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프랑스의 국공립 공연장의 운영사례를 통해본 문화정책

 

최준호(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19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서는 공연의 프로덕션이 기업화, 영리화된 상태에서 대중/통속극이 연극무대를 독점하고, 공연예술 활동이 빠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국민 전체에게 예술향유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적인 문제일 뿐만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예술이 국민의 정신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문제라고 판단되었다. 가장 먼저 빠리시에서 연극 극장을 하나의 큰 교육기관으로 간주하고(1871년 5월 법령), 19세기말에 이르러 국민교육의 일환으로 지방에 극장을 설립하고 기존의 지역 극장을 지원하자는 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한 미학적, 윤리적, 예술적, 시민적인 관심의 증대는 1920년 국립민중극장(리옹시) 창설을 시작으로 하여 20세기 하반기, 지방화운동을가속화하는 결실을 얻게 하였다. 1936년 처음으로 국가는 연극정책을 검토하고, 정부의 요구에 따라 대연출가 샤를르 뒬랭(Ch. Dullin)이 연극지방화를 연구(1938년)하면서 연극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 새로운 관객 찾기, 연극·대중관객·창작 간의 균형, 정부의 연극재정 지원등을 1차로 검토하지만 단계적인 실현은 2차대전이 끝난 후에나  시작된다. 그 결실로 쟌느로랑(Jeanne Laurent) 장관에  의해 첫 번째  국립연극센터(Centre dramatique  national) -1946년 알자스지방의 동부연극센터 -가 설립되고 4개의 연극센터가 1952년까지 연차적으로만들어졌다. 이때 연극계와 정부의 동반자적인 노력은 크게 두  가지의 목적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지역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지방과 파리 근교에 연극, 문화 기관들을  설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관객개발을  돕는다는 것이다.  1947년 아비뇽  연극제(쟝 빌라르Jean  Vilar) 창설,
1959년 문화부 창설과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장관  취임, 그에 의한 전국 각지에 문화원 - 오늘날의 국립무대 - 설치 등이 정부와  지역이 협력하여 이 정책을 실천한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문화정책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에  프랑스의 공공극장은 정부가주도적으로 만들고 그 운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지는 문화영역이 지방 정치인의 책임으로 등한시 되다가  앙드레 말로의 문화부장관 임명 이후  이는 정부의 주요 사안으로 자리잡았다. 정부와 지방의 공동 재정지원의 체제를 확립하면서 오늘날 지역의 문화 담당  부시장의 기능과 중요성이  증가되고 시(commune), 군  또는 광역시(d partement), 도(r gion)가 전문인들의 지도하에 필요한 시설,  기구 등을 두면서 극장, 극단, 페스티발, 배우학교들을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연극센터, 국립무대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이다.이제 공공극장의 설치와 각각 다른 목적 또는 임무, 법적 지위와 극장장의 임명, 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공연장 운영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

 

