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리뷰-대중문화

 

O양 비디오 사건이 남긴 것

 

김창남  성공회대학교/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O양 비디오 사건」은 우리 사회의 문화 상황과 관련해서 대단히 의미있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케 해 주었다. 첫째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이중적 성윤리가 모두의 의식을 얼마나 병들게 했는가 하는 점이다. O양의 비디오는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건 명백히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비난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누구도 남의 사생활을 은밀히 들여다보거나 심지어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 권리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돈 받고 팔았고 만천하에  공개했으며 구경거리 삼아 낄낄거리며 보았다. 그런 행위를 통해 당사자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 파괴될 것인지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이 말이다. 비슷한 경우를 당했던 미국의 여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TV에 나가 당당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은 채 연예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O양이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여기는 한국이니까. 한국에서 혼전섹스는 죄악이고 더욱이 그것이 공개되었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악이고 스캔들이니까. 그것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적인 성윤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 공적 윤리관의 한 꺼풀 아래에는 추악하기 짝이 없는 훔쳐보기의 가학적 욕망이 숨어 있고 그 욕망을 거리낌없이 상품화하는 파렴치한 상업주의의 술수가 있다. 그 비디오를 보기 위해 부하 직원에게 상납을 지시하고 인터넷을 뒤지며 벌건 핏발을 세운 사람들이나 남의 사생활을 은밀히 팔고 인터넷에 올린 자들이나 선정적 화제 거리로 분칠한 황색 언론은 모두가 가학적 훔쳐보기와 파렴치한 상업주의의 공범자들이다.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성윤리 반영
특히 내가 분노를 느끼는 것은 스포츠 신문을 필두로 한 황색언론들의 태도이다. 처음 이 사건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도 스포츠 신문의 보도를 통해서였고 이후 스포츠지와 여성지의 경쟁적 보도 속에서 갖가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당사자인 O양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도 스포츠 신문이다. 상업적 목적을 위해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고 천박한 호기심에 영합하면서 과장.왜곡을 일삼는 것이야 스포츠 신문 같은 황색언론의 전형적인 수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 섹스 스캔들이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심각한 인권 유린에 해당한다. 물론 스포츠 신문들이 당사자인 O양에 대해 일부 동정적인 논조를 편 것도 사실이지만 공적 매체가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구경거리로 삼음으로써 대중적 호기심을 확대 재생산한 것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스포츠 신문이 가진 영향력은 예컨대 미국의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들이 가진 영향력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그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이들 신문이 명백한 황색 대중지임에도 이른바 권위자들의 자매지로 발간되기 때문에 과도한 공신력을 처음부터 확보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대개의 일간지들이 보수적 성 윤리관을 앞장서서 설파하면서 이면에서는 스포츠지를 통해 선정적인 방식으로 성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성 윤리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성 윤리를 반영
O양 사건이 확인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기존의 문화 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O양의 비디오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청계천 불법 복제 시장의 예측은 인터넷이라는 복병을 만나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을 통해 비디오 내용이 공개되면서 삽시간에 확산되었고 결과적으로 암시장의 비디오 판매는 예상을 훨씬 밑돌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앞으로 패키지 형태로 유통되는 문화 상품의 채널이 점차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유통 방식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터넷이 가진 문화적 위력을 실감하게 해 준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문화 상품의 유통 방식의 문제 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통제의 방식, 그리고 가치 기준 전체에 대한 심각한 재고를 요구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넷은 송신자와 수신자의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소통의 네트워크이다. 흔히 인터넷의 음란물 유통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를 기술적으로 완벽히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래 전부터 이른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같은 단체들이 만들어져 인터넷의 음란물 유통에 대한 통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 나라가 인터넷 음란 사이트 접속 건수에서 세계 6위라는 통계가 발표된 적도 있다. 컴퓨터 보급율과 인터넷 사용율을 감안하면 사실상 세계 1위인 셈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성윤리가 지배하는 이면에서 음란물에 대한 욕구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이 역설이야말로 한국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O양 사건은 바로 그런 역설이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O양 사건이 던져 준 또 하나의 논점은 사람들 사이에 이미지에 대한 욕구가 보편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은 아주 쉽게 현실을 포착하고 이미지로 재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가정용 캠코더와 컴퓨터, 부속 장비 몇 가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제작하고 복제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 기술을 이용해 간직하고 싶은 이미지를 영상 소프트웨어의 형식으로 보존하고자 한다. 섹스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디지털 코드로 변환되면서 삽시간에 확산되고 변질되고 조작된다. 그렇게 해서 애초에 사람들이 가둬 두고자 했던 현실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미지가 거꾸로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O양 사건은 바로 그 하나의 사례이다. 그 확대된 이미지의 욕망 앞에서, 그 가공할 기술의 놀라운 확대 속도 앞에서,'포르노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외치는 도덕주의의 근엄한 목소리는 시대착오적 단말마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