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박광수 개인전_Man on pillow
- 전시기간
- 2012.10.16~2012.11.02
- 관람료
- 오프닝
- 장소
- 작가
- 부대행사
- 주관
- 주최
- 문의
박광수 개인전_Man on pillow
2012.10.16 - 2012.11.2
박광수
DIALOG
PHOTO
박광수는 물리적인 현실에서 비껴나간 의식의 틈을 공상이라는 불확정적인 형식을 통해 메워가고 있습니다. 드로잉으로 남게 되는 공상의 결과물들은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되기도 하고, 대상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긁적거리는 기록으로의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시작도 끝도 없는 “꿈”이라는 이번 전시의 배경은 타인과 공유하기 힘든 단편적인 조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의 너머에 있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특히 그가 작업의 재료로 선택한 검은 펜은 현실에서 쉽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상념과 대상을 마주하는 찰나를 간절하게 쓰다듬고 있습니다.
□ 작가와의 인터뷰
(Q: 이단지_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A: 박광수_작가)
Q : 당신이 지금까지 실험해오고 있는 작업들의 가운데에는 드로잉이라는 형식의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장난감들을 부수고 조각들을 붙여 만든 입체작업도 있었습니다만(울화_2009), 당신이 주로 쓰고 있는 짧은, 혹은 긴 선들의 모음을 상기해볼 때 그것 역시 단단한 덩어리의 조각이라기 보다는, 거칠고 속도감 있게 붙여나간 입체의 드로잉 같았습니다. 심지어 노트와 드로잉 북에 있는 별표들을 트레이싱지를 대어 “수집”하고 뭉쳐 하나의 행성을 만든(2009)에서는, 드로잉에서의 선이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수단으로의 형식을 너머 어떤 태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어쩌면 드로잉이라기 보다는 좀 더 다른 측면을 이야기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이 작업의 주제로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던 “파편”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파편이라는 것은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느낌입니다. 당신은 깨어지거나 부서진, 흩어지는 어떤 작은 것, 사라져버리는 상념들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그것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으로 속도와 표현의 면에서 유리한 드로잉을 선택한 걸까요?
A: 저에게 드로잉은 모르는 길을 설명하기 위해 냅킨 위에 그린 약도와 같아요. 제가 공상한 이야기에는 베어진 공간이라던가 중력을 잃은 사물 등 물리적 질서가 교란되는 순간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오래 전, 미술을 좋아하기 이전부터 틈날 때마다 공상하거나 이야기 만들기를 일삼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재료가 종이와 펜이었고 그것 만으로도 저의 상상계를 전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로잉 할 때 부딪히게 되는 재료의 한계는 오히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기회가 됩니다.
최근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깨어지거나 부서진, 흩어지는 것들뿐 아니라, 그 반대로 뭉쳐지거나 축척 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 양쪽이 반복됨으로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단단하던 것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고, 또 부서지고……
펜은 선과 점만을 그려낼 수 있어요. 공간과 사물들(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과 점들을 차곡차곡 배열해가며 그리게 되죠. 그것은 원자들이 모여 물질을 이루는 것을 연상시켜요. 그런데 그 선과 점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면을 발견하게 되죠. 저에게 이것은 프렉탈 구조와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개인전에서 폭발장면을 그렸을 때 저는 파편 하나하나에 집중 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 하나의 파편이 전체가 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묘사한다면 얻지 못할 이미지들은
완벽히 묘사된 이미지보다 매력적임을 깨닫게 된다.” _박광수의 작가노트 중
Q _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꿈’이라는 상황은 사실 타인과 공유하기 힘든 이미지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목에서 지시한 "Man"이라는 어떤 대상이 전체 내용의 1인칭적인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상대적으로 <2001 : A space colony>라는 제목의 작년 개인전에서는 가상의 ‘우주 폭발’, '행성의 충돌' 이후에 분열되어가는 풍경을 상상과 변형을 내세운 내러티브로 소개했었습니다. 그 전시에서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1인칭의 주체 대신, “폭발” 이라는 현상 자체를 대상으로 삼아 구성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것이 1982년 가상의 한 신문기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사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앞에 서 있는 모두를 목도자 혹은 구경꾼의 입장으로 끌어들이는 듯 했습니다. 반면 이번 작업에 등장하는 새와 달은 사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미지일 수 있지만, 마치 1인칭의 어떤 사람이 마주한 대상, 그 사람의 망막에 비친 화면과 같이 표현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느낌이 너무 감상적인 걸까요?
