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종묘에서 남산까지 서울 도심의 총 8개의 블록을 근대적 도시로 전면 재개발 하려 시도하면서 1967년 세운상가는 도심 한 가운데를 날카롭게 가로지르며 등장하였다. 이후 50년간 이 근대건축의 거대구조는 주변의 사용자들에 의하여 서서히 잠식당하며 영세 도심 산업의 숙주로서 개발 압력에 버티며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세운상가를 활용한 공공영역의 재구축 시도가 새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세운상가 주변블록에 대한 재개발 압력 또한 커지고 있다.
전후 60년대 초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집중적으로 양산된 서울 도심의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계획 당시 건축가가 예측한 방향과는 다르게 사회의 변화에 뒤처지며 흉물로 인식되거나 없어져야 할 건물로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세운상가군도 초기 아파트 입주자들이 건물을 이탈하고 떠나면서 일종의 동면상태에 빠지게 된다. 주변지역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릴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건물 주변에서 웅크리고 있던 청계천과 을지로 주변의 영세한 산업 조직에 잠식당했다. 소규모 전기 전자 상인들이 상층부 주거 영역을 사무실과 창고 등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도심 속 전기전자 산업의 메카로 변모한 것이다. 비단 세운상가뿐 아니라 서울 도심에 지어진 여러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이중적 역할이 드러난다. 열악한 환경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노리며 등장하였지만 거꾸로 영세한 도시 조직에 의해 점령 당하고, 거대한 규모의 경직성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제주체들의 이해 관계로 인해 역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연하는 보호막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이 거대구조가 만들어준 자유공간(Free Space) 안에서 영세 산업체들은 서울의 도심 한 가운데에서 개발의 압력을 피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또 50여 년간 서울의 독특한 도시 풍경을 만들어 냈다.
세운상가 주변 을지로 일대는 용적률이 800-900%에 달하는 상업지역이지만 세운상가 때문에 전면 재개발되지 않고 1~2층 규모의 영세 산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는 세운상가에 기생한 네트워크화 된 도심 산업 조직을 서울만의 독특한 근대 도시건축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하여 일방향적인 전면 재개발을 컨트롤하기 위한 세운상가의 새로운 역할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세운상가의 옥상에서 바라보는 도시경관의 주요 통경축을 활용한 주변 도시조직의 입체적인 컨트롤 전략과 세운상가의 공공영역을 주변블록으로 확장하기 위한 세부전략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는 68년 당시 개발시대의 선봉으로 기능했던 기공의 세운상가에 대응하는 2018년의 새로운 세운상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