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 전시 소개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역사 서술의 규범은 누가 정의해 왔으며, 아직 그 역사의 일부가 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인가? “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제목의 이번 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는 근대성과 동아시아를 젠더라는 렌즈와 전통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접근한다. 서구라는 규범만큼이나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규범을 질문하면서, 이 전시는 오늘날의 아포리아에 남겨진 수많은 경계영역들, 그리고 근대적 경계 발생을 논쟁한다. 특히 아시아 근대화 과정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바탕으로, 그 안에서 근대성과의 면밀한 관련 속에서 전통의 발생 관계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젠더복합적 인식을 통해 아시아에서 서구 근대성의 규범을 탈주하는 전통의 해방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작가 정은영은 최근 십년 간의 자신의 작업의 근간인 여성국극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퀴어 공연의 상상적 계보를 구축하고 퀴어 미학적 차원에서 탐색을 시도하며, 제인 진 카이젠은 공동체에서 탈각된 딸의 이야기인 바리설화를 서구 식민적 근대(Colonial modern)의 경계성과 디아스포라의 멜랑코리아를 탈주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하고, 남화연은 동양 춤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스스로 전통의 근대적 발생을 수행했으나 민족, 이데올로기적 구도 속에서 고난을 겪으며 동시에 근대적 경계들에 구속되어야 했던 20세기의 무용가 최승희를 다룬다. 근대를 파고들고 연구하고, 뒤집어보고, 발견하고, 반성함으로써 결국 서구 근대성을 쫓아온 동아시아 근대화의 양상에 개입하는 예술적 행위들을 선보이는 이번 작품들에는 모두 전통이 어떤 중요한 매개이자 가능성으로 등장한다. 복합적인 서사들의 배치를 통해 역사 개입을 형성해내는 세 작가들의 예술행위 속에는 문명과 문화의 기획에 개입된 권력과 체제의 논리, 통념이나 관습의 폭력성, 그러한 역사의 규범에 저항하고 그것을 균열(rupture)을 일으키는 예리한 질문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시장에 울려 퍼질 소리와 리듬, 파동, 산포적인 이미지의 연쇄, 몸과 움직임 속에 발현되는 촉지적 지식 수행, 그리고 타자와 더불어 자신을 형성해가는 정동(affect)의 경험들이다. 전시는 가려지고, 잊혀지고, 추방되고, 비난받고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했던 이들에게 다시 자리를 내어준다. 이들은 읊조리고, 노래하고 울고 웃고, 발산하고 움직이고 춤추고 마침내 큰 소리로 외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        전시의 제목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으로, 사용에 저자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김현진
Curator of Korean Pavilion

김현진은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이며,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KADIST의 아시아 지역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 관장/전시감독(2014-2015) 및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의 공동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그 밖에 일민미술관의 학예실장, 네델란드의 반아베미술관의 게스트 큐레이터, 아트선재센터 학예연구원 등으로 일했고, 주요 전시로는 “2 or 3 Tigers”(세계문화의 집, 베를린, 2017), “Gridded Currents”(국제갤러리, 서울, 2017), “Two Hours” (Tina Kim Gallery, New York, 2016), “니나카넬-Satin Ion” (아르코미술관, 서울, 2015), “남화연-시간의 기술”(아르코미술관, 서울, 2015), “Tradition (Un)Realized”(아르코미술관, 서울, 2014), “탁월한 협업자들”(일민미술관, 서울, 2013), “시선의 반격”(L’appartement22, Rabat, 2010), “우발적 공동체”(계원 갤러리27, 의왕시, 2007), "십 년만 부탁합니다-이주요 위탁 프로젝트"(계원 갤러리27, 의왕시, 2007), "사동 30-양혜규"(인천 사동 폐가, 2007), "Plug-In#3-밝힐 수 없는 군중들"(반아베 미술관, Eindhoven, 2006) 등이 있다. 또한 2009년 이후로, 김성환 작가의 In the Room 3(Performa, 뉴욕, 2009), 정은영 작가의 Off-Stage /Masterclass (문화역 서울 284, 페스티발 봄, 서울, 2012-2013), 그리고 이주요 작가의 “십 년 Ten Years” (문래예술공장, 남산 아트센터, 서울, 2016-2017) 등,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퍼포먼스 작품을 기획, 제작해 오고 있다. 또한 저서로는 정서영-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현실문화, 서울, 2012), 가오시창- The Other There(Timezone8, 베이징, 2009), 돌로레스 지니와 후안 마이다간 (Sala Rekade, 빌바오, 2007) 등이 있다. 그 밖에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프로그램 자문위원(2014-2016)과 DAAD Artist Residency(2017-2018)의 심사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