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인미공뉴스][전시알림] 〈뿔의 자리/Scatter Gather〉
- 구분 아르코미술관
- 조회수 8029
- 작성일 2016.05.26
“이것은 뿔에 대한 전시이다.
이것은 뿔에 대한 전시가 아니다.
우리는 '형태'라는 단어를 '뿔'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기획은 형태가 도출되는 ‘선택’들에 대한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 )의 선택’들을 보여준다.
이 선택들을 가시화하는 건 가능한가?”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 기획 노트 중-
≪뿔의 자리≫는 엇갈리는 대화의 기록이다. ≪뿔의 자리≫는 같은 고민을 나누는 4명의 작가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에 의해 기획되었다. 이들의 공유된 고민은 각자 미묘한 차이를 지닌 채 만나고 어긋남을 반복하며 이어지고, 그것을 이해하는 협력기획자 장혜정은 이 사이에 슬쩍 끼어든다. 이들은 엇갈림 속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교차점과 더 멀리 뻗어 나가는 대화를 통해 ‘뿔’을 찾아가려고 한다.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은 어떤 것을 시각화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의 문제를 공유한다. 시각화된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고민은 “작가는 어떻게 ‘형(태)’을 찾아가는 것일까?”하는 질문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해보면 “작가는 어떻게 ‘선택’을 하는 것일까?”라고도 할 수 있다.
형(태)에 대한 고민은 예술의 층위 저변에 항상 있는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질문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학자와 작가들에 의해 논의되어오고 있는 것, 그래서 이미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주제이다. 너무나 중요하지만 진부할 수도 있는 이 주제를 두고 새로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이들은 형(태)이라는 단어를 ‘뿔’이라고 임시로 부르기로 했다.
‘뿔’은 형(태)이라는 단어가 미술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견고한 존재성, 고정적이지만 불명확한 의미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선택된 단어이다.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은 ‘뿔’이 4명 모두의 작업 안에 각기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동안 형(태)을 뿔로 치환하여 생각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대화가 그들 안에서만 맴돌지 않게 하려고 시각예술작가, 전시기획자, 공학자, 연극연출가, 안무비평가 등 다양한 영역에 있는 10명의 필자에게 ‘각자의 영역에서 형(태)을 결정한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글을 받았고, 기획자 장혜정에게 ≪뿔의 자리≫를 재해석한 또 다른 전시를 의뢰했다.
뿔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 작가들의 고단함을 이해하는 장혜정은 그 과정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이 대화에 참여했다. 이 전시에 외부의 시선을 유지한 채 내부로 들어온 장혜정은 4명의 작가이자 기획자인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의 진지한 고민에 쉼표를 찍고, 틈을 벌리려는 의도로 공간을 구성했다.
김한나 <점점 얇아져 날카로워지는,>, 시멘트, 장판, 무늬 시트지, 테이프, 행거, 가변크기, 2016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은 기존의 작업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신작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각자에게 유효한 방식으로 뿔을 찾아가는 서로의 다른 접근과 해석을 시각화한다. 김한나의 조각 설치 작업 <점점 얇아져 날카로워지는,>은 한계 없는 형(태)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바닥은 벽이 될 수도 벽은 천장이 될 수도 천장은 바닥이 될 수 있다.” 라는 말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김한나는 바닥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벽과 천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형(태)을 통해 바라보려 한다.
노은주, 전현선 <하나의 기록들>, 캔버스에 아크릴, 390.9 x 193.9cm, 2016_부분사진
노은주와 전현선은 함께 그림을 그렸다. 이 둘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두고 진행한 대화를 언어와 그림으로 이어나갔다. <하나의 기록들>은 두 사람이 한 캔버스를 공유하며 상응하고, <두 개의 기록>은 공통의 소재를 공유하고 각자의 고유한 영역에서 자신만의 조형성을 부여한다.
윤지영 <저 기 저 위 에 선>, 싱글채널비디오, 2016
윤지영은 영상 작업 <저 기 저 위 에 선>을 통해 자신의 머리 속에 맺혀있는 어떠한 상(像)을 재현이 아닌, 기호나 도형과 같은 또 다른 형(태)으로 호환해내는 과정을 탐구한다.
<끝 에 남 을 것>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거치는 모든 과정을 바라보는 회의적 시선을 담은 작업이지만 동시에 그에게 ‘버려진 것’이기도 하다. 이 영상은 윤지영이 김한나, 노은주, 전현선에게 요청하여 받은 ‘그들이 형(태)을 찾아가는 선택의 여정에서 버려진 것들’과 함께 어두운 방 안에 희미하게 보여지며, 선택과 탈락이라는 공통의 고민을 시각화한다.
이들의 대화는 다양한 매체와 과정, 사람들을 통해서 형(태)에서 시작되어 하나의 뿔로 만났다가 수많은 선택을 거쳐 각자의 뿔로 흩어진다. 대화 속에서 스치듯 만나는 교차점들은 고민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질문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뿔의 자리≫는 뿔에 대한 전시이지만, 동시에 뿔에 대한 전시가 아니다.
장혜정_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