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을 찾아서
 
 
전통아비뇽의 밤하늘을 휘어감은‘격이 있는 자유로움’
- 아비뇽 축제 중 ‘한국문화의 밤’ 현장에서 -

이용진 문예진흥원 국제교류부

세계최고의 공연예술 축제

중세기 언젠가 로마가 아니면서도 교황이 유일하게 살았던 도시, 도시 전체가 극장이고 무대이며,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이며 관객인 도시, 지금은 세계적인 공연예술페스티발의 도시로 더 유명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비뇽’. 그곳에서 7월13일부터 7월 22일까지 ‘한국문화의 밤 LES COREENNES ’행사가 뜨겁게 수놓아졌다.

공연예술축제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아비뇽축제가 올해로 52회째를 맞아 50여개의 정식 프로그램과 500여개의 오프OFF공연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아시아의 열망DESIR D'ASIE’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연예술행사가 열려서 우리나라와 대만의 전통예술을 중심으로한 공연예술을 집중 조명하였다.

아비뇽축제가 창작 중심의 페스티발로 연극과 현대무용 등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아시아의 전통예술을 특별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사전에 현지의 비판여론도 많았지만 공연이 진행되면서 현지의 반응이 너무 좋아 오히려 성공한 기획 프로그램으로 자랑스럽다는 아비뇽페스티발 예술감독 ‘다르시아 Bernard FAIVRE D'ARCIER ’의 이야기는 이번 행사의 성과를 대신하는 것 같다.

관객과 하나된 우리 춤, 소리

아비뇽 교황청의 중정극장과 함께 페스티발의 주무대인 불봉 절벽극장에서 펼쳐진 ‘한국의 밤’ 행사는 우리의 전통적인 춤과 소리를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를 엮어가며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약 4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7월 13일부터 21일 밤까지 총 8회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약 850석의 좌석이 연일 가득 메워진 채 관객들과 우리 춤과 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정중동(靜中動)’을 주제로 펼쳐진 1부는 강태환의 색스폰과 육태안의 전통무예, ‘수벽치기’로 시작을 알리고, 우리의 정악(생황/단소 병주 「수룡음」, 대금독주 「청성곡」, 「가곡」, 「춘앵전」 독무, 「수제천」 합주)이 본격적인 우리의 소리를 전해준다. 다시 색스폰과 전통무예가 김명자의 ‘살풀이’, 진유림의 ‘입춤’을 연결하고, 아름다운 춤사위에 이어서 ‘시나위 연주’를 통해 또다른 한국의 소리가 펼쳐진다. 밤하늘 절벽에 목탁소리와 함께 이매방의 승무가 시작되며 서서히 1부의 절정에 오르게 된다. 무대위의 한동작 한동작에 숨을 죽인채 무대에 빠져드는 관객들의 시선과 혼이 하나가 되어 우리 춤의 최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되고, 그칠 줄 모르는 박수 소리에 약 90분의 1부 막이 내린다.

2부는 ‘격(格)이 있는 자유로움’ 이라는 주제로 약 100분간 진행되는데 김대환의 환상적인 ‘북’연주와 이혜경의 현대적 몸짓으로 그 시작을 알린다. 들을수록 그 혼의 소리에 빠지게 되는 최고의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 「춘향가」를 통해 관객들은 우리소리의 미(美)와 오묘함에 빠져들고, 강태환의 색스폰에 어울어진 남정호의 현대무용이 박수 소리와 함께 조명이 꺼지면서 장고소리가 서서히 무대를 휘어 감는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설장고 합주」가 본격적인 자유로움을 알리고, 「삼도 농악가락」을 통해 관객들은 우리 사물(四物)놀이의 절묘한 조화 속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점잖키로 유명한 프랑스 관객들이 공연도중에 뜨거운 박수로 함께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을 통해 우리 타악의 자유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가 되어 마음껏 즐겼던 자유로움에서 다시 공연은 처음으로 돌아가 강태환의 색스폰 소리가 고요와 정돈을 알리고, 무대 한편에는 육태안의 전통무예가 다시 정제된 미를 보여주면서 사라지고, 무대위에서 국립국악원 「대취타」의 장엄함 속에 서서히 공연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사물놀이패의 「판굿」이 펼쳐지며 관객들은 시간을 잃어 버린 채 우리의 춤과 소리와 또다시 하나가 되어 4시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함께 박수치고 어깨춤을 추면서 어울어 진다.

