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예술을 찾아서

한의 비탈을 넘어선 자유와 환희의 세계
- 승무, 그 이해와 계승 -

정병호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아시아 여러나라의 춤 중에서 손을 감추고 장삼으로 추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만 있다. 원래 장삼과 한삼은 중국에서 나온 것으로 노동을 하지 않는 양반계층의 예복이었으므로 이 옷을 입고 추는 춤은 상류계층에서 발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삼춤은 일본의 노(能)나 가부키(歌舞伎)춤, 중국의 경극(京劇)춤과 수수(水袖)춤, 그리고 우리나라의 궁중정재춤과 불교의 작법(作法)춤, 봉산탈춤(上佐춤), 학춤과 교방춤인 승무나 태평무에서 보듯이 다른 춤에 비해 아름답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장삼 소매자락의 폭이 넓지 않은 긴 장삼으로 추는 중국의 수수춤과 한국의 승무는 동양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을 나타내는 춤으로 평가된다.

승무의 유래에 대하여는 불교의 교리적인 입장에서 본 불교설과 민속적인 춤의 입장에서 본 황진이의 무용설, 파계승의 번뇌에서 기원한다는 설, 그리고 가면극의 노장과장에서 유래한다는 설 등 그 기원설이 구구하나 어느 것이 확실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존하는 승무를 검토하여 보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광대나 기녀들에 의해 그 춤이 이어져 왔고, 주된 춤사위가 기녀춤인 살풀이춤(수건춤)과 동질성(同質性)을 가지고 있다. 또한 춤의 형태가 의식성이나 종교성, 연극성, 놀이성이 전혀 담겨 있지 않고 완벽한 홀춤(獨舞)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승무는 조선후기에 광대(특히 중광대)들과 교방예술인(倡優 妓生)들이 이미 그 이전에 행하여졌던 사찰에서의 작법춤(나비춤과 법고춤)과 탈춤의 한삼춤에 영향을 받아 교방예술로 창조한 것이라 보아진다.

그러나 한말에는 교방청이 폐지되자 이들 창우와 기녀들은 기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들은 양반들의 잔치에 불려가 춤을 연희함으로써 오늘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승무의 춤사위 명칭이 판소리에서 쓰이고 있는 비디딤, 안가랑, 완자걸이, 대삼, 소삼, 잉어걸이 등과 같은 용어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승무는 살풀이춤과 같이 호남지방의 토호들이 주최한 사랑채에서의 소리광대(판소리꾼)와 춤꾼에 의해 발전된 예술이라 생각된다.

승무가 한(恨)의 예술이라는 점은 춤추는 사람이 천민이었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기도 하지만, 무복이나 북놀이, 그리고 춤사위(장삼춤)얼굴을 감추고 밑을 보는 자태 등에서도 알 수 있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이러한 것이 잘 표현되고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승무에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고뇌는 고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득히 안고 앞날을 기원하며 한의 비탈을 넘어서 장삼이 가지는 비상하는 기개로써 자유와 영원을 기원하는 춤임을 깨닫게 된다.

승무에서 춤옷은 불가의 승복과는 달리 기녀들의 미감(美感)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하나는 흑색장삼과 흰색치마(남자는 바지)와 저고리, 흰색고깔과 버선, 그리고 홍가사(붉은 띠) 등 3원색의 조화로 되어있고, 또 하나는 흰색장삼과 흰색치마(남자는 바지), 흰색고깔과 버선(남자는 행전) 그리고 홍가사 등 2원색의 대립을 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흑색장삼의 어두움 속에서 강한 인간의 의지와 같은 것을 느끼게 되고 흰색고깔과 버선에서는 밝고 맑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붉은 띠에서는 사랑과 정열을 느끼게 되고 고깔을 쓴 여인의 얼굴과 버선을 신은 자태에서는 성적 매력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악기의 편성은 피리, 대금, 해금, 북, 장구 등 삼현육각으로 편성되어 있고 반주음악은 처음에는 염불로 시작하여 다음으로 도드리, 타령, 자진타령, 굿거리 순으로 하다가 북놀이를 하고 다시 굿거리를 하여 끝을 맺는다.

승무의 기본적 춤사위는 살풀이춤의 춤사위에 바탕하고 있으나 이밖에 탈춤의 한삼춤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춤사위는 춤추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기본적인 춤사위는 장삼을 감는 동작, 장삼을 뿌리는 동작, 장삼을 걸치는 동작, 몸앞에서 장삼을 모으거나 여미는 동작, 장삼을 힘차게 휘젓는 동작, 장단과 장단 사이에 노는 엇박걸음, 자진걸음, 무거운 디딤, 연풍대 등이다.

승무의 춤사위에서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미적요소가 있는 동작은 첫째, 고깔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운 채 고개를 좌우 상하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고개춤이 있는데, 이는 고깔속에 보인 기녀의 가련하고 아리따운 모습을 때로 보이는 뜻이 담겨있고 둘째, 장삼을 휘젓는 동작은 한의 비탈을 넘어서 환희와 자유를 희구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셋째, 온몸이 정지상태에서 어느 한쪽의 장삼 끝자락만 손목으로 살짝 튀기는 것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함과 여백미를 나타내는 것이며, 넷째로 무거운 발디딤은 감정을 모으는 동작으로서 절도가 있는 무거움과 박진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다섯째, 다양한 뿌림사위는 원과 나선과 같은 곡선을 무수히 나타냄으로써 그 동작선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화려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뿌림의 동작은 고여서 맺힌 감정을 자유로이 풀어버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북놀음은 변죽과 구레(궁편과 각)로 강약조절을 하면서 많은 가락을 만들어 신나고 진취적인 자기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는 한을 풀어 환희와 자유를 획득하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승무의 미는 고깔, 버선, 홍가사의 선까지 고려하여 창조한 무복의 아름다움, 장삼동작의 다양한 선의 아름다움,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려는 환희의 북치기 등 3요소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승무를 정신적인 면에서 보면 인간적인 한과 기원적인 것이 바탕이 되어 그것이 자유와 환희의 세계로 승화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동작원리적인 면에서 볼때는 맺고 어렀다 푸는 감정표현과 정·중·동의 차원높은 조화를 이룩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승무가 창우 기녀의 창조물이라 한다면 그것은 억눌렸던 지난 시대의 한스러웠던 인간 본연의 애정과 낭만의 표현이라 할수 있으며, 일종의 몸부림의 발로라 할 수도 있겠다.

또한 외형미로 볼때는 곡선미가 돋보이면서도 그에 곁들여 우아미(優雅美) 중에서도 애상미(哀傷美)에 속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승무는 인간의 희비를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이지적(理智的)인 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승무가 동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춤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춤이 중국춤과 일본춤에 비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홍보의 부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미학적 연구가 부족하여 그러하다.

사실상 승무는 본질적으로 고전무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고전무용다운 형식이 정립되지 못하여 고급예술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무대공간의 넓이와 무대의 거리, 조명과 악사들의 위치, 그리고 북의 위치와 춤꾼과의 거리, 춤사위의 표현방향과 관객과의 관계, 적절한 연기시간의 조절, 추임새 등의 형식들을 정립하여 승무를 고급예술로 격상시키는 창조적 계승이 필요하리라 본다.

목록으로

지난호보기

98년8월
98년7월
98년6월
98년5월
98년4월
98년3월
98년1월
97년12월
97년11월
97년10월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