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단체탐방

오붓하고 아름다운 문화 구심지로 만들어 가기를 꿈꾼다.

「토지문화관」을 찾아서

정현기 본지 편집자문위원.연세대 교수

 

「토지문화관」은 어떤 곳인가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이 말은 土地 의 작가 박경리(朴景利)선생이 오래 전 '원주통신'에서 쓴 말이다. 꿈 꾸는 법을 잃어버린 시대에 '꿈 꾸는 일'을 격려하는 일은 신선하다. 2-3년 전부터 그가 꿈 꾸던 일의 하나가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 완성되었다. 토지문화관 . 이 기관은 이미 1997년도에 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2년여에 걸친 공기 끝에 대지 3,000여평에 연건평 800평에 달하는 아담한 건물로 완공되었다. 공익기관인 '토지공사'가 총공사비를 대고 '현대건설'에서 시공을 맡아 완공, 올 봄 5월 초 개관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외각, 흥업면 회촌리에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었다. '이곳은 앞으로 큰 일을 할 집이 들어설 곳이다.' 박경리 선생이 터를 잡고 '토지공사'가 적지 않은 자금을 들여 지은 이 토지문화관 이 개관을 앞두고 이 마을 사람들이 그 곳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17년여간 박경리 선생이 살아온 원주시 단구동 자택이 택지개발로 편입되자 그 보상금으로 받은 액수 전부를 박경리 선생은 이 문화관 건립의 종자돈으로 내놓았다.토지문화관 뒤에는 오봉산이 우람하게 다섯 봉우리를 거느리고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토지문화관 과 관련해서 박경리 선생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첫째는 이 문화관의 명칭 앞에 붙은 '토지'는 자신의 작품 [土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다. 이 문화관 명칭은 '토지공사' 측의 문화감각과 직접관련이 더 있다면 있지 자신의 작품 이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내용이다. 둘째, 이 문화관은 분명 '문화관(文化館)'이지 '문학관(文學館)'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다. 작가 박경리 선생이 운영하는 문학관이 아니라 한국의 전 지성인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운영유지할 폭넓은 문화 창달의 장소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명실 공히 문화인 모두의 공익장소로 커지기를 바라는 선생의 충심어린 뜻이 들어 있는 주장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문화운동의 본격적 구심역할


이 문화관은 앞으로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이 나라 문화창달은 물론이고, 전통계승의 문제, 환경보전에 관한 의견총합과 철학적 기반마련, 생명중시 사상 고취, 문학·예술의 창조적 발판 구성 등 문화운동의 본격적인 구심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문화관이 가장 크게 주력하고자 하는 부분은 토론문화의 심화발전을 위한 장소로서 좋은 이름 쌓기이다. 이 문화관은 전국에 포진해있는 젊고 유능한 인문학 및 기초학문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각종 심포지엄을 통해 중대한 결론을 도출하는 성과를 쌓고자 한다. 미리 가려 뽑은 주제를 놓고 토론자들은 여기 모여 지정발표를 한 다음 밤낮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가차없는 토론을 거쳐 지정 발표내용을 토론자들의 의견이 수정 보완되는 성과로 결실하도록 돕는 일을 「토지문화관」은 수행한다. 디귿자 형으로 설계되어 중정(中庭) 앞 쪽은 아래층 전부가 토론장소로 설계되어 있다. 5-6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토론장에는 이층 옆 측에 동시통역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 어떤 외국 학자가 와도 적절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토론장 이층에는 분임토의를 위한 넷 정도의 방이 있으며 이것은 칸을 열 경우 5-60명이 앉아서 회의 및 토론 연장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토지문화관」

이 재단 이사장인 박경리 선생이 [토지문화관]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환경이다. 사방이 푸른 나무로 덮힌 산에 둘러쳐진 환경 속에서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토론에 임하게 한다는 것을 이 [토지문화관]은 중요한 할 일로 생각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라는 말은 고식적이고 틀에 박힌 토론이 아니라 흉허물 없이 속 마음을 열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다 드러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정 발표자가 일정한 시간 안에 발표하고 토론자가 써 온 글을 읽는 식의 발표행위가 아니라, 발표내용이 토론자의 의견과 부딪혀서 새로운 의견으로 변용되는 그런 토론문화를 만들어 가는 장소로서 이 문화관은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쾌적한 잠자리와 즐거운 식사 장소는 필수적이다. 산 쪽으로 난 숙소 각 방은 2-3인 용 방 두 칸을 한 단위로 하여 모두 13집이 있다. 두 개의 방문을 열면 간단한 음식조리를 위한 주방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조별 토론을 필요로 하는 단체의 의견조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여러 날을 잡아 토론에 임하는 단체의 경우 하루를 잡아 남쪽으로 갈 경우 수안보온천과 월악산, 온달산성, 임경업 장군과 관계된 달천변, 고구려 때 축조된 장대한 중앙탑, 단양 팔경과 문경 새재의 관문들과 그 일대에 이르는 음식답사 기행, 북쪽으로 갈 경우 대관령 고개를 넘어 동해안; 속초의 설악산, 강릉의 오죽헌과 경포대, 선교장, 양양의 낙산사,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에 이르는 관동 팔경으로 연결된 역사 깊은 1일 관광코스가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곳인 원주에는 신라 및 고려 때에 귀래 쪽에 있는 법천사를 비롯해 치악산 정상에 위치한 상원사 등의아름다운 절들과 강원도 감영터라든지 운곡 원천석과 관련된 태종대 터 등이 있고 서쪽으로는 여주의 신륵사, 영릉 등의 관광명소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관광여행과 휴식 시설은 앞으로 [토지문화관]이 능률적으로 조직 개발해야 할 과제이다. 운영관계자들은 이미 이것을 위해 기본 답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토지문화관 은 어떤 내용으로 무엇을 어떻게 채우며 운영될 것인가 이다. 우리 나라에는 이런 문화관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비영리 공익단체로서의 [토지문화관] 운영방침