임무 또는 운영의 방향

전문 연극을 위한 프랑스의 공공극장은 1996년 현재 5개의 국립극장(th  tre national), 43개의 연극센터(centre dramatique), 62개의 국립무대(sc ne nationale)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국립극장의 경우 모두가 다른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프로그래밍과 활동내용에 있어각기 다른 성격을 구축하고 있다. 코메디 프랑세즈(Com die fran aise, 1680, 몰리에르의 집Maison de Moli re이라고도 불림)에서는 '고전작품 중심의 레파토리  선정에서 현대의 대극작가의 작품'을 추가하여 공연한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소속 배우들(정회원과 단원)로 구성된 극단을  기초로  하여 운영되는   공공 연극극장이다. 유럽극장(Th  tre   national del'Europe, 1968)은 1983년 이후 - 1990년에 오데옹극장(Th  tre national de l'Od on)으로 명칭 변경 - 연중 6개월 '유럽의 대작들을 현대, 고전의 구분없이 제작, 공동제작 또는 초청공연'하는 일을 의무화하고 있다. 예술의 국경을 넘어  유럽연극의 생명체를 재현, 개발하고자하는 일이 주요 관심사이다. 꼴린느 국립극장(Th  tre national de  la Colline, 1987)은 국립극장 중 막내격으로 '20세기의 현대작, 주로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무대화'한 작품들을기획한다. 샤이오 국립극장(Th  tre national de Chaillot, 1968)은 국립민중극장이 변화된 것으로 '매우 다양하고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보다 폭넓은 대중관객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 이 극장의 방향이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Th  tre national de Strasbourg,  1972)은 유일한 지방의 국립극장으로 1968년 동부 연극센터를 이어받아 1972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국립연극학교(고등교육기관으로서)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유일한 극장으로 지방의  연극교육과창작을 주도한다. 국립 및 지역연극센터(Centre  dramatique national et  regional)는 국가 주도하에 연극의 창작과 보급을  위한 기구들이다.  1946년 이후  점진적으로 국가  전체에 확산되어 1996년 현재 총 43개가 설치되었다. 그 중 27개는 국립연극센터(CDN), 6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국립연극센터(Centres dramatiques  nationaux pour  l'enfance et   la jeunesseCDNEJ), 10개는 지역연극센터(CDR)이다. 지역별로는 32개가 지방에, 7개는  파리지역에 하나는 파리시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순회하는 센터로 분포되어 있다.국립무대(Sc ne national)는 연극을 우선으로 하여 오늘날에는 무용과 음악에 이르기까지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전국 각처에 - 우리의 군, 시 단위에 이르기까지  - 골고루 보급하기위한 공연장으로서  기획공연제작도  겸하고 있다.   이 국립무대는  문화원(maison de   laculture)과 문화개발센터(centre d'action culturelle et de  d veloppement culturel)가 전신이며 1996년 1월 현재 전국에 62개(지방에 52개, 파리지역에  10개)가 설치되어 있다. 50년 전부터 지역문화개발정책 계획의 최우선적인 도구로  활용된 극장이다. 이 두  개의 공연장을중심으로 연극과 문화의 지방화 정책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지위 및 극장장 임명

국립극장은 전적으로  국가가  재정을 책임지는  '상,공업적인  성격의 공공기관'   - EPIC:Etablissements publics   caract re industriel  et commercial -으로 분류된다. 극장장(꼬메디 프랑세즈의 경우 사무국장)은 3년 임기에 재임용이 가능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꼬메디프랑세즈도 1995년 4월 1일부로 EPIC으로 변화되었고  사무국장의 임기는 5년에, 3년씩 연장할 수 있다. 연극센터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개 연출가들인데, 3년 임기에 재임이 가능하며 CDN과 CDNEJ의 경우 문화부장관이 임명하고 지역센터(CDR)의 경우  지역단체장과 문화부장관이 공동으로 임명한다. 국립센터(CND)의 경우에도 공간과 재정에 있어서지역의 투자가 늘어감에 따라 중앙정부와 조화로운 협력을 위해 극장장 임명시에  지역단체의 자문을 얻고 장관이 임명한다. 국립무대의 대표자는 대개 프로그래밍 전문가이다. 월급여를 보장받는 지위로 그의 예술적인 안安을 토대로 하여 행정자문위원회에서 추천을 하고 문화부장관과 해당 지역대표의 승인을 받아 임명된다.  국립무대의 대표로는 지역단체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상의 모든 공공극장 대표는 임기가 끝나면 공
개모집 형식의 심의를 거쳐 재임용될 수 있다. 그간의 성과와 기획서, 운영계획서를  토대로하여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우수할 경우 다시 임명된다.

 

