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아르코미술관
아르코미술관
Q. 현재 아르코미술관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신가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소속으로 2020년 4월부터 아르코미술관의 관장을 맡게 되어 아르코미술관의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운영을 총괄하고 있어요. 2023년부터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운영도 맡아 왔습니다. 이전에는 예술위 산하의 국제교류부가 베니스비엔날레의 운영을 담당했고 아르코미술관은 귀국전을 지원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각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부서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좋겠다는 예술위와 미술계의 요구로 베니스비엔날레 업무가 아르코미술관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과거 베니스비엔날레는 ‘미술 올림픽’으로 불릴 정도로 국가관 간에 서로 경쟁하는 체제로 운영되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국가주의를 벗어나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비엔날레의 방향성이 바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관 운영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감독의 기획력이 돋보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전략을 세우는 큐레이터십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아르코미술관은 한국관의 커미셔너(Commissioner)로서 예술감독과 참여 작가가 좋은 전시를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운영 및 프로모션, 마케팅, 자금 모금 등 전시의 외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의 기억을 ‘향’으로 재구성하다
한국의 기억을 ‘향’으로 재구성하다
Q.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총감독과 전체 주제를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895년 베니스비엔날레 창립 이래 처음으로 남미 출신의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예요. 전체 주제는 “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로 국적과 경계, 소속감 너머의 이방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와 같은 총감독 지명 및 주제 선정에는 서구의 백인 남성이 중심이 되었던 기존 문화예술계의 권력 구도를 재편하고 여성, 유색인종 등 소수자성과 다양성을 부각하려는 근래의 세계적인 흐름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본 전시에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원주민(Aborigine) 출신의 작가, 퀴어 예술가가 참여할 예정입니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의 작품도 초청되었는데,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그곳에서 4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작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강승 작가가 참여해요. 또한 월북 미술가로 알려진 이쾌대 작가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그린 월전(月田) 장우성의 작품도 함께 소개될 예정입니다.
Q. 한국관 대표작가로는 구정아 작가가 참여하던데요, 구정아 작가의 작품 세계와 한국관 전시 계획을 설명해 주세요.
구정아 작가는 스스로를 “모든 곳에 살고 일하는(lives and works everywhere)” 작가라고 표현할 정도로 국경과 경계를 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향, 빛, 온도, 소리처럼 개인의 경험과 감각과 관련된 비물질적인 요소를 그림이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석하는 작업을 해왔고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서는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라는 제목으로 ‘향’을 매개로 한국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고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후각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하잖아요. 기억 속의 향과 비슷한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후각은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감각이에요. 이번 전시는 향을 통해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를 위해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거주하는 한인, 외신기자, 북한을 떠나 남한에 자리 잡은 새터민 등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인의 범주를 넓히려는 이 시도가 결과적으로는 디아스포라 한국인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내게 되어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전체 주제에도 잘 부합하는 내용이 된 것 같아요. 수집된 600여 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향을 선정하고 조향사와 함께 해석한 향을 한국관 안에 배치해서 한국관 전체가 향을 발산하는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도록 연출할 계획입니다.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시
한국미술로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다
한국미술로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다
Q. 예술위의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Every Island is a Mountain)>도 함께 개최되는데 이번 특별전시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맞아 특별전시를 준비했지만 30주년을 자축하고 기념하려는 의미보다는 한국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비전을 탐색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의미가 더 큽니다. 한국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 싶었고요. 그동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구정아 작가를 제외하고 총 38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특별전시에 38명의 작가를 모두 섭외하고 싶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절반을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작가 대부분이 바쁘게 작업 중이거나 해외 전시가 예정되어 있는 분도 많았어요. 하지만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분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 주셨어요. 참여 작가분 중 3분의 1은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신작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지 못한 이불, 양혜규 작가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셨고요. 그만큼 많은 작가분이 베니스비엔날레를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저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모든 섬은 산이다> 포스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Q. 무려 36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만큼 전시의 주제를 선정하는 일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주제를 먼저 선정하고 주제에 맞춰 작가를 섭외한 게 아니라 작가를 먼저 섭외하고 주제를 나중에 선정하게 된 만큼 그 많은 작품을 어떻게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굉장히 재밌는 걸 발견했어요. 작가분들이 작품을 선보인지 10년에서 20년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시대와 공명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또 모든 작가분이 코로나19나 기후변화 등 인류의 공통 과제를 의식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계셨고요. 작품의 주제는 물론이고 작품을 창작하거나 옮기는 과정에서도 기후변화, 비인간 존재와의 공생과 같은 생태적인 관심사가 많이 엿보였습니다. 이런 공감대에서 출발해 ‘연결’이라는 주제를 메타적으로 떠올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섬은 산이다>라는 특별전시 제목에 녹여내게 되었습니다.
