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21세기는 경제역량과 문화역량으로 측정될 것....

 

 -남인기(국립극장극장장)

 

 

앞으로 21세기의 국력은  그 나라가 가지는  경제역량과 문화역량으로 측정될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한나라의 문화역량을 그 나라 국민의 창조적 삶의 전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속에는 그 국민의 역사와  전통, 민족정신과 도덕성,  특유한 생활방식과 문화유산 등이 포괄될 것이며 그 나라국민의 호흡속에  남아있는 잠재적인 가치와  가시적으로 축적된 문화공간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와 전통을  통하여 전승되어 오는  문화유산이 많고 현재까지도 그 文化의 정체성을 이어오면서 새로운 창조로  이어가는 민족일수록  문화선진국을 창출해   가는 역량을 발휘하여 21세기의 문화의 시대도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은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화예술공간의 현상 파악만으로  한나라의 문화역량을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문화공간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나 문화공간의 창출에  무관심한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발전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라 할 것이다.  실례로 보아서도 문화대국이라고 하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영국, 독일, 이태리, 일본 등의  소위 문화선진국들은 풍부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히 보존 관리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새로운 문화예술 창조에  심혈을 기울리고 있으며 나아가  문화를 산업화하고 관광자원화하여  막대한 국부를 벌어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예술공간으로는 박물관, 미술관, 화랑 같은  전시시설, 회관, 문화의 집, 청소년시설, 도서관 같은 문화복지시설을 포함해서  영화관과 음악, 무용, 연극을  행하는 협의의 공연장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협의의 무대공연장으로  좁게 국한해서 우리나라 공연장 현상을 세계의 공연장 현상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97년말 통계에 의하면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극장 같은 종합공연장의 수는 전국적으로 47개, 문예진흥원의 문예회관이나 호암아트홀같은 중극장 규모의 일반공연장은  112개, 마로니에 극장이나 뚜레박 같은 소공연장 수는 157개로 전국 316개소의 공연장이  갖추어져 있다.  문화의 사회간접자본 시설로서의  우리나라 공연장은 정부의 문화기반시설 확충정책에 따라 이제는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까지 올라와 있다.  특히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의 시설규모는 세계적  수준이며 광주문화회관을  비롯하여 전주,  울산, 구미, 창원같은  지방자치단체의 공연장도  규모면에서 국립극장 수준이상으로 시설되어 있어서 앞으로 좀더 확충되면 어느  선진국에도 손색이 없는 하드웨어로서의 문화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로서의 공연장 운영이나 좋은 프로그램의  제작 또는 실제 공연은 지나치게 저조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며 음향, 조명, 의상을 비롯한 디자인의 빈약과 관계 전문가의  부족으로 인한 시설운영의  낙후성은 앞으로 커다란  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운영상의 미숙은 지방자치단체의  문예회관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여 공연장의 민간위탁운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설립한 공공공연장을  국가민족에 대한  책무의식이 검증되지 않는 행정관리에는 무뇌한인 일반인에게 위탁운영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외국의 공공공연장의 운영형태에 대한  관찰과 국가 전체적인 문화정책의  차원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쳐 채택되어져야 할 것이다.

 

  문화대국으로 불리는 프랑스는  문화대국답게 국립도서관, 국립박물관, 국립미술관 등의 국립문화시설과 퐁피두문화회관 등 초대형의 시 또는 주립의  문화시설과 아울러 각 카운티  또는 마을마다 회관, 문화의 집 등 거의  완벽할 만큼 다양한 문화복직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립공연장 시설의 경우에서도  파리에 5개의  국립극장을 비롯하여 전국 주요지역에 43개 국립지역공연센터와 62개의  국립무대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모든 공연장 운영은 그 극장의 성격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예산과 건물관리는 국가공무원이 직접  행하며 운영재원은 국가와 지방단체의  지원과 자체조직의 수익  및 민간으로부터의 기부금 등으로 충당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케네디센터는 문화예술센터설치에관한특별법에 의해 설치되어  있는 바  45인의 이사회  구성원중에서 30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6인은 상·하양원의  의원중에서 지명되어 그 지위는 정부 각료급으로 대우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에도 볼쇼이 발레단원 250명이  있는 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 발레 아카데미 극장이 전액  국고로 운영되고 키로프발레단  70명과 오페라, 합창단, 오케스트라단과  발레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국립오페라 발레극장도 극장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립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주(시)립의  도이치오페라극장, 독이치 국립극장, 서유럽극장  등이 모두  국립성격의 극장으로서  독일의 공연예술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에도 우리와 같이  정부기구속에 북경인민극장, 국제극원 등의 대극장이 있다.  사회주의 사상의 대국민  선전수단으로 국립극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김정일이가 직접 지도하는 300명 규모의 만수대예술단을 가진 만수대예술극장(4,000석), 동평양대극장(3,500석)을 비롯하여  국립민족예술단(평양예술단 300명)을 가진 봉화예술극장(2,000석),  피바다 가극단(380명  단원)을 가진 평양대극장(2,190석)과 국립연극극장 등을 운영하면서 주요  레파토리로는  『꽃파는  처녀』,   『조국의 진달래』,   『피바다』, 『성황당』, 『춘향전』과 같은 혁명이념을 담은 작품을 대대적으로 국민을 동원하여 공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72년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당시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했던  고위인사의 북한   국립극장 실상보고에 자극받은 박정희대통령이 다가올 남북교류에  대비하여 극장다운  국립극장이 있어야겠다는 급박한  생각에 지금의 남산자락에  그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정도의 현국립극장을 설립하였고 이어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등 세계적인 공연장을 갖추었다.  그러나 국립극장의 성격을 가진 극장은  국립중앙극장 오직 한  개뿐이며 현재  극단, 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 오페라단, 발레단,  합창단 등의 7개 전속예술단체 325명으로 구성되어 연중 국책적인  민족전통예술작품을 창작하여 국립무대에 올리고 있다.   따라서 국립중앙극장의 성격과  기능은 민족공연예술의  무대화를 통한 국민문화의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  전승하는데 일차적인 존재목적이 있다.  민족문화의  고유성,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창작문화를 발전해 나가는 정책추구는 프랑스, 영국, 이태리, 일본 등 모두 한결같은 입장이다.  이태리에는 전국  주요도시마다 2 ~ 3백년전부터 설립운영해 오는  국립적 성격의  오페라극장이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르네상스시대부터 창작되어온  오페라를 연중 계속 상영하고 있다.  프랑스,  러시아에서는 발레가, 영국에서도 세익스피어 연극이  대표적인 국가공연 작품으로  국민의 가슴에 감동을 제공하고 애국애족의 사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국립극장은 한  나라 문화전통의 상징이고  민족의 애환이 담겨있는 역사를 재현하는 곳이며 대외적으로는 그 나라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로 간주되고 있다.  국립극장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문화관광의 대상이  되며 국가의 자랑꺼리가  되고 자부심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앞으로  경제적으로 국경이   없어져가고 있는 치열한 국제경쟁의 시대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정책의  방향이 명확해야 하고  일관성과 통일성이 있어야  하며 국립극장을   단순한 수지타산의 공연장으로 볼것이 아니라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확립하여 그것을 국민에게 교육하며 국민의 문화복지를 증진시키는 국민정신의  도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정부가 국립극장을 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워 민간위탁운영 또는 책임경영기관화(Agency) 하려는 의도는 국립극장이 민족문화창달의  기수가 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역할을 감지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