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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수집가를 찾아서
정의진 르포라이터
공연예술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무대와 객석의 직접적이고 일시적인 교감, ‘아우라aura’를 생명으로 하는 공연예술은 그래서 ‘일회적 현존성(一回的 現存性)’으로 특징지워진다. 한편의 작품이 똑같은 판박이 공연으로 재현될 수 없는 이유도 이러한 공연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한바탕의 일회성 놀이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한번으로 끝나는 공연은 언제나 구체적 흔적을 남기게 되며,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공연의 구성과 내용을 관객으로 하여금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제작된 프로그램과 포스터 등이 그것이다. 객석을 떠나면서 관객이 들고 나온 이 공연자료들은 그러나 대부분 휴지조각으로 둔갑하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남들이 그냥 지나쳐 버린 이 공연예술자료에 특별한 관심과 애착을 고집한 사람들이 있다. 공연예술 프로그램 수집가, 김종욱 선생이 바로 그런 사람들 중에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선생은 이미 1981년 예술의전당에서 당신이 소장하고 있던 공연·영상예술자료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한 바 있으며, 지금은 얼마전 문을 연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서울종합촬영소 영상지원관 ‘영화문화관’에서 영화 포스터 및 전단 등의 자료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 전시 된 자료 중 ‘세계 미증유한 활동사진 광고’라는 제목의 전단이 눈에 띄었다. 이 한글로 쓰여진 노란색 전단은 ‘프랑스 고몽 빠데사가 1907년에 제작한 영화기계 판매광고’ 전단이다. 선생은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무려 3만여 점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이 중 연극관련 자료가 7,000점, 영화가 15,000점, 그리고 음악·무용이 1만점 정도로 대략 추산된다고 한다. 이 방대한 문화예술자료는 프로그램, 포스터, 전단 뿐만 아니라 공연사진자료와 스틸(영화관련 사진자료), 입장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시기적으로 일제시대부터 ’90년대 초까지 무려 3세대에 걸친 자료들이다. 선생이 공연예술과 영화 자료들을 수집하게 된 동기는 의외로 단순하였다. 선생이 단국대 공연예술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부터 이 분야 자료들을 접하다 보니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되었고, 마침내 개인적인 수집에 나섰던 것이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취미수집이 하나하나 자료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소홀히 다루어진 자료에 대한 의무수집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제 선생은 자료수집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수집자료를 토대로 각 분야의 공연예술사를 정리·발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생은 이미 ‘광복 이후 6·25직전까지의 공연예술 약사’ 를 『문화예술』에 개재한 바 있다. 자료수집은 주로 서울 청계천, 황학동, 장안평, 인사동에 있는 고서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자료수집을 위해 선생은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했으며 대부분 경우는 ‘나까마’라 부르는 소개인들을 통해 구매를 했다. 어떤 때는 대구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선생은 자료수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들었다. ‘환장하게’ 욕심난 물건이 나타나면 빚을 내서라도 물건을 구매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식구들에게 아직까지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이 많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자료는 아름다운 그림과 같이 벽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감상하는 예술품이나 장식품은 아니다. 공연제목, 공연일자, 공연장소, 출연진과 스텝진, 주최 혹은 후원자 등이 망라된 이 자료는 공연예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사료이다. 공연예술자료는 무엇보다도 공연예술사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물증이다. 또한 이는 예술사적으로 불투명하고 미비한 부분을 밝혀내고 정리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공연예술자료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와 가치가 이 점에 있는 것이다. 현재 방대한 분량의 각 분야의 자료를 정리하며 공연예술자료집을 준비하고 있는 선생의 바램은 소박하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격언을 예로 들면서 선생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이제 개인 차원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료의 영구보전과 활용을 위해 선생은 자신의 소장 자료 전부를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러한 보전과 활용이 가능한 자료공간이 제공된다면, 선생은 얼마동안 그 공간의 일원으로 일하고 싶고, 그 기간이 지나면 기증된 자료를 남기고 아무런 조건없이 물러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제 이런 소중한 문화예술자료들이 개인의 품을 떠나 정부 차원으로 돌아와 보관·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래서 누구나 이용할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게되기를 바란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연예술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곳은 문예진흥원 예술자료관이다. 1979년 개관한 문예진흥원 예술자료관은 개관 이후에 공연되었던 자료들을 수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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