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장

조용함 속에 움직인 획기적인 행사들

이선실 르포라이터

지난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이었다. 정부와 각 단체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연초부터 대대적인 행사들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적 위기에다가 뜻하지 않은 수해로 이재민까지 발생하자, 광복절 기념 행사들은 축소되거나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광복절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 것에 비하면, 올해는 ‘건국 50주년’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초라한 광복절 행사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문화의 발전을 반추할 수 있는 몇몇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회가 기획된 것은, 이번 광복절 문화 행사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기획, 형식의 시도 돋보인 연극공연

우선 국립창극단은 ‘정부수립 50주년 기념공연’ 및 ‘국립창극단 제 97회 정기공연’으로 「백범 김구」를 무대에 올렸다. 지난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 이번 공연은,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그 기획에 어울리는 규모와 새로운 실험정신이 발휘된 무대였다.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의 일대기를 김명곤 씨의 연출로 대형 창극으로 재조명한 이번 작품은, 국립창극단의 명창들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짜임새있는 연주로 기존 창극의 한계를 뛰어넘는 웅장한 무대를 구현했다. 또한, 국립무용단의 화려한 무용에, 국립발레단까지 가세하여, 창극 공연에서는 보기 드문 발레의 기법까지 동원된 대규모 종합극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김구 역에 왕기석 씨, 김구 어머니 역에 국립창극단 단장인 명창 안숙선 씨 등 총 200여 명이 참가해 열연했으며, 통일의 배를 띄운다는 의미에서 무대를 배의 형상으로 꾸민 것이나 극중 다큐멘터리 기법과 마당극 형식을 도입한 것도 획기적인 시도였다. 특히, 23곡이나 되는 합창은 장려한 효과를 높여 주었다.

「백범 김구」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가장 한국적이며 동시에 다양한 시대적 공연물을 올려 우리 공연문화 전반의 발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에 어울리는 완성도 높은 무대였으며, 우리 공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백범 김구」와 함께 광복절을 장식한 또 하나의 공연은, 극단 민예극장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및 ‘극단 민예 창단 25주년’을 맞아 기획한 「아! 정정화」이다. 극단 민예는 “갈등과 반복의 역사를 청산하고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여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의 잔다르크로 일컬어지는 여성독립운동가 정정화를 재조명하는 작품을 올린 것이다.

지난 8월 13일부터 8월 23일까지 연강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주제가를 삽입한 노래극 형식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아! 정정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일제시대, 임시정부의 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내, 정부수립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건국 50주년이나 광복이라는 특정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늘 식상한 소재를 택해온 우리 문화계에, 정정화라는 새로운 인물을 무대에 올린 것도 소재 발굴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기획으로 평가된다.

양적으로 풍성하고 다양했던 음악회

광복절 기념 연극공연이 예년에 비해 양이 줄어든 것에 비해 음악회는 양적으로도 풍성하고 다양한 공연이 열렸다.

광복절 당일 열린 행사로 가장 주목받은 공연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주최로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광복절에 부르는 민족혼의 노래-아리랑 축제’였다. 팔도의 아리랑이 모두 선보인 이번 공연은,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총망라하는 무대였다는 의미가 있으며, 관객들의 호응도 높았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제4회 서울 관악제’가 열렸다. 국가의 경제적 위기로 인해 정치, 사회, 문화예술 등 많은 분야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건국 50주년을 맞아 우렁찬 나팔소리가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를 바란다는 취지에서 열린 이번 관악제는, 염광여자정보산업공업고등학교 관악대의 「코리아 환타지」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한국 Horn 연구회, 린나이 콘서트 밴드, 서울 Trompeten 앙상블,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관악 협주단 등이 참가해, 로시니, 차이코프스키, 베버 등을 연주한 이번 공연은, 다양한 레퍼토리와 관악기의 웅장한 음색이 어울어져,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독특한 무대였다.

한편, KBS 홀에서는 행정자치부 주최, KBS 주관으로 ‘제2의 건국 나라사랑 국민화합 음악회’가 열렸다. 베토벤의 「합창」과 함께 웅장하게 막이 오른 이날 무대는 소프라노 조수미, 대중가수 조영남, 인천-부천 연합 합창단, KBS 교향악단-팝스오케스트라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국민화합의 무대를 연출했다.

그러나 15일에 개최하기로 예정되었던 북한산 정상 백운대의 ‘산상음악회’와 시가 퍼레이드 등은 홍수 피해로 인해 연기 되거나 취소가 되어, 정작 시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세기의 역사 되새겨 본 전시회들

광복절 기념 전시회도 다양하게 열렸다. 광화문 4거리에서는 ‘50년 사진전’이 개최되었고,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박영효 가옥에서는 ‘태극기 옛모습전’이 열렸다. 충남 독립기념관에서는 개관 11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전시회 중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 50년-우리들의 이야기’전이다. 8월 15일에 개막되어 9월 25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회에는 2천여점에 이르는 사진자료와 3백여 건의 문서 자료, 그리고 5백여 점의 실물자료와 20여 대의 영상기기가 동원되어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되살리고 있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초대형 연표이다. 대한민국 50년의 발자취가 한 눈에 드러나는 이 연표와 함께 각 시대별로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1호 물품들이 관객의 발길을 잡는데, ABC 포마드, 공병우 타자기, 원기소, 아리랑 담배, 최초의 주민등록증 등 추억이 어린 물건부터, 최근의 64MD램, 장갑차 모형 등 최근 우리나라의 발전상까지, 그 족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부수립, 6·25 전쟁, 전쟁의 폐허로부터 근대화, 민주화, 국제화의 시련 등 시대별로 꾸며진 각 관에서는 사진, 실물 자료는 물론이고, 디오라마(복합연출)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모형으로 재현하기도 했으며, 멀티 큐브나 음향 연출 등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전시회를 입체적이고도 실감나게 연출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 전시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한편, 무용계에서는 28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창작 서사 발레극 「우리들 시대의 노래」를 무대에 올렸다. 안익태의 「코리아 환상곡」에 맞춰 우리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풀어낸 이번 공연은, 「코리아 환상곡」 전곡을 무용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발레, 한국무용, 현대 무용 등 장르의 구별없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오늘의 춤’으로 작품을 구성한 것이 이번 공연의 특징이다.

건국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광복절, 그러나 문화행사에 있어서, 양적으로는 예년에 비해 오히려 빈약한 느낌마저 있다. 계속되는 경제적 위기와 이재민의 발생은 문화행사마저 위축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 새로운 소재와 형식의 발굴과 시도를 한 작품들이 열려 그나마 질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 이번 광복절 문화 행사의 성과로 보여진다.

그러나, 건국 50주년이 전 국가적인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념행사가 서울 지역에만 집중되었다는 점과 공연, 음악회, 전시회 등 몇몇 장르로만 그 행사가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20세기의 대미를 장식할 내년에는 보다 새로운 시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 행사가 개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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