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연극

상상적 놀이 구조에 담은 세상 구원의 송가
- 극단 반딧불이 「이 풍진 세상의 노래」 -

김승옥 연극평론가

연극은 종합예술이자 공동의식의 소산이다. 구성원들의 원활한 관계와 일체감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현실적인 세계이다. 집단의 의식구조가 일치하는 시점에서 출발할 때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단국대학교 동문 극단 반딧불이의 창단 기념공연은 일단 상서로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신선한 연극’을 표방하고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보인 「이 풍진 세상의 노래」(장성희 작·강영걸 연출)는 우선 재미있고 잔잔한 감동도 준다. 얽히고 섞인 인생사의 난제들을 풀어가는 독법이 정겹다.

이 연극은 설화 속의 인물들이 현실세계를 넘나들며 놀이를 벌이는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삼신할미와 월하노인이 일을 꾸미고 추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들은 생사화복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사 행불행의 열쇠는 인간 스스로가 쥐고 있다.

지방 소도시지만 향토색은 찾아보기 힘든 세속도시의 인간군상들이 벌이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시장통에서 한 평생 순대국을 팔아 돈을 모은 금산댁에게는 눈먼 아들 호영이 있다. 이제 나이 들어 장암선고까지 받고보니 자신이 죽은 후 아들의 장래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참한 색시 얻어 짝지워 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이를 알게 된 월하노인과 삼신할미가 연분 맺는 일에 개입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삼신할미와 월하노인의 현몽으로 금산댁은 개안수를 찾아 나설 호영의 길동무를 구하게 된다. 금산댁 재산을 탐낸 지역신문 영업소장 석승은 고향 후배인 판수를 꼬드겨 그의 딸 덕실을 금산댁에게 소개한다. 사례비를 빼돌려 프랑스로 도망할 요량으로 길동무를 수락한 덕실은 계획대로 호영을 버리고 달아나고, 석승의 농간에 걸려든 호영은 신장을 빼앗긴다. 덕실은 가책에 못이겨 곧바로 호영에게 되돌아 오지만 한발 늦고 만다. 삼신할미와 월하노인은 호영이 장기를 빼앗겼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덕실의 마음과 사랑을 얻었으니 개안수를 얻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며 또 다른 연분을 맺어주기 위해 발길을 재촉한다.

이 연극에는 두 패의 유형적 인물군이 등장한다. 금산댁, 호영, 덕충, 미스 리, 심순 등이 선인으로 석승, 왕초, 짝눈 등이 악인으로 분리된다. 이 외에 개과천선하는 인물로는 판수와 덕실 무녀를 꼽을 수 있다.

장님청년 호영은 비록 육안은 멀었지만 심안이 열려 있는 인물이다. 자신을 이용하려면 덕실에게 초승달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부분은 가슴시린 장면이다. 보름달이 뜨면 달빛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는 이치처럼, 너무 환한 빛을 내면 그 빛에 가려 자기 빛을 잃은 사람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도와 선행을 아끼지 않는 덕충과 미스 리도 호영과 같은 부류의 인물이다.

지역신문 영업소장이라고 명함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장기 매매 브로커인 석승을 둘러싼 인물들은 전형적인 악인들이다. 석승은 사기죄로 끝내 감옥행 신세가 된다. 악인의 부류에 들기는 점집을 차려놓고서 사주팔자, 궁합 등을 보며 혹세무민하는 판수도 마찬가지다. ‘인생출발상담소’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걸어놓고 복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판수는 오히려 혼사를 대놓고 깨는 위인이다. 이런 판수가 개과천선해 노처녀 전도사 심순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 작품이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여러 겹이다. 우선 혼인과 출산을 관장하는 설화 세계속의 신을 개입시켜 놀이를 벌이고 있는 상상적 놀이구조를 꼽을 수 있다. 연극에서 혼인을 관장하는 신 월하노인과 출산을 관장하는 신인 삼신할미가 극 진행의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역할이 다양해진다. 예컨대 삼신할미가 금산댁의 간병인이 되고 월하노인은 병원 청소부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금산댁의 꿈 속에서는 산신령이 되어 현몽하는 식이다. 이렇듯 현실과 꿈을 넘나들며 인간사를 주도해 가는 놀이성이 관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인간 심성의 보편성을 탐색하고 조망하는 작가의 통찰력을 꼽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 금붙이 마다하고 근본 하나 취하는 그런 혼인 한번 엮어 볼 참으로 장님청년 호영의 혼사에 나선 삼신할미와 월하노인은 훈훈한 인정미를 맛보게 한다. 두 주재신은 이 풍진 세상 손잡고 건너도록 인연을 점지하는 일, 청실 홍실 이어주는 건 할 수 있어도, 그걸 이을 만큼한 실을 뽑아내는 건 사람들 마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연분 이어주는 것도 중하지만 그것은 이어가려는 사람의 마음이 제일로 중하다고 역설한다. 작가는 결국 인간은 누군가에게 한쪽 손을 내밀어야 하는 나약한 존재임과 동시에 나머지 한쪽 손을 누군가에게 내밀어 줄 수 있는 강한 존재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 즉, 사랑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이라는 고전적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는 이를 구수한 입담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가의 뛰어난 언어감각을 꼽을 수 있다. 즉, 대사의 리듬감을 살려 즐겁고 듣기 편한 운율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입부로부터 시작해 도처에 무궁무진하다. 판소리 무가 등 우리 연극의 원형에 연원을 두고 언어를 늘리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또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어들을 꿰어 무대언어로 생생하게 수놓고 있는 솜씨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도입부에서 월하노인과 삼신할미가 주고받는 구수한 입담은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경박한 성풍속은 물론 유전자 조작으로 생명을 포태하는 생명공학까지를 싸잡아 풍자와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한다. 그러나 숨은 뜻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심성은 부드럽기만 하다. 미운 놈 밉다 하고 팽 돌아서지 말고, 하나하나 숟가락 드는 법두 가르치고, 똥오줌 누는 것두 가르치고, 부모가 자식에게 세상살이 가르치듯이 마음 돌리는 것두 가르쳐 엇나간 세상을 바로 잡아 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현실의 무대에 되살려 놓고 상처투성이의 세상을 치유하려 한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의 형상력은 뒤쳐진다. 원작의 놀이성과 신명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곡의 계절적 배경이 되고 있는 늦가을에서 초봄까지의 계절의 순환이 함축하고 있는 신화적 발상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즉 쇠락에서 소생에 이르는, 비애를 딛고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원작의 의도를 충분히 녹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구조에서 조명의 역할이 세심하게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방도시의 시장통, 병실과 병원대합실, 석승의 사무실, 판수의 집, 덕충의 닭집 등 몇 개의 장소로 구획된 공간은 대극장 무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중앙무대가 자주 비어 있던 것은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개안수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마주친 험악한 세상과 거리풍경에서 슬라이드를 활용한 콜라쥬 방식은 효과를 내고 있다.

돌팔이 판수 역을 능란하게 소화해낸 안석환, 사기꾼 석승역의 유태균의 노련한 연기가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삼신할미 역의 차회가 맛깔나고 구성지게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는 데 비해 월하노인 역의 공호석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작품 전체를 총괄하는 삼신할미와 월하노인의 연기가 무르익어야 연극이 신명과 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금산댁 강선숙이 제몫의 연기를 해내고 있다.

신예극작가 장성희의 활약과 더불어 재미와 잔잔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극단 반딧불이의 상서로운 출발은 또 다른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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