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로마에서 찾은 한국공연예술의 가능성

  - "해상왕장보고" 이태리 공연

 
 

이중한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

 
  공연예술의 해외공연은 외교영역의 도전
 
이탈리아 로마 오페라극장에 올려진 현대극장의 뮤지컬 드라마 「해상왕 장보고」(김지일 작·표재순 연출)를 개막일인 11월 6일에 볼 수 있었다. 객석이 꽉 찼다던가, 공연이 무사히 이루어졌다던가 하는 식의 이야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 할 두 가지의 인상적인 주제가 있다.
첫째는 「해상왕 장보고」가 로마 오페라극장의 공식초청작품으로 ’98/’99시즌 정규프로그램 리스트에 등재된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격식대로 관람티켓도 절차대로 판매됐고, 또 이 판매가 성공적으로 완매됐다. 이 점에서 보면 뉴욕의 「명성황후」 공연을 그렇게도 크게 보도했던 언론의 감각으로 이번 「해상왕 장보고」를 조용히 넘긴 것은 다소간 불공평했다는 생각도 든다.
둘째는 개막일부터 공연날까지 극장 로열박스에 앉아 너무나 즐거워했던 정태익 주 이탈리아 한국대사의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자국의 공연물을 가지고 이탈리아 대표적 극장에서 이탈리아 정부요인들만이 아니라 각국 대사들을 초청해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최상의 선물을 자연스럽게 나누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선물은 바로 객석에서 충분히 감탄하고 호응을 받고 있다는 반응의 실증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혼자서만 빠질 수 있는 초청인사들은 있을 수 없었다. 외교무대에서 무엇이 이 공연무대보다 더 분명하게 교류를 다질 수 있을까라는 느낌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받은 것은 바로 정대사였을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예술의 해외공연 성공은 문화영역의 목표가 아니라 외교영역의 도전이어야 하며 이를 위한 지원책이나 후원금도 외교통상부 예산에 설정돼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해상왕 장보고」는 지난 4년간 외국공연만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공연전까지 23개국을 돌았고 이탈리아 이후에도 불가리아 소피아 공연을 거쳐 대만과 인도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 재외공관들에는 서울 광화문거리에서보다 더 크게 소문이 나 있다. 그리고 당연히 공관들마다 우리에게도 와 주었으면 하는 갈망과 주문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로마오페라극장 초청과 같은 번듯한 대우를 조직해내는 능력이 공관들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관점에서 현대극장은 지금 공연물 해외마케팅에 그 나름대로 수준있는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이룩한 현대극장의 최문경팀은 이제 자신의 마케팅 능력을 독립적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해상왕 장보고」 보다 더 큰 성취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저런 해외공연에 대해 공연물 자체만을 논평하는 태도를 가져왔다. 그러나 공연물제작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해외공연이어서가 아니라 국내의 일상적 공연에서도 작품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공연의 평가는 공연의 경영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디지털시스템까지 동원되는 이즈음 무대제작이란 사실상 큰 변화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정상의 인기인 배우 몇명만으로는 성공작을 만들기 어렵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마저 근자에 번번히 실패작만을 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배경에 있다. 마케팅이 더 확대되어야 하고, 기술적으로는 무대를 구성하는 미술이나 의상이나 조명 등의 테크놀로지들이 TV화면이 아니라 디지털화면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관객을 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로마 오페라극장 로비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느낀 장면을 쉽게 잊을 수 없다. 대부분의 관객이 계단 하나를 오르는데 한숨이 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은 입장하는 데만 10분으로도 부족했다. 오페라 극장의 노쇠화는 20세기 산업사회의 뒷모습을 너무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로마를 떠나던 날 만났던 극장의 홍보실장 로모로 발도니도 이 사연을 화제에 올렸다. 청소년층을 오페라 극장에 끌어들이는 일이 오늘의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째즈공연도 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완패했다. 한국공연을 초청한 것도 극장으로서는 활력을 다시 불어넣어 보려는 시도였다고 고백했다. 결과는 곧 청소년을 불러들인 것은 아니지만 늙은 관객에게나마 신선한 바람이라는 반응을 받은 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시장이 공산당이었을 때 정치적 이유로 공연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의 「꽃파는 처녀」 공연에서 받았던 너무 큰 실망을 이제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대극장과 로마오페라극장이 함께 한 하나의 모험이었고 이 모험은 로마극장경영자들에게 더 큰 선물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통에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없다
 
표재순 연출은 해외공연에서 언어의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의 요령을 아주 잘 정리하고 있었다. 무대의 장면을 끊임없이 전환하면서 한국정서의 강조도 적당한 시점에만 시각적으로 삽입하는 편집기술을 발휘했다. 그가 연극에서만이 아니라 TV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점에서 보면 이제 한 장르의 역량만으로 공연예술을 성공시키기란 불가능한 때가 아닌가 한다. 춤과 노래, 영상과 문자의 메시지, 그리고 인간체온의 따스함과 기술의 무미한 차가움이 다같이 근자의 용어로 멀티화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변해있는 관객의 호흡에 파고 들 수 없다는 것을 불행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로마 오페라극장의 연간예산액은 700억리라(한화 약 595억원)라고 했다. 이중 400억리라(57%)는 정부지원, 200억리라(29%)는 로마시 지원, 100억리라(14%)가 매표와 스폰서에 의한 자립도였다. 1층 객석 값은 모두 23만리라(한화 약 19만6천원). 그 어느 수치도 우리 현실과 비교하기에 씁쓸했다. 그리고 최근 우리에게서 커지고 있는 공연장의 민간위탁 논의도 떠올랐다. 로마 오페라극장도 86%의 지원을 하면서 위탁공영제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들의 전통예술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에 여전히 역점을 두고 있다. 모험을 시도하지만 이 역시 낯선 전통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세계화를 위해 우리가 진력을 다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문화와 전통은 충분히 독보적인 것이다. 그리고 전통에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자국적인 것이다. 이를 세계에 들고 나가 세계의 핵심지에서 예술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경제적 신뢰의 회복만이 아니라 관광유치에도 가장 확실하고 적극적인 도전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인력이나 장비나 관객시장을 별도로 하고 우선 극장공간 운영을 생산성 있게 경영개선 하자고 하는 일보다 먼저 할 일은, 현수준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공연제품을 모두가 힘을 모아 단 한 편만이라도 제대로 만들고 세련화시켜서 국내든 국외든 들고 다니는 것이 더 전술적으로 합리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로마에서 그것이 가능해 보였고, 그래서 로마에서의 관극기회는 소중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를 로마의 「해상왕 장보고」 무대성황보다 먼저 말하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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