살아있는 한국의 창조정신

공연1부와 2부 사이에는 간단한 한국전통음식인 식혜, 수정과, 한과들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또다른 재미를 주었으며, 폭 46m, 길이 52m, 높이 40m의 절벽에 의해 병풍처럼 에워싸여진 불봉 절벽극장에는 온통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가득 채워졌다. 공연장 진입로에는 청사초롱이 불을 밝히고 입구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손님들을 맞는다. 그리고 김정식, 김언경 두 설치미술가의 또다른 역작인 ‘연’과 ‘솟대’가 공연장 곳곳에서 우리의 전통미를 전해 주면서 한국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일반인들과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전통미를 알리기 위한 주최측의 특별프로그램인 ‘사물놀이 퍼레이드’를 교황청 앞 광장에서 시가지까지 펼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소리를 알리고 고유한 한국예술을 알렸다.

7월 12일부터 27일까지 유토피아 영화관에서 ‘한국영화제’가 개최되어 장선우, 박광수 감독 등의 영화 10편을 상영하여 또다른 한국의 문화예술을 보여주었다. ‘수천년 동안 흘러온 한국의 정서를 불과 몇시간 내에 외국인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예술감독 강준혁의 이야기처럼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뛰어난 우리춤과 소리에 최고의 예술인들이 함께 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 다이내미즘과 우아함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무시하거나 풀어나가는 대신에 이 갈등적 요소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짜아냄을 선택하였다’는 예술감독의 의도대로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인의 살아있는 창조정신이 어느정도 전달되었으리라 기대한다.

새로움을 위한 또다른 시작

이번 ‘한국의 밤’행사 개막일에는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과 안숙선 선생이 프랑스 문화부로 부터 전통예술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예술문학훈장’을 받는 기쁨도 있었다. 인도(1994년), 일본(1995년)에 이어 대만과 함께 특별프로그램을 개최하였다는 것은 IMF로 위축되어 있는 우리 공연예술 활성화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리라 기대하며, 1980년도 후반부터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온 행사가 이제야 결실을 맺었지만 이는 새로움을 위한 첫 시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열망’ 또다른 행사측인 대만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경극, 그림자극, 인형극, 무용, 음악 등을 각각 보여주었는데 200여명의 공연자가 참가하였고, 아비뇽 조직위원회에 약 200만 프랑을 기부하는 등 대만 알리기에 대단한 열기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국가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문예진흥기금 2억원을 지원하였고, 기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삼성문화재단이 1억원을 조건부 기부금으로 지원함으로써 총 3억원이 지원되었다. 또한 해외문화홍보원이 행정및 일부예산을 지원 하였고, 파리 한국문화원이 협조하여 어려운 상황속에서 행사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며, 프랑스 측의 전폭적인 물적지원등을 통해 뜻깊은 행사가 될 수 있었다.

개막일에는 우천에도 불구하고 김종필 국무총리가 참석하여 문화예술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다.

문화의 나라,프랑스

수많은 예산과 자원을 통하여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다시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약 500여명의 조직위 스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전통과 권위’가 그들의 땀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비뇽 축제 기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비웃듯 ‘한국문화의 밤’ 개막일에 비가내려서 야외공연인 우리 행사를 30분간 중단했는데 그 사이에 보여준 프랑스 관객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연장을 찾았다는 것 보다도 비가 내리는데도 객석에 우산을 편 채 다시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를 ‘문화의 나라’라고 이야기 하며, 자신들이 자존심을 갖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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