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출판

 

"책읽는 사람이 이끄는 사회"만들어야...

 

김기태 (출판평론가, 혜천대학 출판학과 교수)

 

사람들은 참 여러 가지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제 멋대로 사는가 싶으면서도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위해 사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자기 몫만 챙기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원망하자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세상을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가 아닌 남과 우리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1세기에 대비한 문화예산 확보해야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말로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노라고 외친들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도 그들은 항상 당당하다. 결국 선거용 공약(空約)만 남발할 뿐 당선되고 나면 나 몰라라 돌아서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이젠 국민들조차 지친 듯하다. 다른 건 접어둔다 치더라도 문화 관련 예산의 배정과 집행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나라에 과연 문화라는 게 있는가 하는 회의를 넘어 이 땅에 문화라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는 느낌마저 든다.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선주자들은 한결같이 '문화 예산의 확충과 자율적인 문화 예술 환경을 조성'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와 예술관련법을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신과 함께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의 조속한 조성, 출판 유통 단계의 축소 및 합리적 구조조정, 지식의 보고인 학술 출판의 활성화, 정보화 시대의 정보 자원인 전자출판물의 진흥 방안 마련,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번역 출판의 활성화, 출판 문화의 국제 교류 활성화 등을 약속한 바 있다(범우사 발행, <대선주자들의 출판문화정책> 참조). 김종필 총리 역시 출판 산업 육성을 위한 과학적인 정책 입안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면서 도서 유통 산업의 정보화를 실현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대선주자들은 한결같이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 대비하여 20세기가 가기 전에 정부 예산 대비 1% 이상의 문화 예산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재 정부가 관리 운용하는 공공기금의 면모만 보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예컨대, 정부에서 관리하는 공공기금 38개 가운데 이미 조성된 기금은 36개로 기금 총액이 108조 242억 원이라고 한다. 아직 조성되지 않은 기금은 '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과 '편의시설설치촉진기금'인데, 문제는 정부의 공공기금 운용 계획에 따르면 1999년도에도 '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에는 출연할 계획이 없다는 데 있다.각종 기금의 조성액 규모를 보면 더욱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무려 1조 원이 넘는 기금이 '정보화촉진기금' 등 12개에 이르고 있는 마당에 유독 문화의 토대가 되는 '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은 전혀 조성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제나 출판과 관련된 정책과 그것의 실효는 정말 미미한 실정이고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작년에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500억 원이 출판계 지원자금으로 제공된 것만 해도 그렇다. 그것의 비합리성과 비현실성 때문에 실제로는 우리 출판계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전시성 행정의 표본이 아니었던가.

 

 

정치인들의 안목, 책을 향해 열려야
과거에 유럽에서 가장 미개했던 게르만 민족이 오늘날의 독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에 그들을 이끌었던 '프레드릭 2세'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2세는 '책'으로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일념을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심지어는 공무원과 군인의 진급에서조차 독후감을 가장 중요한 인사고과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게다가 전국 곳곳에 서점과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출판사에는 한 푼의 세금도 부과하지 않고 육성시켜 나갔다고 한다. 그 결과 독일은 오늘날 경제부국인 동시에 세계 최대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매년 개최하는 출판대국으로 성장하였다.일본 역시 따지고 보면 사무라이들이 판을 치던 칼과 혈투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명치유신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선각자들이 '책으로 나라를 세우자'는 독서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면서부터 오늘날 최대 출판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쌓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요사이 문화관광부 주도로 가칭 '출판진흥법'의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은 그대로 두고 새로이 '출판산업진흥기금'이 생겨날 수도 있다. 물론 자꾸만 정책적인 아이디어가 제시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의 실현을 기대하거나 믿는 출판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하지만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행정자치부 산하의 전국 3,700여 읍 면 동사무소가 2002년까지 주민 자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고 한다. 이 시설들을 문화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면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독서 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인과 출판인들이 힘을 모은다면 불가능한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이제 출판인들은 물론이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나서야 할 때다. 집권층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실천하게끔 촉구하고, 이를 우리 출판 산업의 도약과 진흥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우리 출판계 종사자들의 단합된 의지와 함께 좋은 책을 많이 펴내겠다는 다짐으로 먼저 독자층을 두텁게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이든 아니면 '출판산업진흥기금'이든 다양한 형태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본과 정책적인 배려가 축적될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협조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책 읽는 사람이 이끄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의 안목은 책을 향해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야 한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선물은 곧 우리 정신에 꼭 들어맞는 '문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