Q. 전시 공간이 몰타 기사단 수도원으로 무척 특별한데요. 그곳에서 전시가 이뤄지는 이유가 있나요?
몰타 기사단 수도원은 사실 예술위의 후보 목록에는 없었던 곳이에요. 그런데 해양생태 연구를 바탕으로 아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TBA21’라는 재단의 소개로 우연히 몰타 기사단 수도원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살펴보니 이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와 함께 특별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선 역사적인 배경이 뜻깊었습니다. 몰타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에도 참여한 유서 깊은 단체인데 지금도 난민 구호 활동을 하고, 로컬에서는 치매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좋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더라고요. 전 세계 및 로컬과 연결되고자 하는 몰타 기사단의 이런 활동이 특별전시의 취지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몰타기사단도 바티칸처럼 국제법상 주권을 인정받은 하나의 나라입니다. 이탈리아에 소재하지만 이탈리아가 아닌, 국경과 정체성이 모호한 공간이라는 점도 이번 비엔날레 주제와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서구 중심의 유럽 세계에서 꾸준히 한국미술의 메시지를 발신해 온 한국관의 의미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마지막으로 수도원의 정원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사실 베네치아 현지에서는 베니스비엔날레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부호와 아트컬렉터들만 모여서 즐기는 행사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예술위에서는 이 3,000㎡ 규모의 넓은 정원에 ‘환대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로컬과 협업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베네치아 현지인에게 한국미술을 소개하는 투어 프로그램, 해수면 상승 등 지역의 기후변화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토크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30년
한국미술의 미래를 준비하다
한국미술의 미래를 준비하다
Q. 그동안 한국관 운영의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건립 3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 예정인 아카이브북의 내용과 의의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서구 중심이었던 세계 미술사의 판도가 뒤바뀌는 데 베니스비엔날레가 큰 영향을 끼쳤고 그렇게 되는 데는 한국관도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관이 건립되기 이전인 1993년에 백남준 작가가 한스 하케(Hans Haacke)와 함께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작가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어요. 이에 백남준 작가는 ‘한국관 건립의 산파’로 불릴 정도로 한국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어요. 서구 중심주의를 적극적으로 전복하고 싶어한 백남준 작가의 꿈과 더불어 다양성과 소수자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유럽 내부의 자성, 세계화를 꿈꾸던 제14대 김영삼 정부의 당시 국정 기조가 맞물려서 한국관 건립이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서구 중심이었던 힘의 판도가 바뀔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관 건립 당시의 이런 비전을 재조명하기 위해 특별전시와 함께 아카이브북 《마지막 국가관(The Last Pavilion)》도 발간할 예정입니다. 사실 초기의 한국관 운영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2015년 이전만 해도 아카이브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요. 그런데 이번에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맞아 학술 심포지엄, 라운드 테이블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한국관 건립 초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관 건축 설계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한국관은 건물이 사각형이 아니라 비정형으로 설계되어 있고 벽도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전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죠. 게다가 나무 뿌리를 해치지 않고 풍경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베네치아시의 규제 때문에 설계가 어려웠죠. 그런데 나중에는 한국관의 독특한 구조 자체가 작품의 영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관의 유리를 반투명한 필름으로 래핑해 무지갯빛으로 만들기도 하고(김수자 작가), 한국관이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위치에 착안해 해수면 상승을 주제로 한 작품이 탄생하기도 했죠(문경원, 전준호 작가). 이와 관련해 건축가들로부터 “한국관 건축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라고 하는 소감을 2023년 10월에 진행한 라운드 테이블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한국관의 공동 설계자인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 교수가 엄청난 양의 자료를 기증해 준 덕분에 한국관 건립 초기의 정황을 무척 구체적으로 정리하게 되었어요. 아카이브북에는 공동 설계자인 만쿠조 교수와 김석철 교수의 글, 지난 비엔날레 전시 도록, 작품 사진, 연보, 관련 연구 논문 등을 수록할 예정입니다. 한국관 건축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건축가에게 영감을 가져다 준 것처럼 아카이브북도 차세대 큐레이터와 기획자 그리고 작가가 한국관의 비전을 재설계할 수 있는 유의미한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한국관 운영 계획이 궁금합니다.
30주년 특별전시와 아카이브북을 통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비전을 되짚어 봤으니 이제는 그 비전을 바탕으로 미래세대의 꿈과 목표가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한국관 운영의 전문성을 탄탄하게 정비하려고 합니다. 이번 특별전시를 준비하며 기업 후원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많이 쌓으면서 팀원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 프로모션과 마케팅, 네트워킹 등의 측면에서도 기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축적해 예술감독과 참여 작가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좋은 전시를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좋아요0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
문화 현장의 이슈와
건강한 정책 담론을 나누고 싶다면
웹진 A SQUARE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