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부검”은 현실과 상상, 소설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들을 담는다. 이들의 기억은 ‘여의도’라는 거대한 시대적 실험을 통해 엮여 있으나 이야기를 주도하거나 이야기에 끌려가는 자가 없이 함께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의도는 구체적인 장소보다 은유적인 허상으로 존재한다. 때로 면적의 단위가 되어버린 여의도의 거대함, 광활한 평평함, 그리고 구석이 존재하지 않는 어색함은 곧 실현될 유토피아로서 여의도의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유지시킨다. 아스팔트 광장에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고, 농성 했던 수백 만의 기억과, 여의도의 하늘 위에 펼쳐 지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매년 가을 모이는 군중들, 그리고 봄마다 벚꽃 아래 윤중제를 걷는 시민들에게 여의도는 지금도 가까운 유토피아다. 여의도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의 예언적 개념으로서의 운명은 국가 정체성의 견고함과 맞물려 있다. 사회적이며 미학적인 실험대상으로서 여의도는 여전히 한국 아방가르드 건축의 성지다.
기공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은 절망적인 현실에 대응하는 해독제의 역할을 했고, 그들의 그림과 글은 보고서, 신문, 잡지, 그리고 엑스포 등을 통해 게걸스럽게 소비되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참여한 도시계획부의 건축가 7명은 노련함이 부족했으나 젊고 순진하며 총명하고 야심에 찬 엘리트 집단이었다. 그들의 리더였던 윤승중은 29살의 젊은 건축가였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매너로 그의 후배들을 이끌었고, 그들은 함께 밤을 세우며 현실을 과감히 거부하는, 이상적인 미학을 담은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그들이 그린 여의도의 모습은 역사적 이상과 환경적 현실 간의 큰 간격을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그 섬 위에서 공원과 광장을 거닐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즐기고 여유롭게 여가생활을 향유하는 가까운 미래의 환상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제3공화국의 통치자들은 시민들이 현재의 희생을 통해 미래의 행복을 현실화할 것을 강요했고, 신기루와 같은 미래의 도시는 5년마다 가까워지는 듯 했으나 영원히 한강의 은빛 수평선 건너편에서 아른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