을 일궈냈다. 이등우의 연행과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전통과 현대성 모두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채 잊혀진 ‘여성국극’의 역설적인 현전이다. 사라진 무대와 텅빈 아카이브,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회상과 한숨으로만 남은 이 역사는 어떻게 다시, ‘역사’가 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로서 경험하는 몸의 불협과 분절의 감각을 음악적 형식으로 적극 개입시키는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무대와 음악, 남성 중심적이고 성별화된 연극계에 늘 독자적이고 위반적인 캐릭터를 제공해온 레즈비언 배우 이리,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의 연출가이자 배우로 매우 예외적인 행위미학을 만들어온 중증장애인 서지원, 페미니스트-퀴어 접점으로서의 드랙문화와 커뮤니티를 마련하고자 분투해온 드랙킹 아장맨, 이들의 실천은 언제나 안정적 장르공연을 탈주하는 형식적 도전과 자신의 신체경험이 견인하는 불편하고 이상한 몸의 변칙적 수행 사이를 진동하며, 거의 사라질뻔한 여성국극의 역사를 ‘퀴어공연’이라는 맥락으로 다시 소환한다.
             퍼포먼스 아트는 오랫동안 신체에 요구되는 안정적 통합성과 정상성의 관념을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재차 거절하고 문제화해 왔다. 여성국극이 고수해 온 한국 판소리 전통의 근간인 ‘구음전수(Oral transmission)’라는 존재론적 원칙은, 이 작업에서 보다 신체적이고 수행적인 차원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그리고 움직이는 몸들 사이를 흐르거나 멈추거나 유예하거나 중첩함으로써 퀴어한 몸들의 상호적 전수(inter-body transmission)의 방법론으로 이동을 시도한다. 따라서 이 작업은 ‘퀴어링(queering)’으로서의 공연(performing)을 감각하는 순간들을 직조해 예술실천에서의 ‘퀴어적 전회(queer turn)’를 반복적으로 환기하려는 노력인 동시에 공적 역사가 배제한 이들의 서사를 다시 소환하는 ‘페미니스트-퀴어’ 방법론을 통한 정치적 미학을 질문하고자 한다.





정은영,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오디오비주얼 설치, 다채널 영상, 스테레오, 5.1채널 서라운드, 가변설치. ©정은영
정은영

정은영은 1974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활동한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 그리고 영국 리즈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페미니즘을 공부했다. 이름 모를 개개인들의 들끓는 열망이 어떻게 사건들과 만나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저항 혹은 역사와 정치가 되는지를 다룬다. 작가는 여성주의적 미술언어 확장을 도모하는 미술실천을 목표로 2008년부터 10여년간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1950년대 식민 직후, 해방공간에서 출현하여 군부 독재시절 점차 사라져간 여성 국극 공연에 출현한 생존 남역 배우들의 무대 안팎을 추적하면서 성별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통과 역사의 구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공연,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였다. 아시아퍼시픽 트리엔날레(2015), 광주 비엔날레(2016), 타이페이 비엔날레(2017), 상하이 비엔날레(2018), 도쿄 공연예술 회의 TPAM(2018), 세렌디피티 아트 페스티벌(2018)등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13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2015년 신도리코 미술상,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Credit
정은영,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오디오비주얼 설치, 다채널 영상, 스테레오, 5.1채널 서라운드, 가변설치

퍼포머
이등우(고수 남경호), 이리, 드랙킹 아장맨, 지원, 키라라
조연출
이희인
대사
정은영, 문정연, 경민선
음악
키라라
음악 레퍼런스
KIRARA, “KIRARA,” moves, 2016; KIRARA, “BLIZZARD,” moves, 2016; 십센티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Life – Mint Paper Project Album Vol.3, 2010; Lucie Bernardo, Otto Rathke, The Okeh Laughing Record, 1922; Crookers, “The laughing track”, 2011
촬영
지윤정, 채정석
(크루)신동훈, 권정훈, 이창석, 한승희
조명
유석문, 김동훈
(크루)이진용, 가순범, 이민규, 김동효, 정준호, 서경원
그립
홍의수
(크루) 이현우, 이대우
동시 녹음
손영진
(크루) 양연호
분장
치명타
번역
김유석
편집
이희인, 정은영
기술 자문
김경호
색보정
정혜리
사운드
김근채(Punktire Studio)
장소 제공
우란문화재단 우란2,3경,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동-커미셔너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큐레이터 김현진), 카디스트
제작 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매일유업, 올해의 작가상 해외활동 기금, SBS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