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국 악 
 '
창조적인 다른 것'을 용납해야 전통이 산다.

 

송혜진 (음악평론가)

 

   평소에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온 '국악상식'을 다시 한번 숙고하게 하는 작은 일을 얼마 전에 경험하였다.  국악계 원로 두 분의 연주실황을 담은 음반을 듣고 있는데 평소 잘 알던 분들의 연주인데다 음반에 담긴 음악도 귀에 익숙한 것이라서 아주 편안하게 모니터링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관심을 끈 것은  단소 독주곡 청성곡에 대한 해설지의 내용이었다. '국악개론' 식의 상식, 또는 사전식 해설이라면 의례 '청성곡이란 요천순일지곡이라고도 하며 가곡 태평가'에서 나온 곡…'으로 시작되는 판에 박힌 설명문이어야 할텐데 해설지에 적힌 내용은 이것과 달랐다.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이렇게 다른 해설이 나온 것인지 의문이 일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알고 있는 것과 다른 해설의 연원을 찾아 악보와 음반에 실린 '옛날 해설', 그리고 SP음반에 담긴 '옛날 음악'들을 들으면서, 음악과 연주에 대한 옛 사람들의 생각을 아주 새로운 각도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른 것'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양산되고 있는가?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청성곡에 대한 해설은 가곡 '태평가'의 대금 반주 선율을 2도 높은 조로 이조 시켰거나 혹은 대금의 음색이나 주법에 맞게 2도 높여진 선율을 다시 옥타브 위로 올린 후 복잡한 장식음을 첨가하거나 특정 음을 연장하여 변주시킨 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기수가 지은 여러 편의 악보에는 '…경풍년 두거의 자진한잎에서 파생되었기에…'라고 하였고, 김계선의 청성곡 연주를 담은 콜럼비아 레코드의 음반 해설에는 곡의 연원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다. 다만 "경쾌한 율동으로 시작되어 가지고 다시 평정(平靜)하얏다가 일층 질탕(跌宕)한 조로 변하기를 수차 반복하는 곳에 말할 수 없는 쾌미(快味)를 느끼는' 곡이라고 서술하였을 뿐이다. 또  청성곡이라고 하면 의례 대금이나 단소의 독주곡이려니 싶은데 1928년에 이왕직아악부에서 녹음한 SP음반에는 세악 편성으로 연주한 청성환입이 있고, 1930년대의 또 다른 음반에는 양금과 단소로 연주한 청성곡이 실려 있어 사뭇 다른 곡풍을 전해준다.  물론 논문을 쓸 목적으로 다른 예들을 들추어낸다면 더 많은 '다른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청성자진한잎이란 어느 한 곡을 가리키는 특정 곡명이라기보다는 가곡, 특히 관악합주곡으로 즐겨 연주되던 여러 곡의 선율을 높은 음역으로 이조하여 연주하는 곡' 이라는 넓은 테두리의 개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가곡의 반주를 맡은 악기들끼리 언제는 세악 편성을 연주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2-3종의 악기로 병주하거나,  그 중에서도  높은 음역에서 제 빛을 더욱 발하는 단소나 대금 독주로 자주 연주하던 관행이 근자에 이르러 단일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청성자진한잎으로 연주할 수 있는 여러 곡 중의 하나가 믿음직스런 고악보에 기록되고 그것이 청성자진한잎의 유일한 원곡으로 해석됨으로써 현대의 우리들이 전통음악에 대해 갖는 생각과 상식의 틀을 점점 좁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다소 지나친 추론이 연이어 고개를 든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르며, 어느 것이 원조이고 또한 정통인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연주되고 전승되는 전통음악에서 이렇게 '다른 것'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양산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둘 뿐이다.  

 

전통이 만들어 내는 오류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청성자진한잎 뿐이 아니다.  배우는 이들의 겸손함 때문일까.  스승의 음악을 조금도 변형시킬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음악인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반대로 노래의 부분적인 시김새조차 똑같이 따라하기를 권하는 스승, 은연중에 내가 가진 창법이나 연주기법 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들을 두루 살피다 보면, 우리 주변에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행여 전통의 진수를 제대로 전수하지 못할까 염려하는 입장을 십분 헤아린다고 해도 여러 유형의 다른 것이 널리 용납되는 융통성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옛날 명인들의 수업기를 들어보면 스승은 가락의 원점(原點)만을 가르쳐주고 제자들이 그 원 가락에 익숙해지면 제각기 알아서 잔 가락을 넣게 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한 선생님 밑에서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음악인이 배출되고, 다른 해석으로 스승의 음악을 살찌우고, 이 과정을 통해 음악 전승 줄기도 훨씬 실해지며  음악의 토양도 더불어 비옥해지는 것이라고 들었다.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고 한가지로 고착되는 음악이야말로 '박물관 소장품적인 가치', 또는 '자료 음악적  가치' 그 이상의 것이 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외골전승은 위태롭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나는 것이 가야의 음악인 우륵과 신라의 제자 사이에 있었다는 음악 일화이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우륵은 가실왕과 함께 가야금의 시대를 연 음악인이다. 가야가 망국 위기에 놓이자 우륵은 제자 한

사람을 데리고 신라로 망명하여 진흥왕의 후원아래 신라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소정 기간의 학습을 마친 신라인 제자들은 우륵의 음악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과 함께 스승에게 배운 음악을 과감하게 변작(變作)하였다.  "선생님의 음악은 너무 번잡스럽고 감각적입니다, 즉 번차음(繁且淫)하기 때문에   아정(雅正)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승께 배운 11곡을 5곡으로 줄    이고  편곡을 해보았습니다."   우륵은 제자들의 당돌한 의견과 행동에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제자들의  연주를 듣고 나서는  비로소 '좋은 음악'이 갖추어야할 중용의 도를 얻었다 즉, "낙이불류 하고 애이불비(樂而不流 愛而不悲)'한 음악이라면서 칭찬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제자들이 자기가 가르친 음악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창안을 하였다는 사실,  자기 음악의 개혁했다는 점에 오히려 감동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는 이면이 내재된 일화이지만,  적어도 제자들의 반란에 대한 분노와 자기 음악이 당한 모욕감을 뒤로한 채,  냉철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제자들의 음악을 평가한 우륵의 태도,  그리고 과감하게 스승의 음악을 개혁하여 마침내 스승을 감동시킨 제자들의 역량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외곬 전승은 위태롭다.  전통과 원형, 법제대로 하는 것, 아무개 선생의 창법임을 앞세워 일호의 변화도 허용하지 않는 고착된 전승과 신비화 하는 관행 속에서 문화재 제 몇호는 계속 양산하겠지만, 그리고 판에 박힌 국악 상식을 지닌 국악계 인사들을 배출해 내겠지만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생명력 있는 문화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창조적인 다른 것'이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생기 발랄한 전통 음악은 그 어디에서도 들어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