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미술

그림을 그린다는 것과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 ‘조선후기국보전‘ ‘공산미술제’ ‘물의 풍경전' -

박영택 미술평론가, 추계예대 교수

작가란 무엇인가? 그는 기존의 모든 권위를 의심하고 고정관념을 뒤집는 창의적인 시각을 지닌 자이다. 모든 것을 거는 작가로서의 태도와 예술가라고 하는 총체적 인간이 되고자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새삼 작가란 존재를 떠올려본다. 그것은 그만큼이 지루하고 답답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난감하기에 그럴 것이다. 그만큼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간다. 구제금융시대에 물난리까지 겹쳐진 지난 7월과 8월에 걸친 전시들은 그래서 다소 초라하다. 물론 여름철은 피서와 하한기에 따라 전시가 그만큼 줄어들기도 하지만 기획전시가 대폭 줄었고 작가들 역시 개인전이 부담이 되어 가는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 같다. 그만큼 공간의 위기, 기획전시의 위기가 문제로 다가옴과 동시에 이에 대한 적절한 전술적 고려들이 필요해 보인다. 눈에 들어온 몇 개의 전시로는 호암갤러리의 ‘조선후기국보전’이 단연 우선한다. 그와 함께 올해로 5회를 맞는 ‘공산미술제’, 갤러리 상과 갤러리 사비나 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물의 풍경전’ 등이 뒤를 잇는다.

조선후기국보전

‘조선후기국보전’은 호암미술관이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마련한 기획전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시리즈의 세번째 전시다. 우리 전통문화와 대미를 장식한 조선 후기 미술을 집중 조명하고 있는 이 전시는 조선 왕조의 문화역량을 응집해 보여준다. 모두 150여 점이 엄선되어 전시되었는데 궁중미술, 서화, 도자기, 나전칠기, 불교미술, 여성의 공간, 남성의 공간, 천문지리의 총 여덟 마당으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회화위주의 전시이기 보다는 조선후기 문화의 다면성을 골고루 엿보게 하려는 배려가 깔려 있다.

조선 후기란 엄밀히 말해 숙종 연간부터 영·정조를 거쳐 순조 연간(1820년 경)에 이르는 약 120년간을 말한다. 이 당시는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했던 시기이자 이른바 조선후기 진경문화가 꽃피던 시기이다. 성리학과 실학이 사상적 기반으로, 회화에서는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발달하고, 도자기에서는 한국적 문양과 다양한 기형이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문예부흥의 기운은 생활용품인 목기구, 금속공예, 민화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쳐서 격조높은 생활의 미를 창출하였다.

이번 전시는 이 후기와 말기를 아울러 보여준다. 과연 조선 후기의 문화적 특성이 이전 시대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가 관건이었다. 주자 성리학의 이념을 토대로 중국문화의 수용과 중국풍에 머물렀던 초기를 지나면서 집권 기득권층이 부패하고 무능해지는 동시에 이런 흐름이 임란을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대체되면서 후기는 시작된다. 아울러 이 세력들은 율곡철학, 즉 조선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 고유색을 드러내며 이를 추구하고자 했다. 명나라 멸망 이후 여진족이 점령한 중국을 더 이상 중화로 인정치 않고 중화의 이상인 성리학적 예치의 질서를 고수하는 유일한 나라인 조선에 대한 국가적, 문화적 자부심이 불거진 것이다.

당연히 그림의 화제가 우리 주변의 풍경이 되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진경산수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의 핵심은 단연 겸재, 단원의 그림이고, 뒤를 이어 추사의 세한도, 서예 등이다. 후기에 속화의 등장, 진경산수의 발생, 문인화풍이 유행되었는데 이는 이른바 리얼리즘의 시대라 불릴 만하다. 속화는 현실속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며 진경산수는 관념산수가 아니라 실경에 속해서 그 아름다움과 감동을 담아낸 것이며, 문인화풍이란 단순히 그 형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후기미술의 특징에서도 여전히 동양적 자연관, 세계관이 우리의 소박하고 해학적인 미의식과 만나 이루어진 그 고졸하고 편안한 미감으로 뒤덮힌 그림과 목공예에서 단연 부각된다. 자연주의의 그 너그러운 선들, 군더더기 없는 예리한 격과 멋이 듬뿍 베인 것이 조선후기미술의 결정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시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선후기의 미술품들은 건실한 절제미를 추구하여 간결하고 단순한 조형성을 보이기도 하고, 또한 소박하고 여유로운 심성에 따라 대담하고 해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날카로운 미적 감각을 지닌 것이 당시 양반들이었음도 새삼 놀라웁다. 이는 다름아닌 삶의 균형을 잡아 나가려는 날카로운 의식의 소산인 셈이다.