재정

국립극장의 재정은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총 3억 3천만 프랑(약 700억원)이 문화부로부터 1995년에 지출 되었으며 극장별로 3천7백30만 프랑(꼴린느 극장)에서부터 1억3천6백만 프랑(꼬메디 프랑세즈)이 재정지원되었다. 연극센터들은 재원의 2/3가 공기금으로 충당되지만 위상은 모두 주식회사 또는 유한회사 같은 상업조직으로  되어 있다. 초창기에는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이었으나 - 주로 지역연극센터의 경우 - 점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참여가 늘어 나면서 현재의 균형을 이루었다. 활동을 위해 1995년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3억 5백 9십만 프랑에 달한다. 재정 지원과 수입의  비율은 1990년∼1994년의 통계를 평균해보면정부가 예산의 약 40%, 지자체가 23-4%, 자체수입으로 36-7%로 되어 있다. 국립무대는 비영리기구인 협회(association)로 법인 등록되어 있고 지역의 공공단체가 모여서 주요 재정을지원한다. 국가의 파트너 역을 맡는 지역단체는 대개 시市이며 때로는 자문위원회가 되기도한다. 1994년에는 중앙정부가  예산의 27.2%를, 지자체가  50.9%를 지원하고, 자체수입으로21.9%를 충당했다.이상에서 살펴본 110개 공공극장은 우선 설치의 목적이나  임무가 다양하게 다르고, 중앙정부 중심 또는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재정적인 안정성을 확보한 가운데 자율적으로  운영할수 있는 법적인 지위가 확보되어 있다. 일단 임명된  극장장과 스텝들은 공무원처럼 지위가 보장되면서 동시에 사조직처럼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예산과 재정의 운영에 대한 전적인 자유와 책임이 산술적인 기준에 근거하지 않고 그 극장의 설립취지와 공공극장으로서의  임무를 얼마나 임기중에 살렸는가에 있기에 극장은 공공 문화기구로서의 기능을 다하는데에  전념할 수 있다. 재정확보에 있어서 현실적인 기준 - 연극센터 36-7%, 국립무대 21.9%  정도-을 소화하기만 하면 극장의 자율적인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공공극장은 건물 운영이나 산하단체의 운영주가  아니라 극장 기획 주체이면서  기획제작의주체이다. 대관 수입을 늘이려 노력하거나,  산하 공연단체의 운영에 골몰하는 경우는  거의없고 극장장을 중심으로 하는 극장의 전문 운영 스텝이 연간 프로그램을 중, 장기적으로 기획한다. 극장의 목적에 따라, 예술적 창의성을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각 극장의 관객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공연으로 연간 프로그래밍을  한다. 산하 예술단체를 연중 관리하고 이 단체 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꼬메디프랑세즈 한 곳 뿐이며, 기획
제작을 주활동으로 하는 곳은 국립극장들이다.  94/95 시즌에 5개의 국립극장이  총 1,615회공연을 한 성과는 산하극단이나 기획제작 중심인 경우에도 전용극장이 확보되어 있고, 꼬메디프랑세즈의 경우처럼 극단 프로그램이 레파토리화 되어 3-4개의 작품이 요일별로 상연될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연극센터나 국립무대도 기획이 주된 업무이나 필요한 경우 극장이 제작을 의뢰하거나, 직접제작자가 되기도 한다. 소속단체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재정적인 누수도 막고 다양하면서도 일관성있는 프로그램을 위해 소수의 전문인력 - 예술감독/극장장, 행정, 마케팅, 재정, 프로덕션 담당 등 -이 팀을 이루어 효율을 높인다. 공무원이 아닌 계약직 임명으로 임기중 재정 및 프로그램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공기구는 감사에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느나형사상의 문제가 아닌 한 임기중 해임은 어렵다. 그들의 안목과 역량으로 훌륭한 공연을 가능한한 저렴하게 사오고, 균형있게 기획하면서  보다 많은 관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재정의30-35%를 입장료 수입으로 확보했을 때 성공적이라고 하는 말은 관객이 없다거나 극장인력이 비대해서가 아니라 공적지원의 혜택이 예술가와 관객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연중 좋은 작품을 찾아내어 극단/예술가에게 작품료를 지불하며 프로그램으로 유치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관객이 연극을 볼 수 있게 하고, 어린이나 젊은이, 지역인들을 예술로 선도하기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제작하는데 주요 예산을  집행한다. 결국 극단은 기획, 홍보,  대중의취향에 끌려 다니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이들 극장에 두루 작품을 팔 수 있고,공적 지원의 주체로부터 중,장기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창작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이상적인 공공극장의 설립과 운영이 얼마나 발전적인  파급효과를 가져다주는지, 좋은 예를 프랑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