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음악

합창, 음악의 시작이자 그 마지막

홍승찬 음악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오페라 무대의 주역가수와 직업합창단의 단원, 아마도 이들은 대부분의 성악도들이 머리 속에 그리는 미래의 자화상들을 우선순위로 나열한다면 그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중간쯤 어디엔가 합창단 지휘자도 자리잡고 있을 터이지만,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에 비한다면 그 차례가 훨씬 뒤쳐져 있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성악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오페라 무대를 동경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차선책으로 합창단을 찾고, 합창 지휘까지 생각한다는 데 있다. 외국의 경우처럼 오페라 극장마다 전속합창단이 있고 그것이 직업합창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오페라보다는 또 하나의 연주회 무대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 직업합창단의 현실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일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발전을 위해 남다른 뜻을 품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성악도들이 오페라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오페라 공연과 합창단 공연, 어느 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당장 객석의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오페라를 보는 이들의 상당수가 성악도들인 반면, 합창공연에서는 성악도들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의 많은 직업합창단들은 그 나름의 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데, 그것은 다분히 단원들의 발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즉, 대부분이 오페라에 적합한 발성을 익혔기 때문에 합창에서 필요로 하는 발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오페라를 향한 집념들이 사방으로 뻗쳤는데도, 우리의 오페라 무대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토양을 줄 수 있는 아무런 대책과 전망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인데, 그 하나는 예술의전당이 마련하는 오페라 무대에서 찾을 수 있었고, 또 하나는 ‘한국 합창 대제전’에 참여한 대구 시립합창단의 공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오페라 활성화의 가능성 보여준「코지 판 투테」 공연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있었던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공연은 오디션을 통해 대거 신예들을 기용하고 훈련시켜 성공을 거둔 무대였고,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오페라 활성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무대였다.

오디션으로 뽑힌 12명의 주역들이 뛰어나면서도 고른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든든했다. 특히 모차르트의 오페라처럼 서로의 역할과 호흡이 이렇게도 얽히고, 저렇게도 얽히는 흐름에서는 어느 한쪽만 기울어도 곤란한 법인데, 당장은 그런 불안감을 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기량을 갖춘 신예들이 많다는 것이 입증됨으로 해서 앞으로는 오디션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오페라 제작 방식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작지만 깔끔했고, 이것이 또한 우리 오페라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비교적 작지만 적절한 무대를 찾아 가능한한 오랜 기간 공연하는 것도 바람직하게 보였고 원형 회전판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 장치전환의 폭을 최소화한 ‘절약형’무대장치의 아이디어도 흥미로웠다. 오페라의 내용이 황당한 것인 만큼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의 설정에서도 좀 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도 하게 되고 결국 이런 생각은 창작 오페라에 대한 갈증으로까지 이어졌다.

대체로 창작 오페라에 대한 염원은 오페라 대본의 번안작업과 가사전달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의 경우는 좀 달랐다. 비록 번안 오페라가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가사전달의 문제, 음악과 언어의 일치문제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고 해도, 비교적 근사치의 해답을 찾은 작업이었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업이었다. 이번 작품을 번안하고 연출한 조성진 스스로도 밝혔듯이, 여러차례의 반복작업과 수정을 거쳐 얻은 대본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임헌정이 만드는 오케스트라 소리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이것이 모차르트라서 한층 더 빛이 나는 듯했고, 오페라 무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오케스트라의 분발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안내책자를 살펴 보니 ‘예술의전당 섬머페시티벌 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 섬머페스티벌 합창단’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사정상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몸담고 있는 부천시향이 주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합창단만큼은 이번 공연을 위해서 따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비록 합창의 역량을 제대로 살필 만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잠시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흐뭇했고, 뒷전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들 즐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우리나라 합창단의 모범 보여준 대구시립합창단

8월 11일부터 열흘간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렸던 ‘한국 합창 대제전’에 참여한 대구 시립 합창단은 오랜 세월 다듬어서 새롭게 만들어진 그들 나름의 확실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가 남달리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리 작곡가가 만든 우리의 합창음악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믿음직스러웠다. 게다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합창단이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지표가 될 만한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커다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만 모았다고 하지만 그 구성은 너무나 다채로웠고 그 각각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합창음악의 뚜렷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12일 있었던 공연에서 그들은 류건주의 「사모곡」과 「엄마야 누나야」를 시작으로 이철웅의 「축복」과 역시 이철웅이 편곡한 대중가요 「희망사항」을 연주했고 진규영의 소프라노, 테너, 타악기, 혼성합창을 위한 「예언」중 제 2곡 「진노의 날」과 제 3곡 「어둠은 걷히고」에 이어 이건용의 「AILM」 미사곡 중 「거룩」을 들려 주었다. 놀라운 것은 이 다양한 곡들이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축적해온 결과물들이라는 것이고, 또한 그 대부분이 대구 시립합창단의 위촉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어느 곡 하나 까다롭지 않은 곡이 없었고, 그 까다로움이라는 것이 곡마다 종류와 정도를 달리하고 있었지만 듣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지금과 같은 대구 시립 합창단의 모습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안승태와 같이 능력있는 지휘자가 일관된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오랜 시간 갈고 다듬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합창지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은 물론이고 말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한다. 드물게도 이 세가지를 다 알고 있는 지휘자가 바로 안승태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건용과 진규영이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대명사로 자리잡았고 류건주와 이철웅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합창은 오페라를 하다가 안되면 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의 기초, 시작이자 또한 그 마지막이다. 노래가 있고 화음이 있고 서로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며, 그 어떤 종류의 사람도, 음악도 그 안에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좋은 합창곡을 쓸 수 있기에 이건용에게서, 혹은 진규영에게서 「코지 판 투테」를 능가할 만한 수작까지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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