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한 건축가는 서울의 이상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그것은 보행과 수송기관이 완전히 분리된 모습이다. 사대문 안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서울은 보행자만의 도시가 되어 있다. 건축가는 그것이 서울의 원래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사대문과 성곽은 모두 복원되어 원래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그에 의해 구획된 시내에는 자전거와 공공으로 운영되는 시속 20km 미만의 전기차만 다닌다.
“맑은 공기, 커다란 수목, 그 그늘 밑에 남녀 쌍쌍의 흐뭇한 모습,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노부부들, 앵두를 파는 사람, 꽃을 파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일요화가, 노천 전람회를 하는 화가, 피리를 불고 있는 소년들.”
글의 제목은 “도시 디자인 환상곡.” 파격적인 상상의 주인은 김수근이다. 당시 국제적인 논쟁의 중심이던 자동차는 도시를 상상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수였다. 미래의 상상 속에서 광화문과 시청광장, 덕수궁은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공공의 ‘자유공간’이 되어 있다. 건축가는 이들을 “서울시민의 ‘거실(리빙룸)’”이라 표현한다.
“유럽 바로크의 광장처럼 행진을 위한 광장도 아니고요, 산피에트로 광장같이 식전을 위한 광장도 아닙니다. 조선시대 도로의 연장이고, 구심적인 서울시의 핵 역할을 하는 (…) 동양의 산마르코 광장이라고나 할까요.”
영상작품 <환상도시>(가제)는 구현되지 않은 ‘자유공간으로서의 서울’을 맥거핀으로 삼아 1960-70년대에 이루어졌던 근대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특히 기공에 관련되었거나 이를 연구한 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식민통치와 전쟁 이후 국가의 인프라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국가 기관인 기공이 수행했던 역할과 비전을 재조명한다. 거대한 자유공간으로 ‘리셋’되는 대신 타협되고 굴절된 비전들의 중첩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 도시 서울의 이면에 평행 현실처럼 아른거리는 ‘환상도시’의 그림자들을 추적한다. 태어나지 않은 비전의 유령. 그 추적은 일련의 질문을 곱씹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의 가능성은 국가 제도의 울타리 속에서 어떤 형태로 제안되고 구현 혹은 좌절되었는가? 서울에 있어서 ‘근대화’란 무엇인가?
<환상도시>는 오늘날의 서울을 들여다보는 환상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