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무용

춤으로 풀어간 예술가의 특권
- 대한무용학회의 ‘춤으로 푸는 고전’ -

문애령 무용평론가

장르를 불문하고 고전에는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있는 어떤 힘이 있다. 단순한 옛것이 아닌 옛날의 명작은 그래서 여전히 반복되어 감상되고 판단이나 생각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대한무용학회에서 두번째로 시도한 ‘춤으로 푸는 고전’ 기획전(8.11~12, 문예회관 소극장)은 이러한 고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무대였다.

춤의 소재를 고전에서 찾아낸다는 단순한 의도에서 부터, 고전의 에센스가 현대에서는 어떻게 반복되고 변형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흥미도 있었다. 아울러 문학이나 음악 혹은 미술 등 한가지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고 고전이라는 주제를 제시한 것은 무용학회만의 어떤 탐구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듯했다.

모두 6명의 신인 안무자들이 고전을 해석한 결과는 젊은 무용가들이 안무면에서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제를 찾고 그것을 해석하고 독자적인 결론을 얻고 다시 춤으로 구체화시키는 방법론에 있어서 분명한 획이 그어지고 있음을 보였다.

지금까지 누가 춤의 특정한 기교를 얼마나 완벽하게, 혹은 화려하게 구사하는가가 무용가의 등급을 매기는 유일한 기준이었다면 이러한 기교 단계는 당연한 기본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기교자체를 과시하는 것 보다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기교를 포장할 수 있는가가 과제로 떠올랐고 포장작업 전체를 안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미연 「돈키호테」 안무 능력 돋보여

춤과 고전을 연관시킨 작업들 중 특히 줄거리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경우에서 보아왔듯 이번 공연에 대한 선입견은 신파극적인 해석이나 순정만화 스타일의 해석에 그치지 않을 것인가 였다.

하지만 성미연의 「돈키호테」를 보면서 이러한 우려가 오히려 두배의 효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만일 이 작품이 「돈키호테」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단순히 현대인의 정신분열을 운운하는 것이었다면 객석을 지배하는 힘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미연은 안무의 능력이 해를 거듭하면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고전’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는 돈키호테에게 두가지 이름을 제시했다. 하나는 미치광이였고 또하나는 부조리에 대항하는 진정한 반항아였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특권은 참 매력이 있다. 어떤 춤의 내용에서 진위를 따지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예술가 스스로도 독자적인 시각에 초점을 둔다. 물론 어느선까지는 상식을 지키며 관객층의 호응을 끌어내려는 데는 독자성의 한계가 있기도 하다.

소설 「돈키호테」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춤의 주제를 날렵하게 뽑아내 전혀 다른 세계로 연출한 성미연의 「돈키호테」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도입부와 후반부에서 반항아의 기질을 보였다면 중간 부분은 타인의 시선에 미친 미치광이를 체험하는 장면이다.

성미연 특유의 탄력있는 움직임들이 전반부에서 길게, 후반부에서는 짧고 간결하게 배치돼 고조되는 분위기를 연출했고, 중반에는 배경막의 영상들과 군무진의 등장으로 극적구조를 갖춰 작품 전체를 체계있게 끌어간 안무력이 드러났다.

최근에 특히 부각되는 젊은 안무자들의 특징이라면 춤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동작 언어가 매우 풍부해 졌다는 사실이다. 성미연은 이미 움직임의 엑스터시를 경험하고 있는듯 했고 김남식이나 유경희도 새로운 언어 연구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남식 동작의 새로운 힘과 유경희의 작은 실험

김남식의 「새벽에 찾아온 죽음」에서 등장한 솔리스트는 부드럽고 연속적인 가운데 힘이 표출되는 기교를 반복했는데, 안무자의 섬세한 감각이 동작의 요소요소에서 발전된 경우였다. 동작과 포즈의 규칙적인 반복이 우리 춤무대의 기교적 한계였다면 김남식 등은 이러한 한계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된 각 장면들의 연출이 다양하고 재치있게 구성된 반면 이러한 장면들이 연결되는 당위성이 약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무대 자체만으로 볼때, 즉 동작과 상황의 흐름으로 볼때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것이 장면의 전환을 소리없이 보여주는 듯한 연출기교는 안무자들이 부딪히는 마지막 단계의 어려움이다.

