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지방자치 단체장의 문화예술 정책 구상 - 제주도>

다가올 섬문화시대를 이끌어갈 종주의 섬으로

우근민 제주도지사

우리 제주도는 섬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계절 아름다움이 흘러 넘치는 자연, 선사시대부터 맥박치며 흘러온 아득한 역사, 바람부는 땅을 풍요롭게 일구고, 격랑 심한 역사를 슬기롭게 헤쳐 오면서 엮어낸 전통문화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은 말 그대로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이다.

성스러운 민족의 영봉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갖가지 동·식물이 살아가는 수풀과 계곡, 형형색색으로 빚어진 천연 예술품인 바위와 동굴, 울쑥불쑥 단아하게 생긴 기생화산인 ‘오름’과 그 ‘오름’들의 정상에 있는 분화구들.

그 뿐만 아니다. 대평원처럼 탁 트여 펼쳐진 목장과 초원, 막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절벽과 시원스레 쏟아지는 장엄한 폭포수, 질펀한 백사장과 그림같은 섬들. 그 속에서 1,800여 종의 온대·한대·열대 식물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마을의 형성과 산업구조, 제주인들의 생활양식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제주문화가 태어난 토양이 되었다.

하늘이 내려 준 대자연의 향연과 더불어 아드막한 역사가 선사시대부터 유장하게 이어지며, 제주섬을 지켜 오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역사 박물관이다.

제주의 역사가 선사시대부터 열렸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증언하고 있다. 1만년전의 유적인 빌렛못동굴 유적을 비롯해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형성된 고산리 유적, 곽지패총, 고인돌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옛날을 증언하고 있다.

이어서 1천년의 탐라국 시대가 전개된다. 독립 부족국가인 탐라국은 고려숙종 10년(1105년)까지 내려왔다. 개국 신화의 발상지인 삼성혈, 집단마을 형성 주거지인 삼양동 유적, 삼신인이 삼공주를 맞아 결혼했다는 혼인지 등 여러 유적들이 이 시대의 증인으로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중앙집권제 아래 들어가면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변방의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 문화의 유산들은 계속 태어났다. 외침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한바퀴 둘러 쌓았던 환해장성을 비롯하여 삼별초의 항몽유적지, 진성과 읍성들, 봉수대와 연대, 제주목관아지, 향교와 연북정 등 헤아릴 수 없는 문화유산들이 오늘의 문화재가 되었다.

현대사에 이르러서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성된 모슬포의 전적지와 6·25 때의 제1훈련소 터들도 굴곡 심한 제주사의 자원으로 생생히 숨쉬고 있다.

제주도는 움직이는 민속박물관이다. 제주의 자연환경과 역사가 상호작용하면서 이루어 놓은 제주문화의 특성은 도서문화성, 고유문화성으로 집약된다.

도서문화성은 섬이라는 지리 풍토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그 조건속에서 발달해 온 문화의 특성을 뜻한다. 강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밭돌담을 비롯한 돌의 문화유산들, 잡곡 경작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농경 문화유산, 테우(뗏목), 해녀 등으로 상징되온 어업 문화유산, 게다가 방목이라는 특성을 지닌 축산문화는 제주만이 지닌 자산이다.

고유문화성은 제주도가 중앙문화의 영향을 제일 늦게 받은데서 온 문화의 특성을 말한다. 이국적인 언어인 제주어, 구성진 민요, 산천과 고을마다 얽힌 신화와 전설들은 고대 문화성이 잘 보존되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집안의 평안을 비는 가신신앙, 마을의 화평을 기원하는 마을신앙, 갈옷으로 대표되는 의생활, 아늑한 정취어린 초가집들, 향토맛이 풍기는 음식, 벌초와 영등굿, 신구간 등의 세시풍속도 제주문화의 특성을 읽을 수 있는 무형의 문화유산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문화도 제주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성산일출축제와 한라문화제, 한라산 눈꽃축제와 봄꽃 대축제, 억새꽃 큰잔치와 들불축제 등의 축제들도 제주만의 독자적 성격을 띠고 문화관광 축제로 그 틀을 잡아가고 있다.