이 비영리 공익 단체로서의 문화관을 운영하는 기본 방침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그 첫째가 토론문화 창달을 위한 적절한 장소의 활용이다. 토론문화가 발전한다는 뜻은 어떤 의견이든 세력 큰 의견에 의해 억압받지 않고 공평하게 발표될 수 있는 모여 살이 분위기로 바뀐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그것이 어떤 의견이든 억압받지 않고 공평하게 발표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설령 다른 의견보다 덜 보편적이라 할지라도 존중되어야 하며, 그것보다 나은 의견이 나왔을 때, 자기 의견을 뒤로 물리며 가장 나은 의견을 모두가 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데 있다. 토론문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 원리를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는 점을 [토지문화관] 이사장 박경리 선생은 강조한다. 요식 행위로서 행하는 토론이 아닌 공평하고도 정직한 토론문화 정착을 위해 이 문화관이 기여하기를 박 선생은 크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다음 두 번째 방침은 우리 시대 지식인들이 안고 있는 현대문명 패러다임의 조화로운 변환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각적으로 논의되는 마당으로서의 장소활용이다. 생명문제, 환경문제, 창조적인 문학·예술의 창작과 관련된 문제, 물질문명으로부터 받는 폐해에 대한 새 패러다임 제기문제 등 다양한 의견들의 종합되어 이 사회에 맑고 투명하게 제시된다면, 그것은 2,000년대를 향해 열린 한국사회 앞날에 귀중한 새 문화의 물결이 될 것이다. 맑고 깨끗한 물, 지성의 소리,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이 시점에서 가장 갈구하면서 찾고 있는 샘이다. 참된 지성의 맑은 소리가 이 문화관을 구심점으로 해서 나올 수 있다면 아주 귀한 역할이 될 것이다. 전국 각 대학교나 연구소에 포진해 있는 젊고 패기에 넘치는 지식인들, 그들은 이 나라의 앞날을 책임질 커다란 자산이다. 그들 각자가 지닌 전공별 지적 자산을 효과적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어떤 분야의 학문적, 문화적 방향도 세계 각국의 발전모형과 닿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널리 인간의 이익을 위한(弘益人間)' 학문과 문화 예술은 오랜 경륜을 쌓은 이들 학자, 예술가들의 맑은 지성에 의해 창조 계발될 것이다. 인문과학 가 가까운 곳에 자연과학이 있다. 아니 말을 정확히 하자면 자연의 발판 위에 인문은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기초적인 탐색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한 나라 사회에, 제대로 세울 수가 없다. 정신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는 전 지성이 참여해야 되고 이들의 결집된 정신을 통해 부정한 힘과 폭력, 욕망과 비루함은 순화됨을 이룰 것이다. 이것이 토지문화관 이 꿈 꾸는 기획이고 방향이다. 이런 일들을 실현하려고 할 때 과연 어떤 규모로 출발할 지는 아직 계획 수립단계에 있었지만, 점진적이고 발전적인 운영계획을 가지고 시작하여 밀고 나아가겠다는 이런 꿈이 이 문화관 주변에는 담겨 있어 보였다. 세 번째 방침은 젊은 인재양성을 위한 장소 활용이다. 젊은 인재양성은 주로 문학과 관련이 깊은 내용이었다. 문학과 철학, 각 예술 분야의 젊은 이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자기 분야의 저술을 준비한개 한다는 방침은 기실은 현실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다. 이것은 국가차원의 원대한 포부가 아니고는 안된다. 신진 작가나 예술가들, 철학자들이 이곳에 와서 명상하고 저술 집필을 구상하게 한다는 포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프랑스의 <뽕띠니 스리지> 문화재단을 둘러보고 온 <토지문화관 >운영관련자들의 보고서에는 스물 다섯 살 되던 장폴 사르트르가 <뽕띠니 스리지>성에 와서 창작의 꿈을 키웠다는 내용이 있다. <뽕띠니 스리지> 재단 이사장인 에디뜨 아르봉 여사가 이 점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성인을 키운다는 것, 그것은 나라의 힘을 키운다는 뜻과 같다.



한국문화발전의 커다란 구심점이 되길...

 건평 800평이 넘는 이 토지문화관  건물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에 대한 온갖 토론과 창작, 예술 발표 등이 꿈 꾸는만큼만 이루어진다면 한국문화 발전에 커다란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4킬로 쯤 떨어진 곳에는 박경리 선생이 살던 단구동 옛 집이 있다. 그곳은 '토지공사'가 따로 자금을 투입, 3천여평 땅을 확보하여 토지 박물관 을 꾸미고 있었다. 전국의 문화 유적지가 그 나름으로 힘 겹게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박물관의 존립은 [토지문화관]과ㅣ함께 문화 관광지로서의 한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다. 많은 작가 예술가와 문화관계 전문가, 철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늠 눌론이고 정치계 재계, 숨어 있는 지사 등 여론 주도자들의 깊은 관심과 성원이 이 문화관을 오붓하고 아름다운 한 문화구심지로 만들어 가기를 꿈 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