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국악

홍보력과 기획력이 빚어낸 국악의 밝은 미래
- 1998 여름 KBS 국악 청소년음악회 ‘고정관념, 싫어’ -

이인원 음악평론가

요즘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예전처럼 야단만 쳐서는 안된다. 어른들이 보기에 하찮은 것일지라도 무언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창의적인 생각들을 내놓을 때는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것이 좋다. 칭찬 몇마디에 아이들은 큰 자신감을 얻고 더욱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가 부쩍 늘었다. 대부분이 양악연주회이지만 가끔 국악연주회도 눈에 띈다. 이들 공연의 특징은 청소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한 해설이 덧붙여지고, 연주곡목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곡들로 선곡한다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보다 칭찬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듯 어려운 음악을 억지로 주입시키기 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음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이나 국악이 갖고 있는 음악세계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클래식이나 국악에 익숙치 않은 청소년들을 이들 음악에 친근하도록 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과감한 기획과 홍보가 만들어낸 공연

지난 7월 22일 KBS홀에서 열린 KBS국악관현악단의 ‘1998 여름 KBS 국악 청소년음악회’ 역시 일상적인 연주회양식을 벗어나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설을 덧붙이고 또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가수들을 출연시켜 국악과 협연하도록 하는 등 청소년관객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이날 객석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지 못해 되돌아 갔다. KBS 국악관현악단 연주회에 이처럼 많은 관객이 온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관객을 끌어 모으는 것은 그 악단의 기획력과 홍보력에 좌우된다. 이번 공연은 국악과 대중가요의 만남이라는 과감한 기획과 KBS라고 하는 방송매체의 홍보력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KBS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이 대부분 관객동원에 실패했던 이유는 관객의 관심을 끌어낼 만한 기획력의 부재에 주원인이 있다. 일반 대중의 음악적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연기획은 애초에 대중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특히 국악의 경우는 서양음악에 비해 그 저변이 빈약하기 때문에 특출한 기획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공연의 기획의도와 주 대상층이 확실해야 하며, 홍보와 매표전략도 확실해야 한다. KBS 국악관현악단의 경우는 이같은 기획력의 부재로 연주자들의 높은 기량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감이 있다. 따라서, 이번 연주회에서 보인 과감한 변신은 KBS 국악관현악단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이번 공연은 1,2,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국악기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악기별로 새로 편곡되거나 작곡된 곡들을 주로 선보였고, 2부에서는 짧은 타악그룹 ‘푸리’와 그룹사운드 ‘패닉’의 합동공연으로, 3부에서는 그룹사운드 ‘업타운’과 타악그룹 ‘푸리’, 그리고 국악관현악단의 협연무대로 진행되었다.

국악의 선입관 버릴 수 있었던 공연

국악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음악으로만 알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선입관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요 「과수원길」이나 가요 「숨은 그림찾기」 「내일을 위해」 등이 국악관현악으로 연주될 때 관객들은 함께 따라 부르거나 박자를 맞추면서 국악에 대해 가졌던 거리감을 허물어 버렸다.

기존 동요나 가요를 국악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국악연주회면 국악을 연주해야지 왜 다른 음악을 연주하느냐는 생각이 바로 그것인데 지금이야말로 이같은 좁은 소견을 깨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음악사적으로 볼 때 지금의 우리 국악에는 인도나 중국의 음악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어떤 부분은 악기로 들어와 있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음악자체가 그대로 또는 우리식으로 변형되어 들어와 있다. 외국의 음악도 이처럼 우리식으로 수용해온 마당에 지금 현재 우리들에 의해서 불려지고 있는 동요나 가요를 국악으로 편곡해서 불렀다고 해서 비판받을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좋은 곡이 있다면 국악식으로 수용해서 국악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다만, 이번 편곡에서 드러나듯이 기존 동요나 가요의 국악 편곡기술이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앞으로 연구를 더 해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편곡에 있어서 기존의 음악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는 최소한 노래의 앞이나 뒤, 또는 간주 부분만이라도 국악적인 특성이 살아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중가요와 국악관현악의 협연에 있어서 두 음악의 특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국악관현악단이나 사물의 역활이 그룹사운드와의 협연에 있어 극히 보조적인 수준에 머물러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협연에 있어서는 서로간의 음악적 양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두 음악의 특성이 모두 살아날 수 있도록 치밀한 계산이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들은 계속돼야 한다. 국악의 대중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대중가요가 국악식으로 만들어져 불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중가요는 알다시피 노래말만 우리말일 뿐이지, 그 음악적 구조는 서양음악이나 일본음악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전통가요로 불려지는 소위 ‘뽕짝’가요는 일본의 엔까음악과 음악구조가 같고, 현재 유행하는 랩이나 힙합 등도 모두 서양 대중음악의 하나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중가요들이 국적이 불분명하다보니 외국음악에 대한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KBS 국악관현악단의 밝은 미래

대중가요의 이런 외국음악에 대한 모방이나 표절구조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대중가요가 국적을 되찾는 길 밖에 없다. 국적을 되찾는다는 것은 바로 대중가요에 우리의 음악적 전통이 녹아 있는 국악의 음악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하여 새로운 음악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패닉’이나 ‘업타운’ 등 인기그룹들이 이러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의 대중가요가 국적을 찾게 되는 날도 크게 앞당겨질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또하나 주목받은 것은 국악타악그룹 ‘푸리’의 존재다. 원일과 민영치, 장재호, 김웅식 등 네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뛰어난 연주력과 독특한 음악구성력으로 이미 사물놀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느낌이다. 이들은 풍물이나 무악의 가락을 따다가 재구성한 사물놀이의 진부함에서 벗어나 리듬과 장단을 정교하게 해체하여 이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 전개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음악을 창출해 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토속음악 요소를 도입, 음악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음악에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음악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이들이 연주할 때 만들어 내는 다양한 몸짓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관객들을 음악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들의 공연모습은 머지않아 김덕수 사물놀이가 일으킨 돌풍을 뛰어넘어 국내외에 대단한 음악적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KBS 국악관현악단의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연주시간이 2시간을 초과하여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고, 또한 일부 연주에 있어 리듬감이 떨어지고 무거워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인기 타악그룹과 대중가수를 출연시키는 과감한 기획으로 관객동원과 관객들의 국악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는데 일정부분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KBS의 방송매체가 갖는 막강한 홍보력과 함께 이같은 기획력이 계속 뒷받침 된다면 KBS 국악관현악단의 앞날도 밝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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