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대중문화

 

문화의 적극적 수용자 혹은 탐닉적 문화중독자, 매니아

 

김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대중문화 전반에서 매니아 집단이 매우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고 또 이들의 발언권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우리말로 한다면 무슨 무슨 狂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매니아는 영화, 음악, 만화, 스포츠 등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매니아들은 우선 특정한 문화 텍스트(그것이 영화일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또 특정한 스타일 수도 있다)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또 상당히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準전문가 수준의 수용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나름의 비평적 안목을 형성하며 문화시장에서 독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하고 또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몇 년 전 룰라, 김민종 등 일부 가수들의 표절시비도 상당한 정보와 지식을 가진 매니아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MBC 드라마 '청춘'과 SBS 드라마 '토마토'가 이들에 의해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이제 이들은 대중문화 전반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 것이다.

 

 매니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신들의 취향과 선택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고 싶어하는 데 있다. 그들은 일반적인 수용자 대중이 접할 수 없는 문화를 소유하고 접촉하며 수용한다는 데서 강한 만족감을 얻는다. 일본 문화가 전면 금지되어 있던 상황에서 일본 가요나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매니아 집단이 광범위하게 생겨난 것이 좋은 예이다. 일본 문화가 아니더라도 매니아 집단의 취향은 좀 더 깊은 것, 구석진 것, 주변적인 것, 남들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정한 문화 텍스트에 대해 광적인 애정과 집착을 보이고 그래서 그만큼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매니아들은 때로 매우 배타적이며 독선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애정과 정보를 과신하며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나만 좋으면 그 뿐'이라는 것이 많은 매니아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고방식이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취향을 추구하는 매니아들은 때로 매우 지엽적이고 시시콜콜한 정보들에 집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재즈 연주자들의 이름과 앨범 제목과 무슨 무슨 구석진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며 그것이 자신의 매니아적 취향을 대변하는 것인 양 우쭐해 한다거나 비틀즈 앨범에 등장하는 컷 하나, 무슨 영화에 잠깐 카메오로 등장하는 배우의 이름, 무슨 애니메이션의 몇 회째 방영분에 등장하는 어떤 등장인물의 직업, 이런 류의 단편적 지식과 정보들을 경쟁적으로 모으고 과시한다. 말하자면 매니아는 대단히 적극적인 문화 수용자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탐닉적인 문화 중독자, 그리고 현학적이고 자기과시적인 속물주의 등이 혼합된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매니아의 등장은 일단 우리 대중문화가 그만큼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대중문화의 환경이 과거에 비해 상당 정도 민주화되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정치 권력의 간섭이 극심했던 유신시대나 5공시대에는 매니아가 많이 나올 수 없었다. 당시에도 매니아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들의 문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매니아의 등장은 대중문화에 대한 정치권력의 입김이 줄어들고 그만큼 대중문화의 영역이 다양화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매니아는 대중문화라는 영역에서 생산자측이 일방적인 권력을 누리던 상황에서 수용자 대중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으로 변화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대중이 일방적으로 수동적인 소비자의 처지에만 머물지 않고 나름대로의 주체적인 의지와 시각으로 문화를 선택하고 수용하는 주체로 변화하면서 그 가운데 좀 더 적극적인 수용주체로서 매니아집단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매니아는 일단 문화적 민주화의 산물이며 또 주체적 대중 집단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사실 누구든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처지에서 좀 더 문화에 대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고 또 나름의 안목으로 문화를 분류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대중이 그런 정도의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앞에서 예로 든 경우처럼 대중문화에 일상화되다시피 한 표절의 관행이 매니아 집단의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로 인해 조금이나마 공개적인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은 매니아 집단이 가진 긍정적 영향력을 말해준다. 매니아는 우리 대중문화 시장 전반의 흐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매니아 집단이 가진 폐쇄성과 속물 취향은 때로 그런 긍정적 가능성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 남다른 취향과 지식을 자랑삼으면서 지극히 단편적인 지식을 과시하는데 머물거나 폐쇄적으로 자기 취향에만 탐닉하면서 남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물론 매우 유익하고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 앎이란 것의 진정한 의미는 그렇게 단편적인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다. 어떤 문화의 정신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의 사회적 맥락과 의의를 통찰하고 그것이 나 자신의 삶과의 연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올바른 문화의 지식이며 또 안목일 것이다. 결국 매니아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모순된 속성, 즉 적극적 수용자의 속성과 탐닉적 문화 중독자의 속성 가운데 전자의 속성을 극대화하고 후자의 속성을 극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매니아적 자세이며 문화주체로서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런 매니아 집단이 다양하게 포진하고 문화에 대한 감시와 적극적 비판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다면 우리 대중문화 전반의 창조적이고 건강한 활기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