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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현 정부의 창작지원제도를 향한
현장 예술인의 제언

2023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10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대규모 프로젝트에 다년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창작지원정책의 기조를 전면 수정하겠다는 것.
예술인은 이 같은 창작지원제도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예술 현장에서 체감하는 창작지원제도의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여자_ 동이향·천재현·최기창·김민솔
  • 참여자_동이향

    동이향

    연극연출가

  • 참여자_천재현

    천재현

    공연 제작∙연출가

  • 참여자_최기창

    최기창

    시각예술가

  • 참여자_김민솔

    김민솔

    독립기획자

ROUND 1

다년간 지원사업을 둘러싼
예술인의 목소리
동이향 10대 핵심과제 중에서 예술인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내용은 단연 ‘예술 창작을 다년간 지원한다’는 것일 텐데요, 젊은 예술인에게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국립극단에서는 2021년부터 ‘창작공감’이라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창작극 개발을 1년간의 비교적 긴 호흡으로 지원하고 다음 해에 국립극단 제작 공연으로 발표하는 방식인데 희곡처럼 성과가 빠르게 드러나지 않는 분야에서는 이처럼 중기적인 관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작자에게도, 제작 집단에게도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니까요. ‘창작공감’ 이후 한동안 좀 뜸했던 좋은 희곡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나고 있는데,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천재현 다년간 창작지원은 예술인이 오랫동안 바라 왔던 정책이죠. 하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큰 기조가 정해지면 기존에 시행되던 지원정책까지 모두 한 방향으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존의 단년 지원 혹은 개별 작품에 지원하는 방식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우려되기도 합니다. 작품마다 필요한 지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여러 방식의 지원정책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초단체와 광역단체, 상위 기관의 역할은 각각 다른데 모두 엇비슷한 지원정책을 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원 기간과 규모가 다양해져야 하고 지원 방향성과 목적성은 더 뚜렷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술인’ 지원이 아닌 ‘예술’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꾸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공연예술단체가 지원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그동안의 지원을 통해 잘 만들어온 예술 작품과 쌓아온 내공을 기반으로 더 나은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최기창 저는 다년간 창작지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이 지원제도가 잘 운영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창작지원을 다년간 하기로 했는지, 어떤 예술인을 지원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계획은 나와 있지 않더라고요. 창작지원제도가 예술인에게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자주 지원하지 않았어요. 그건 지원금이 필요 없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지원을 받기까지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뿐더러 작업을 하다 보면 작품의 방향성이나 결과물 등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유동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다년간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계획과 예측이 필요할 텐데 예술이 계획하고 정해진 대로 수행해 내는 활동은 아니잖아요. 이러한 부분도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ROUND 2

지역균형발전 문화정책의
실효성 점검
김민솔 수용자 입장에서는 지역의 문화향유 환경을 개선하며 격차를 줄이려는 여러 지원정책이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석구석 문화배달 사업’이나 ‘신나는 예술여행’ 같은 사업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온라인 공연도 지역 문화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좋은 사례와 후기를 접하기도 했고요. 다만 민간 예술단체는 지역에서 공연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지금 이런 논의도 자칫 서울 중심적인 사고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예술 유통 지원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지만 예술 현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데는 아쉬움이 큽니다. 2024년 신설된 ‘문화예술 전국유통 지원사업’은 사전에 지역 기관과 매칭을 한 상태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료 예술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문예진흥기금사업’을 개편하며 추가된 ‘공연예술 창작주체’ 사업도 지원 기준이나 지원서 양식이 현장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이향 작품의 장르를 무용, 연극, 다원예술 등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창작의 과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창작의 결과인지에 대한 판단도 점점 어려워지고요. 창작 작업이 다원화되고 연구 중심이나 개념 중심의 성격을 띤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고, 더 나아가 미디어가 코로나19 이후 절대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이런 추세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사업은 행정적인 틀 안에 놓이게 됩니다. 지원서 양식에 맞춰 이런 창작 작업을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원사업이 창작자들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게 되는 거지요.
천재현 지역 순회 사업에 대해서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지역의 예술 향유자를 생각하면 당연히 좋고 꼭 필요한 사업이죠. 그러나 이러한 사업이 ‘예술인의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처럼 여겨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관객이 과연 공연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국공립 예술단체든 민간 예술단체든 공연의 품질을 유지하며 관객에게 좋은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지역 순회를 확대하는 데 있어서도 국공립 단체와 기관뿐 아니라 민간단체도 충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기창 축제나 지역 레지던시를 통해 지역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꾸준히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9월에 키아프와 프리즈서울,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라는데 이 행사들의 개최 시기를 분산하면 지역에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만큼 각 이벤트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겠죠. 폐교와 같은 유휴공간을 활용해서 예술인을 위한 레지던시를 전국 곳곳에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홍대나 이태원처럼 예술인이 머무는 공간에 활력이 생기고 지역주민의 문화향유 기회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예술인도 작업 공간과 주거 문제가 해결되어 상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방법이 예술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형태가 아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더 자연스러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나는예술여행 – 브랜드 홍보영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ROUND 3

