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동방의 등불은 문화의 등불이어야

문화적 월드컵을 위한 한국의 이미지 제고

 

                               유한태 숙명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 교수                    

                                                                                                  

 

 냉전이후의 지구는 말 그대로 한 동네가 되었다고 할 만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 이데올로기라는 인류의 편협한 철학적인 산물도 시대의 조류에, 새로운 지구역사의 흐름에는 무릎을 꿇고 인류가 만든 역사족적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지금, 지구는, 지구촌은 하나의 거대한 단일체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위해 때로는 유기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는것 처럼 보이며 그 구심점의 다핵적이나마 표면상의 화합과 합일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지구차원의 많은 행사들을 준비하고, 또한 곳곳에서 준비되어진 행사들을 치르고 있다.합리적인 사고와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이전 시대를 양분화 했던 패권 제국들의 절대권력도 이제는 한 개인의 이상마저도 부수지 못 할 정도의 개인 제일주의로 현대사회는 점철 되어지고 있다. 반세기전의 민족대 민족, 국가대 국가의 참담하리 만큼의 대학살과 반목도 20세기 개인주의 앞에는 하나의 교훈으로도 자리잡지 못한채 대다수의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 이라고 하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이 오늘 오늘을 경제의 노예가 되어 준비없는 내일만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수천년, 수만년, 아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간들이 흘러 하나의 개체로, 인류역사의 유기적인 점진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현실선상에 서있음이 우연이 아님에도 자기의 살고 있는 한세대의 문화나 기타 환경에 의해 인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서는 사고하지 못하고 단기(短氣)로 자기를 나타내며, 환경을 만들고 있고 성급히 또한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 듯 하다.

 

 

 

철학과 사상, 중심정신이 없는 부화뇌동의 심리상태

 

