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Review - 영 화 |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을 위하여 이효인 영화평론가 소동과 거품이었던 애니메이션 정책 요 몇
년 사이에 불어닥친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문광부를 비롯한 몇 개 정부 기관이 애니메이션 및 디지틀 산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엇비슷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만
하더라도 다섯 개가 넘게 개최되었다. 심지어 어떤 해에는 세 개가 동시에
열려서 애니메이션 작업자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을 몰고 온
가장 큰 원인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문화 정책 수립자들의 일회용 시책이었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일회용 시책을 촉발시킨 것은 「쥬라기 공원」이었다.
누군가가 「쥬라기 공원」 한 편이 벌어들인 돈을 현대 자동차의 수출
대수와 비교 한 것이 화근이 되었고, 이는 디지틀 영상 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한국 경제는 국가적
경제 혼란을 눈 앞에 두고도 외국에서 빌어온 돈으로 별 일없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국민들의 정치적·사회적 관심은 이른바 문화로 옮겨갔던
시절이었다. 또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전폭적으로 소개하였고, 젊은 관객들은 이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단지 소동이었고 거품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창의력과 자본이 요구되는 애니메이션 사업 한국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국내 애니메이션 중 그나마 규모가 있는 것이라고는
「아기 공룡 둘리」와 「두치와 뿌꾸」 정도 뿐이다. 또 「철인 사천왕」,
「에반게리온」, 「블루 시걸」 등이 국내 극장에서 개봉되고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며, 「누들 누드」 등이 비디오 시장에서 인기를 누렸다고는
하지만 그 성과는 극히 미약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김청기 감독이 몇
십년 전부터 몇 년에 한번씩 애니메이션 극장용 영화를 만들어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방학중에 한국 극장에 잠깐 반짝였던 비주류 시장의 행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심형래 감독이 만든 「용가리」 역시 돈은 벌었는지
모르지만 개봉된 후부터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50여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단순한 기 애니메이션 산업은 애니메이터들의 창의력과 그것이 표현가능하도록 만드는 제작 시스템 즉 자본이라는 두 바퀴가 없고는 결코 굴러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을 양성하는 지원에 보다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창의력이 왕성하고 이것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보인다면 자본은 언제든지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는 몇 년 전부터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에 애정어린 시선과 관심을 보내야 한다.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에 애정어린 관심을...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도 독립 애니메이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누구에게 특별히 배운 것 없이, 영상이 인간의 착한 마음을 고양하고,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하면서, 즐거움까지 줄 수 있다는 신념 속에서 출발하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번에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천 여명의 지원작들을 뚫고 본선까지 오른 이성강 감독을 비롯하여,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정동희, 나기용 감독 그리고 전승일 감독 등이 그 대표 주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 한 귀퉁이에서 컴퓨터 두어대로 미래가 불투명한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물론 이들이 만든 작품 중에는 실습 작품에 그치는 것도 있지만, 표현력과 창의성을 보장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만 구비된다면 상당히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더 많다.
독립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 달린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 이들을 보노라면 한국의 80년대 영화계를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악몽의 70년대 그늘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등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등장하였다. 그들에게도 80년대 신인 감독들의 징후가 감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후 90년대가 들어서자 80년대의 그 신인들은 90년대를 주도하는 감독들로 변해 있었고, 그들이 한국 영화를 전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영화의 역량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어떤 혜택도 받지 못 하고 있다. 가끔 제작 지원 응모에서 당선되어 몇 백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정부의 애니메이션 지원정책에서는 소외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에 거의 유일한 창의성있는 집단으로 성장할 그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장래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지원을 받고서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패조차 밑거름이 되어 차세대들의 애니메이션 작업에 귀감이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귀중한 작업들을 마치 개인 화실의 취미 작업처럼 생각해오지 않았나를 반성해야 한다. 뒤늦었지만 독립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 한국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미래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