김남식이 동작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는 과정에 있었다면 유경희는 기존의 움직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다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현대춤이 시작부터 자유의 물결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풀려있는 세계라면 한국춤은 규제의 틀 때문에 답답한 세계다. 안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춤사위를 인정하는 관습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춤 창작이란 몇배의 혼란스러움을 거쳐야 한다.

유경희는 배경묘사라는 구체성을 기반으로 작은 실험에 도전했다. 정처없이 방황한다는 「流離」에서 안무자는 유령선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장치와 분장까지 일치시켰다. 이로써 드라마틱한 배경 연출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는데 그 자체만으로 작품을 논할 수는 물론 없는 일이다.

「유리」의 매력이라면 거친 춤사위에 있었다. 정돈된 한국춤사위를 뚫고 나오는 거친 춤사위는 한국무용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어휘들이었다. 이는 기존의 한국춤 기교를 탈피하려는 시도들과 외관상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동작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나타난다.

탈피를 추구한 결과로 나타난 춤사위는 연결되는 맥이 없이 단절되는 반면, 유경희의 경우는 발동작에서 지속적으로 맥을 지켜주고 있었는데 이때문에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독특한 유령적인 몸짓이 나온 듯 하다. 비록 작은 영역에 한정된 연구였지만 가장 기본적인 발판에서 안무가의 감각을 드러낸 유경희는 지켜볼 만한 신인이었다.

단순한 볼거리 차원에서 발레기교는 언제나 안전한 영역이다. 동작의 난이도를 따지자면 한이 없고 놀라운 기교를 보이는 사람도 극히 드물지만 우선은 모든 동작들이 정리된 때문이다.

김길용과 박재홍의 개성 돋보여

김길용과 박재홍은 이러한 발레의 전통을 자신들의 개성과 접목시켜 눈길을 끌었다. 김길용에게는 관객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능력이 있다. 어떤 작품에서건 주어진 동작에 몰입함으로써 발산되는 열정적인 느낌을 보게되는 때문이다.

김길용 역시 성미연 처럼 주제를 요약하는 데서 「카르멘」이란 고전을 가볍게 빌려와 사랑에도 본능과 이성이라는 영역이 있다는 전제로 춤을 만들었다. 강진희가 카르멘 역으로 김길용과 중국인 무용가 리츠가 각기 돈 호세와 에스까밀로 역을 맡아 3인무로 구성했는데 김길용 특유의 활력이 안무에서도 유감없이 표출됐다.

「엇갈린 균형」이라는 제목처럼 카르멘 보다는 두 남자의 대결이 춤을 구성하는 기본 흐름이었고, 리츠 또한 김길용 못지 않은 활력의 소유자였다. 강진희는 보다 성숙된 기량과 세련미를 보여 연기력의 폭이 넓어진 모습이었다. 단지 구성상의 문제에서 마무리에 대한 처리나 장면의 연계가 아직은 과제로 남아있었다.

박재홍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이다. 김길용의 장기가 느낌의 표출이라면 고전발레를 전공하는 박재홍 만의 지식은 고전발레적인 연기력이 될 것이다. 「대홍수의 전설」은 일종의 마임국으로 재치있는 어린이들이 펼쳐보이는 상상의 세계였다.

천사와 악마 그리고 선장이 등장하는 3인무는 결국 한 어린이가 분수대에 앉아 읽고있던 노아의 홍수 이야기였음을 알리며 끝을 맺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놀이감과 장난들이 펼쳐진다는 구성이다.

배를 조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운전기 조각이나 비가내리는 원리를 설명한 나무판, 수영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등장한 물결이 그려진 넓은 천, 그리고 분수대 까지 한편의 동화극을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완벽하게 짜여졌다.

즐거운 여흥거리로서의 무용극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한 무대였는데 동시에 줄거리의 묘사에 위축된 춤의 기능은 무엇인가 라는 원초적인 질문들이 나온 배경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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