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새직종

 

 
소리의 '자원화' 21세기의 모차르트

컴퓨터 음악가

                       

 이선실/방송작가                       

 

새 천 년을 앞두고 인류의 문화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각도로 나타나지만, 그 화두는 멀티미디어다. 이미 우리는 '크로스 오버'를 통해 예술  각 장르간의 벽 허물기 작업을 체험했다. 그러나 인류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은, 장르간의 벽 허물기에 만족하지 않고 장르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콘텐트의  생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은 이러한 새로운 콘텐트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고, 그 변혁의 중심에는 컴퓨터 음악이 있다. 컴퓨터의 출현 이래로, 각 예술 장르는 컴퓨터의 이용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음악만큼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분야는 드물다. 일찍이  피타고라스가 음계를 수학적으로 정리하였듯이 음악에는 코드가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디지털의 출현으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된다.
 컴퓨터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1982년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출현과 함께다. MIDI는 전자 악기간에 주고받는 데이터의 호환성을 위해  제정된 국제규격으로, 대부분의 전자악기가 이를 기초로 데이터를 송수신한다. 컴퓨터  음악이란 PC와 MIDI용 장비를 이용한 작곡, 연주, 녹음 등 음악 제반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컴퓨터 음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영화,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 음악, 광고, 애니메이션, 오락 게임 분야, 그리고 대중 음악에서는 이미 컴퓨터 음악의 활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의 편중성 때문에, 컴퓨터 음악은 대중 음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컴퓨터 음악이란 무엇인가? 사실 컴퓨터 음악은 아직 발아단계이기 때문에 그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을 통해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컴퓨터 음악은 최근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 음악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보 음악은 음악과 커뮤니케이션의 결합이다. 음악의 생산,  소비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개념의 출현은 음악 범용의 시대를 열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공을 초월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보 음악은 창작, 연주, 교육, 유통의 전 분야에 걸쳐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 음악이 작곡, 연주,  녹음기술, 유통 등의 개별 분야의  합작품이었다면, 정보 음악 시대에는 이러한 사이클의 구분이 불필요해진다. 창작자가 컴퓨터 연주를  통해 유통까지 책임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편 예술로써의 정보 음악은, 보다 복잡하다.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음악에 대한  관심이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컴퓨터 음악의 실험단계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음악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보자면, 우선  지난 93년 대전 엑스포의 명물 중 하나였던 음악 분수를 들 수 있다. 기존의 단조로운 분수와 달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높낮이가 달라지고 색깔이 변하는 분수는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음악 분수는, '설치 음향'이라는 컴퓨터 음악이  탄생시킨 새로운 예술 장르다. 개념은 설치 조형과 비슷하지만, 음악의 미디를 이용해 다양한  출력기를 제어하는 새로운 예술 장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멀티미디어는, 음악과 그림의 개별적인 창작물을 컴퓨터를 이용해 단순 결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설치 음향에 이르면, 멀티미디어란, 개별적인 각각의 장르를 통합해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창조적 작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컴퓨터 음악의 또 다른 가능성은, 일본 작곡가 오카모토 히사시가 만든 마우츄라는 악기에서 찾을 수 있다. 마우츄는 퍼포머의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퍼포머의 행동에 따라 음과 영상이 나타나도록 하는 멀티미디어 작품.  그런가 하면 95년 7월에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사상 최초의 사이버 오페라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줄리아드 음대 로비에 설치된 컴퓨터 앞에 대기한 1백 25명의 음악전문가들과 전세계 인터넷 가입자들이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컴퓨터 음악가  매튜 매초버가 흔드는 전자 지휘봉의 흔들림이 정보로 변환된다. 이 정보는 두 개의 쇠막대기로 받쳐진 세모꼴 철판에 2개씩 매달린 금속덩어리로 구성된 리듬나무의 연주로 바뀌어 링컨센터에 모여있는 청중들에게 음악으로 전달되었다. 같은 해 텍사스 오스틴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이 만든 '사이버 스페이스 오페라'는 이미 작곡된 음악과 줄거리, 등장인물을 가지고 인터넷 가입자들이 오페라  대본을 만드는 멀티 게임 형식의 음악 작업이다.  그밖에도 컴퓨터 음악은 소리가 가지고 있는 시공의 한계를 초월하여, 소리를 저장하고 자원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혹은 음향) 분야의 영역을 한층 넓히고 있다. 

 

세계는 멀티미디어 시대 예술의 총아로써 컴퓨터 음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컴퓨터의 확산과 함께 빠른 속도로 컴퓨터 음악이  보급되고 있다. 1980년대 말에 이미 컴퓨터 음악 동호회가 결성되었고, 1993년에는  학계의 사람들이 모여 한국전자음악협회를 창립했다. 해마다 수많은 컴퓨터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데  기존 음악회에 비해 유료관람객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상황은 멀티미디어 시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컴퓨터 음악을 '나홀로 음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컴퓨터 음악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방송, 영상 쪽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기존 오케스트라나 세션맨의 인건비를 절약하는 차원에서 컴퓨터 음악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 음악에서 앞 서 가는 사람들조차 아직은 인공음의 창조나 샘플링에 관심을 갖는 정도.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기 꺼리고 있으며, 컴퓨터로 인한 음악의 범용을 '취미  음악'정도로만 가볍게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세계는 멀티미디어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컴퓨터  음악은 그 활동 영역을  어디까지 넓힐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미 선진 각국에서는 음악가와 과학자가 공동 전선을 형성하여, 컴퓨터 음악을 겨냥한 각종 미디 악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프트웨어에서도 자국의 소리를 샘플링하여 전 세계에 유통시키고 있다.  소리는 언어와 함께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하나로, 민족마다 고유의 리듬과 소리를 지니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은 소리가 지니고 있는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의 소리의 자원화를 이루었다.

 

산업화 시대의 마직막 경쟁 도구가  색채학을 포함한 디자인 경쟁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새로운 문화 경쟁의 시대에 소리의 자원화는 가장 강력한 경쟁 무기로 부상될지도 모른다.   컴퓨터 음악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바로 이런 점에서도 중요하다. 소리의 자원화와 음악성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 음악의 발전 없이는, 다른 문화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또 다시 문화 생산의 하청국가,  문화의 후진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멀티미디어의 실험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 컴퓨터 음악가의 수요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행히 한양대학교를 비롯한 각 음대에서 컴퓨터 음악을 기초 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 또한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저변인구의 확대를 볼 때 우리 컴퓨터 음악의 장래는 낙관적이지만, 본격적인  컴퓨터 아티스트의 배출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컴퓨터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아티스트를 지원, 육성한다면, 다가올 21세기 우리는 문화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최 철(컴퓨터 음악가)
 지난 95년, 예술의 전당 리싸이틀 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디어 음악극  '종군위안부를 위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컴퓨터 음악가 최철씨는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소리와 그림의 공간을 창출하는 작업으로, 우리 예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양대 작곡과와 프랑스 에콜 노르말에서 전통 음악을 전공한 그는, 파리 유학시절 컴퓨터 음악을 접하고 새로운 소리의 세계에 매혹되어 귀국 후 컴퓨터 음악의 다양한 작업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 음대 등에서 컴퓨터 음악을 강의하고 있으며 컴퓨터 음악의 보급을 위해 활발한 활동도 벌
이고 있는 그는, 국내 최초의 상설 설치 음향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