효율성을 중심으로 수립된
문화예술정책의 구조에 대한 우려
동이향 문체부의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10대 핵심과제’는 작품이 불러올 효과, 효율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업 통폐합, 기능 일원화, 브랜드 사업화 등의 방향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창작지원사업은 순수예술의 장을 지원하고 지키는 데 있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인데요. 순수예술로 문화상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역설적이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순수예술의 가치는 시장성, 상품성만으로 가늠할 수 없어요. 눈에 보이는 성공을 강조하다 거대 자본 위주의 작품들만 살아남는 건 아닐지, 작은 규모의 예술단체와 작품들이 사라지며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이 저해되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지난 6년간 망원동에서 ‘이행성 극장’이라는 창작작업실을 운영했는데요, 이런 창작작업실은 예술가들의 상상과 실천을 이끌어내는 생태계의 중요한 원천입니다. 일원화, 수월성, 브랜드 사업화를 추구하는 현재의 방향에서는 자율적인 예술생태계의 흐름을 지원하고 그 결과를 다시 생태계로 돌려보내는 순환 구조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김민솔 그동안 실험적인 작품 기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며 연극인에게 큰 힘이 되었던 ‘신촌문화발전소’도 2024년부터 운영 방향이 바뀌었다고 해요. 수익 사업, 대관 사업 위주로 진행한다는데 이렇듯 소규모 창작 공간까지 효율성 위주로 운영된다면 예술인이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됩니다.
최기창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에 1년 간 머무르며 작업한 적 있었는데 그 당시의 저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소속감이 주는 마음의 안정감이 있었고 매칭 프로그램과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다음 전시의 영감을 얻기도 했어요. 예술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레지던시나 대안 공간이 계속해서 새롭게 생기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간 운영의 효율성을 중요시하면서 레지던시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행성극장 전경 Ⓒ서울문화재단

이행성극장 전경 Ⓒ서울문화재단

신촌문화발전소 전경 Ⓒ신촌문화발전소

신촌문화발전소 전경 Ⓒ신촌문화발전소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ROUND 4

창작지원제도에 대한
현장 예술인의 제언
동이향 지원사업은 예술가들에게 애증입니다. 지원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치고, 지원사업에 떨어지면 참 힘들거든요. 지원사업에 붙으면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쁘죠. 그런데 막상 지원사업에 선정됐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결국 지원사업에 의지하지 않고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다가 앞서 말한 이행성 극장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방식,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재설정하기 위한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실험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생겼습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외부에 설명하고, 실험까지 추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술가가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예술가를 지지하고, 함께 실험을 추진하는 기획자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창작지원제도의 범위 또한 현장 예술가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함께하는 기획자, 큐레이터까지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솔 지원사업을 준비하거나 진행하다 보면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부 담당자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친절하고 좋은 담당자를 만나면 지원기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고요. 사람이 기관을 대표하기도, 기관이 사람을 대표하기도 하는 만큼 수행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신경 써 주셔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원기관이 지원사업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천재현 맞습니다. 순환보직제도 등으로 인해 담당자가 지원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기 어려운 운영 구조 자체도 문제인 것 같아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예술인과 기획자, 행정가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도 있는데 이를 중간에서 조율해 주는 역할이 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정책이 전반적으로 현장의 예술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요, 사실 대부분의 예술인이 노후 대비를 전혀 못 한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예술인이 현장에서 물러난 이후에 새로운 직업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등 예술인 생애주기를 좀 더 고려한 다양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기창 지원사업의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시각예술의 경우, ‘전시 개최’를 증명하며 지원사업 결과물로 도록을 제출하곤 해요. 단순히 수행 여부를 증명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지원금으로 얼마만큼의 예술적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예술적 가치를 측정하는 일은 어렵지만 이러한 고민이 예술인에게도 창작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도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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