이전의 작업과 이러한 화면 구성의 차이가 생긴 것은 당신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A :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의 작업은 얼마 전, 꿈과 현실이 뒤바뀐 듯한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꿈은 말씀하셨듯이 1인칭이죠. 꿈은 굉장한 비약이잖아요. 순서도 없고 이유도 없는 상황들…
어떤 꿈을 꾼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지만, 왜 그런 꿈들을 꾸게 되었는지 화자의 입장에 몰입하게 됩니다. 꿈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여러 결론들이 동시에 펼쳐지고 이야기의 과정과 결과가 뒤섞여 있습니다. 저는 그 개인적 경험으로 인한 상상의 단편들을 기록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면구성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전체적인 드로잉의 크기가 커진 것인데 큰 화면에 들어가는 하나의 대상이 커지다 보니 예전보다 그림과 마주한다는 느낌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두 작업은 모두 저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의 이면에 대한 환타지를 그린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2001 : A space colony>는 외부에서 끌어온 이야기의 시작으로부터 공상한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려 했고는 이야기를 서술하려 하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대상 하나하나의 상태에 초점을 맞춰 그렸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의 완벽한 묘사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반복”이라는 과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반복은 되풀이하는 과정을 통해서 실수를 줄이고, 완벽함을 획득하는 반면 당신의 “반복”은 완벽함을 부정하고, 미세한 오차와 실수로 발생한 선의 진동들을 이상적인 창작의 리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 : 예전엔 제가 상상했던 이야기를 되도록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그리는 것에 집중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이야기의 흐름보다 대상 자체에 집중하여 큰 획의 그림을 그리다 보니 문득, 완벽하지 않은, 실수라고 생각되었던 선들을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림을 달래듯, 같은 것을 반복하여 그린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미세한 호흡처럼 진동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 선의 진동들은 서로 미세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형태의 관점에서 볼 때는 실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실수들을 감싸고 달래가며 그리는 과정이 드러나면서 쉽게 사라져버리는 순간과 그것에 대한 간절함을 이야기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2012.10.16 - 2012.11.2
박광수
DIALOG
PHOTO
박광수는 물리적인 현실에서 비껴나간 의식의 틈을 공상이라는 불확정적인 형식을 통해 메워가고 있습니다. 드로잉으로 남게 되는 공상의 결과물들은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되기도 하고, 대상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긁적거리는 기록으로의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시작도 끝도 없는 “꿈”이라는 이번 전시의 배경은 타인과 공유하기 힘든 단편적인 조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의 너머에 있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특히 그가 작업의 재료로 선택한 검은 펜은 현실에서 쉽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상념과 대상을 마주하는 찰나를 간절하게 쓰다듬고 있습니다.
□ 작가와의 인터뷰
(Q: 이단지_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A: 박광수_작가)
Q : 당신이 지금까지 실험해오고 있는 작업들의 가운데에는 드로잉이라는 형식의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장난감들을 부수고 조각들을 붙여 만든 입체작업도 있었습니다만(울화_2009), 당신이 주로 쓰고 있는 짧은, 혹은 긴 선들의 모음을 상기해볼 때 그것 역시 단단한 덩어리의 조각이라기 보다는, 거칠고 속도감 있게 붙여나간 입체의 드로잉 같았습니다. 심지어 노트와 드로잉 북에 있는 별표들을 트레이싱지를 대어 “수집”하고 뭉쳐 하나의 행성을 만든
A: 저에게 드로잉은 모르는 길을 설명하기 위해 냅킨 위에 그린 약도와 같아요. 제가 공상한 이야기에는 베어진 공간이라던가 중력을 잃은 사물 등 물리적 질서가 교란되는 순간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오래 전, 미술을 좋아하기 이전부터 틈날 때마다 공상하거나 이야기 만들기를 일삼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재료가 종이와 펜이었고 그것 만으로도 저의 상상계를 전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로잉 할 때 부딪히게 되는 재료의 한계는 오히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기회가 됩니다.
최근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깨어지거나 부서진, 흩어지는 것들뿐 아니라, 그 반대로 뭉쳐지거나 축척 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 양쪽이 반복됨으로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단단하던 것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고, 또 부서지고……
펜은 선과 점만을 그려낼 수 있어요. 공간과 사물들(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과 점들을 차곡차곡 배열해가며 그리게 되죠. 그것은 원자들이 모여 물질을 이루는 것을 연상시켜요. 그런데 그 선과 점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면을 발견하게 되죠. 저에게 이것은 프렉탈 구조와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개인전에서 폭발장면을 그렸을 때 저는 파편 하나하나에 집중 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 하나의 파편이 전체가 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묘사한다면 얻지 못할 이미지들은
완벽히 묘사된 이미지보다 매력적임을 깨닫게 된다.” _박광수의 작가노트 중
Q _
이전의 작업과 이러한 화면 구성의 차이가 생긴 것은 당신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A :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꿈을 꾼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지만, 왜 그런 꿈들을 꾸게 되었는지 화자의 입장에 몰입하게 됩니다. 꿈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여러 결론들이 동시에 펼쳐지고 이야기의 과정과 결과가 뒤섞여 있습니다. 저는 그 개인적 경험으로 인한 상상의 단편들을 기록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면구성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전체적인 드로잉의 크기가 커진 것인데 큰 화면에 들어가는 하나의 대상이 커지다 보니 예전보다 그림과 마주한다는 느낌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두 작업은 모두 저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의 이면에 대한 환타지를 그린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2001 : A space colony>는 외부에서 끌어온 이야기의 시작으로부터 공상한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려 했고
Q: 이번 전시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의 완벽한 묘사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반복”이라는 과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반복은 되풀이하는 과정을 통해서 실수를 줄이고, 완벽함을 획득하는 반면 당신의 “반복”은 완벽함을 부정하고, 미세한 오차와 실수로 발생한 선의 진동들을 이상적인 창작의 리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 : 예전엔 제가 상상했던 이야기를 되도록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그리는 것에 집중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이야기의 흐름보다 대상 자체에 집중하여 큰 획의 그림을 그리다 보니 문득, 완벽하지 않은, 실수라고 생각되었던 선들을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림을 달래듯, 같은 것을 반복하여 그린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미세한 호흡처럼 진동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 선의 진동들은 서로 미세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형태의 관점에서 볼 때는 실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실수들을 감싸고 달래가며 그리는 과정이 드러나면서 쉽게 사라져버리는 순간과 그것에 대한 간절함을 이야기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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