그것이 그렇게 넉넉하고 해학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모양으로 나앉는 것이다.

물의 풍경전

무더운 여름날, 전시장은 은행 못지 않은 시원함을 줄 수 있다. 그곳에도 에어콘이 서늘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누구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전시장을 찾지 않는다. 전시장이란 그림을 보겠다는 의지 아래 찾아간 사람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같은 의지, 목적이 없이는 결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개방성과 폐쇄성이 함께 들러붙어 있는 장이 바로 전시장이다.

그런데, 지금 인사동에 위치한 두 곳의 전시장(갤러리 사비나, 갤러리 상)은 그림감상 뿐만 아니라 피서를 겸한 공간이 되었다. 물을 소재로한 다양한 작업들이 모인 ‘물의 풍경전’이 열리고 있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청량한 물줄기와 시원한 물소리를 접한다. 이 전시는 청소년을 위한 여름 특별 기획전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예술적 표현대상으로서의 다양한 물의 모습을 살펴 일상에 숨겨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한편, 청소년들의 과학적 사고의 증진 및 물의 소중함을 심어줌으로써 미래를 위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재인식 시킨다’는 만만찮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환경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생태학적 상상력’ 혹은 ‘녹색 감수성’을 미술을 통해 심어주려는 시의성을 지니며, 아울러 이 무더위에 걸맞는 전시가 된 셈이다. 전시 관람객을 청소년층으로 굳이 국한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네들에게 보이겠다는 의지 아래 기획된 전시이니 만큼 교육적 방점이 놓여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물과 관련된 과학적·환경적 정보를 사진과 일러스트를 묶어 놓는 전시가 보다 효과적일 텐데 그 교육적 의도를 이른바 순수미술의 제반 경향들을 망라해 전개시키려다 보니 사실 그 접점을 찾기 애매한 선에서 산만해진 느낌이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물’에 대한 생각이 워낙 다르고 그 표현방법 역시 다채롭다 보니까 의도된 배열(시간적 추이에 따른 물의 변화)아래 명료한 인식이 추려지는 선으로 보여지기에는 무리가 있는 전시가 된 셈이다. 따라서 물이 들어간 작업들을 맘껏 한 번 모아본 전시로 절충된 편이다. 물이란 소재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또 그 해석의 다양성이 그림보는 즐거움을 주는 한편, 재미난 여름용 기획전시가 되었지만 이런식의 모음이나 배열로 이루어진 전시란 미술행위에 예리한 각이나 층차를 너무 무디게 만들 수 있다. 단순히 공통된 소재, 외형적 유사성만으로 담아낸다면 실상 그 속에 깔린 그 무수한 차이와 이질성, 그 현격한 그림의 질적 차이 등을 지나치게 간과하게 만드는 힘이 너무 커보이는 전시가 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일단 이런식의 기획전시와 일련의 시의성, 행사성, 아이디어는 지루하고 정체된 화단, 우리 삶에 청량한 피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제5회 공산미술제

공산미술제란 동아갤러리가 주관하는 공모전이다. 모기업인 동아그룹의 경영난으로 마지막을 맞는 이번 5회 공모전엔 239명이 응모해 접전을 벌였다. 올해는 평면분야에 국한한 포트폴리오 심사였다. 16명의 입선작들이 걸린 전시장에는 동시대 평면화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나름의 사유와 그 방법론들을 성의껏 개진하고 있는 좋은 전시였다. 최근 평면회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속에서 이들의 발걸음은 희망적인 편이다. 그러나 16명 작가 전원이 그런 희망을 준 것은 아니다. 솔직히 전체적으로는 다소 실망스러운 전시였지만(최근 평면회화에 대한 이슈를 드러내기에는) 그중 몇 명의 작품에 위안을 받는 선이었다. 자신의 깊이있는 사유와 강렬한 체험을 진솔하게 작품으로 이전시키려는 고도의 지적이고 전문적인 노력을 필요로하는 것이 그림그리기이다. 그리고 회화는 ‘대상세계와 인간의 눈, 머리, 손의 긴밀한 피드백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자 ‘육체적 신경조직이라는 생산수단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개념과 표상이라는 재료에 가한 철학적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설치와 테크놀로지가 횡행하는 상황이 더욱 진전된다 하더라도 회화는 영원히 진행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육체를 지니고 대상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한에서는 이번 공산미술제에 선보인 젊은 작가들이 그런 문제의식에 좀더 충실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어 보인다.

목록으로

지난호보기

98년8월
98년7월
98년6월
98년5월
98년4월
98년3월
98년1월
97년12월
97년11월
97년10월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