가장 제주적인 문화를 세계적인 자원으로

이러한 제주의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이야말로 21세기 동북아의 거점도시로 웅비하게 될 제주도의 잠재자원들이다. 그러므로 제주의 역사·전통·문화의 뿌리를 캐어 내고, 구슬처럼 꿰메어 보물화하는 작업이야말로, 100만 제주인의 자기신원을 확인함과 아울러 제주문화의 우수성을 내외에 떨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제주도정은 가장 제주적인 문화를 가장 보편적인 세계적 자원으로 가꾸어 가기 위해 ‘문화예술의 진흥’을 도정 방침으로 정하여 다양한 방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새로운 제주문화예술진흥의 정책의 기본틀은 문화의 부가가치 창출에 두고 있다. 이를 구현할 기본적 추진과제는, 제주 예술인들이 활기있는 창작활동을 증진시키는 ‘예술문화 창조력의 제고’, 제주도민들의 수준 높은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시키기 위한 ‘생활문화환경의 조성’, 역사와 전통의 맥을 특성화 하기 위한 ‘문화유산의 자원화’, 문화예술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문화예술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에 역점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이러한 목표 아래 분야별로 심도 있는 시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문화예술진흥을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먼저 2000년부터 2009년까지의 제주문화예술진흥중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실천과제를 목록화 하고자 한다.

제주문화발전을 민간주도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제주문화진흥 재단을 설립할 방침이다. 문화예술의 재정 확충과 운용의 효율화를 위해 순수문화예술예산의 1%이상의 단계적인 확대와 문화예술진흥기금의 확대 조성, 민간부문의 문화 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메세나 제도를 만들어 나갈 구상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제주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탐라국 시대사 정립 및 제주사 년표 작성’ 등의 학술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화유산을 보존·정비하고, 관광자원화하는 방안도 다양하게 추진해 나갈 것을 구상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성읍민속마을을 비롯한 121개소의 문화재를 단계적으로 정비함과 아울러 항몽유적지의 사적 공원화, 삼양유적지의 도심지 역사공원 조성, 모슬포 전적지의 국방기념관 건립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역사의 숨결을 되살리고, 문화관광 코스로 정해 관광객들이 제주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제주시의 도심지를 문호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주요한 과제이다.

제주의 대표적인 사적지인 삼성혈과 제주도 민속자연사 박물관, 관광민속관, 제주도 문예회관을 연계한 문화관광 벨트화 사업을 추진해서 야간관광을 활성화시키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신화와 역사를 소재로한 문화관광상품개발에도 역점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진시왕때 한라산에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해 오도록 했다는 ‘서불과지’의 전설재현, 우리나라를 서방 세계에 처음 알린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표류지 역사 재현, 삼신인이 삼공주를 맞이하여 결혼했다는 전설지인 혼인지 신화 재현 등 다양한 관광상품들을 개발해서 제주 문화의 매력성을 창출해 나갈 시책도 마련 중이다.

섬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

우리 제주도의 21세기 설계는, 아시아의 마지막 낙원으로 웅비하기 위한 동북아의 거점도시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과제는 세계의 섬문화시대를 제주도가 주도적으로 열어 가는 일이다.

제주문화예술을 진흥시키는 것은 곧 제주 관광을 일으키는 것과 직결된다. 문화가 주도하는 격조 높은 제주관광이야 말로 제주도가 해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관광지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고, 토속성 짙은 제주문화를 만나며, 밤에는 민요가락을 듣고 춤사위를 감상하는 일은 상상만해도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섬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 제주도는 섬의 문화시대를 이끄는 종주의 섬으로 도약할 것임을 거듭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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