첨예한 개인주의와 더불어 인류는 공동체 화합 이라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면들을 과거 계속해서 반복해 왔고, 결국은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개개적인 대답을 가진체 특정집단과 국가의 이익만을 위해 분주히 살아왔다. 종국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내면의 인식체계에 자리잡고 있다면 오히려 외식(外飾)이 아닌 개체로서의 가치를 조용하게 확실히 드러내 놓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경천동지(驚天動地)할 어떠한 큰 일이 우리 주변에는 늘상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나마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진행 되어지고 있는 인류의 역사에 그러한  깜짝 해프닝 들이 자주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나, 세기말적인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인류는 그러한 일들을 서슴치 않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한 심리를 척결(剔抉)해 보면 단체나 자기를 과하게 선전(Propaganda)하려고 하는 그런 속성이 내재해 있기 나름이다.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환경이 무르익어 그러한 일들이 시대적인 사명으로 자각이 될 때 행해도 무관할 것인데 성급하기만한 인류는 호들갑스러운 잔치들을 좋아한다. 영어표현에  코우타우(Kotow)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고두백배(叩頭百拜) 라는 중국말이 영어가 된 말인데 공연히 남 앞에 가서 좋은 척하고 아침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세태가 세태인지라, 뭐가 되었건 자기를 선전하고 남에게 좋은 인상을 받기 위한 행위라면 형편 여하간에 행하는 것이 사람사는 사회의 관례가 되어 버렸다. 철학과 사상, 대대를 이을 만한 순리에 대한 중심정신이 없는 자기 위시의 일체의 행위는 부화뇌동(附和雷動)의 심리상태일 것이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철학과 사상이 존속될 때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 하게 환란과 어려움에 민족의 존폐위기의 역사적 사실이 많았던 우리의 처지와 비슷한 이스라엘 이라고 하는 작은 나라이며, 유대주의[Judaism]로 잘 알려진 이 나라는 세계 어느 곳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이 없다. 유대주의, 즉 헤브라이즘이라는 독특한 민족적 개성과 자부심 때문에 과거 이 나라는 유대인 지상축출이라는 나치즘에 의해 엄청난 시련과 환란을 겪기도 했으나 그들의 내면에는 늘 자기들만의 고유한 정신이 있었고 사상이 있었다. 사상이나 정신이 제대로 교육되고 심사에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것은 혈연보다도 더 강한 유대감과 지속성을 가지게 한다는 것을 이스라엘 국민들은 여러번 역사상에서 보여 주었다. 어느정도 사상이나 정신, 또한 독특한 자생력과 독보적인 처세로 인해 경계하고 종교적으로 대적하는 나라가 많기는 하나, 대다수의 국가들은 그들만의 유대주의, 헤브라이즘에 감탄하고 부러워 하는 것이 사실이다.탈 냉전, 탈 이데올로기등 수많은 사회환경, 시대가 바뀐다해도 고유한 자기들만의 철학과 사상이 면면히 존속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그러할 때 세파의 근묵자흑(近墨者黑)이 아닌 청출어람(靑出於籃)이며 오히려 하나의 뚜렷한 개성으로, 변함없는 개성이 존중으로, 존중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중심에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근본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역사 시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그야말로 대중의 수난시대의 연속 이였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 나라인가. 나라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나라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상은 무엇이고 사상의 배경이 되는 철학은 무엇이며, 범세계적으로 철리(哲理)를 논하여 사상적으로 국민의 중심에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근본은 무엇인가 살펴볼 때 그것에 대한 대답은 극히 모호하다 할 수 있겠다. 단편적인 사상가, 계몽가, 사회 지도자등은 있었으나 그것이 연대하여 하나의 핵으로, 중심으로는 작용하지 못했으며 그러한 이유에는 잘못된 절대권력에 대한 위정자들의 책임이 크다. 한 나라 한 체제안에서도 편협적인 사고로 인해 역사상 대다수의 백성들은 무식, 무학, 무지의 범인(凡人)이 되어버렸으며 그러한 대물림의 연속으로 철학이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도무지 그 정체성의 기초를 축조할래야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절대 권력의 부정적인 면만을 확장시킨 현상이 두드러졌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사상이 있으되 맥(脈)이 끊겼고 정통성이 있으되 기(氣)가 막혔다는 것이다. 더욱이 근현대적인 수난의 외압과 생활의 궁핍함으로 한국의 사회환경 국가환경은 원칙을 잃어버린 혼돈과 착각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양태로 발전되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이미 끊어진 맥과 기를 원래 그대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나, 범 국가적인 차원에의 조직적인 교육과 배려, 본질과 원칙을 되찾으려고 하는 권력 핵심부로 부터의 각성과 자각이 있다면 우리의 정체성 고유의 색깔, 한국만의 개성은 과도기를 거쳐 차세대에는 세계속의 사상과 철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며, 이제는 즉흥적인 일차원적의 사고를 지양하고 역사를 알되 그것에서 뿌리와 줄기와 열매를 확인하고 자신을 알고 국가를 알며 인류를 보아야 할 것이다. 원칙에 충실하되 거기에 여유를 더할 수 있는 나라와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개인 모두 자신의 처한 한계와 자신을 먼저 알고 시작 하는데서 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만들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이라는 말이 있으나, 과연 지금 가장  한국적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 자체가 본래의 한국인(大韓人), 한국적이지 못한데 그 외의 문화등 사회전반에 걸친 제 요소들은 어떠하겠는가. 경제상황도 궁핍함의 정도는 넘었고 이제는 자신을, 국가를 여유를 가지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이다. 경제약소국을 면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던 시대는 자났다. 무식, 무학, 무지의 악순환적 생활리듬도 어떤 경로나 방식으로든 지식정보전달의 체계가 발달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에 대해서도 사회국가에 대해서도 자각할 때도 되었다. 지금은 한국인의 한국다운 위상을 지구의 많은 이웃에게 뚜렷이 보여 주기는 미약할 지라도 그것을 왜곡, 위장하여 가식적으로 보여줄 필요도 없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백년대계로 준비하여 하나 하나 만들면 된다. 그것은 조작도 아니고 날조도 아니며 역사의 한 단면을 동시대의 선각자들이 바른 원칙하에 축성하여 후대에 남길만 하면 남기면 되는 것이다.굴곡진 역사의 맥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현명하게 찾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제2의 건국 이라는 정부차원의 운동도 이같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제부터 미래의 한국을 위해 우리가 우리 시대에 가장 한국적인것을 현실속에서 만들면 되는 것이다. 21세기 이후의 차세대를 위해 더 나아가 지구 환경을 위해 이제 겸허히 우리를 바라 보아야 할 대인 것 같다. 경제도 원점, 생활도 원점, 국민의식도 원점으로 부터 다시 시작하여 21세기의 주체성 강한  동방의 등불 이 되어야 할 것이다.인도의 간디가 말한  동방의 등불 이 과연 종래에 세계역사에서 보았던 힘의 논리에 기초한 등불일 것인가. 간디가 말한  등불 은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인 힘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문화적 등불을 지피워야 한다는 한국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 굳건히 자리잡아야 지구촌(Global Village)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文化의 주체성을, 더 나가서는 참조성을 북돋우는 원천이 한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한국인의 염원과 이상을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한국적 이미지의 창출잡업 및 이것의 확산과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왜냐하면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곧 넓은 의미에서  문화 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국적문화이미지의 창출


이를 위해 필자는 새로운 한국적 문화의 창조를 불가시적(不可視的) 문화와 가시적(可視的) 문화의 두가지 범주로 묶어 생각해야 된다고 본다.우선, 불가시적 측면의 한국적 독특한 문화는 한국의 전통적 충효(忠孝)사상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며 그 정신적 가치는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가족공동체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동남아권에서도 한국의 경노(敬老)사상은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할 수 위라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둘째로, 가시적 문화로서의 한국적 문화의 창출이라는 문제는 더 많은 노력을 한국인에게 요구할 것이다.지금까지 한국인이 인식하고 있던 김치, 태권도, 남대문, 금속활자, 한글 등등 ……의 가시적 문화의 창조물들은 세계로의 확산과정에서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한계성을 보여 준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화는 무엇이었나를 자각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남이 보는 나 가,  외국인이 보는 한국 의 위상이 곧 한국의 문화이미지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이미지는 대내용(對內用)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지피지기(知彼知己)적 관점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국의 문화이미지를 기초부터 장기적으로 다져 나가야 한다는 점이 명백하다.나를 비춰보는 나의 문화거울이 아니라 남이 자기의 거울을 통해 비춰보는 나의 이미지의 참모습이 바로 우리자신의 문화이미지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여 한국의 독특한 문화이미지의 창조와 확산작업에 한국인 모두가 동참하는 강력한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